처음에 점퍼 비비는 소리와 숨소리, 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TV에서 나기에 방송사고인가 싶었습니다. 보통 집안에서 TV를 켜놓고 무언가 다른 일을 하다보면 TV에서 나오는 각종 소리에 어수선하기 십상입니다. 출연자들의 속사포 같은 말소리, 효과음으로 들어가는 기상천외한 소리, 그리고 ‘이 타이밍에서 웃어야 한다’는 듯 가이드라인을 주는 웃음소리까지요.
tvN 제공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들을수록 색다른 청각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심지어 이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있다가 스르륵 잠들었다는 일화가 들리기도 합니다. 장르는 엄연한 ‘예능’. 웃기는 것이 사명인 예능이 웃기지는 않고 잠을 재우다니요. tvN에서 4월 6일부터 방송 중인 <숲속의 작은 집>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tvN의 ‘간판’ 나영석 PD의 기획작입니다. 그의 유명세를 생각하면 3%선이라는 시청률은 아쉬울지 몰라도 여러 모로 의미있는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집고 바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그램의 콘셉트는 간단합니다. 누구도 모르는 숲속으로 들어가서 집을 짓고 삽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오프-그리드(Off-Grid)’ 즉, 전기나 가스, 수도 등 삶에서 필수적인 조건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거처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출연자인 배우 소지섭과 박신혜는 이러한 조건에 맞춰 하루하루 주어지는 과제에 따라 시간을 보냅니다.
나영석PD 사단이 고립된 거처를 찾아 하루를 나는 체험을 한 건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하루에 밥 세 끼를 해먹던 <삼시세끼>,
문화적으로 생경한 곳에 가서 식당을 여는 <윤식당>, 해외에 가서 주로 숙소를 위주로 촬영을 하는 <신서유기>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전작과 차별되는 점은 바로 ‘소리’입니다. 윤이 나는 화면 말고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숲속의 소리입니다. 때로는 물이 흘러가고, 새가 울고, 풀숲이 바람에 서걱이는 소리들이 마이크에 채집되어 안방에 전달됩니다. 전문용어로 이를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이른바 ‘자율감각 쾌락반응’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뇌를 자극해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과정입니다. 다른 말로는 ‘백색소음’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의 TV는 채우는 일에만 급급해 있습니다. 하나의 화면에도 수많은 자막과 소리, 효과, 그래픽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오히려 텅빈 듯한 화면 안에 별로 대단치 않아 보이는 자연의 작은 소리들에 귀가 쫑긋 세워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지만 확실한 존재감과 의미들, 그리고 그 존재들과 시청자들의 교감. 아마 요즘 유행하는 말로 TV를 통해 얻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일 수 있습니다.
지난 수년간 TV 예능은 저마다 ‘리얼’을 화두로 좇아왔습니다. 그런데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을 내려놓고 본연의 모습과 소리에 성큼 다가선 지금이야말로 리얼의 정점인 것 같습니다. <숲속의 작은 집>은 그 조용한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