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찬노숙(風餐露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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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찬노숙(風餐露宿)

입력 2018.03.26 17:05

  • 장철문(1966~)

열무 솎듯 쑥쑥 뽑아서 박스에 던졌다

박스를 들어 문밖에 냈다

서너 박스는 재활용 쓰레기로 내고

너덧 박스는 주위에 돌리고

서너 박스는 동네 도서관 사서에게 맡겼다

정신의 한 모서리가

해빙에 어긋난 축대처럼 헐거워졌다

어젯밤 참 편안하게 잤다

잠자리에 누워서

웃풍이 숭숭 드는 정신의 남루를 바라보았다

미련의 골재들이 뽑혀나간 집이

숭숭 넓어서

오늘 아침, 이사 나가기가 아깝다

흥부네 까대기에 누워서 보는 일출의 아침이다

이사할 때 책은 참으로 골칫덩어리다. 이삿짐센터에서도 책 많은 집을 좋아하지 않아 웃돈을 쳐줘야 한다. 하여 이사하기 직전에 책은 고물상 계근대에 오르기도 하고, 다른 집으로 하염없이 보내지기도 한다. 그동안 책에게 내어준 공간이 이리 넓었던가. 자식 같은 책을 떠나보내면서 내심 서운하지만, 웬일인지 책 있던 자리보다 더 넓게 부자가 된 듯하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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