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 기억 속 오리지널이 미화된 부분이 없지 않겠지만, 도무지 원작 감성이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주요 캐릭터가 영화가 진행되다 그냥 사라져버리고 마는 초보적 실수까지 보인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목 영웅본색4
원제 英雄本色2018
감독 딩성
배우 왕대륙(마크),
왕카이(카이),
마천우(차오)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8년 3월 22일
영웅본색 4편이 없었던가. 갸우뚱했다. <영웅본색>(1986)은 숱한 80년대 청소년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트렌치코트와 라이방. 입에 문 성냥 한 개비. 어느 반이나 3~4명쯤 있는 ‘노는 아이들’이 벤치마킹한 영화 속 주윤발의 트레이드마크였다. 1980년대 후반은 이제 막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비디오 데크와 동시상영관이 경쟁하던 시대였다. 영웅본색의 인기는 비디오까지 그대로 이어졌고, 동시상영 극장에는 주윤발과 장국영이 출연한 과거 영화들이 시리즈의 인기를 등에 업고 4·5·6·7편으로 둔갑하여 경쟁적으로 걸리던 시절이었다. 아, 이건 <첩혈쌍웅> 시리즈던가. 분명히 기억하고 있건만, 인터넷을 찾아봐도 남아있는 기록은 없다.
영화 속 익숙한 멜로디들
어쨌든 그게 리메이크되었다. 30년 만에. 이미 세상을 떠난 장국영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윤발이라도 카메오로 등장했으면 싶은데 요즘 인기 있는 중국배우들로만 채워졌다. 원래 영화가 발표되었을 때는 오우삼 감독의 오리지널 영웅본색의 프리퀄로 제작될 것이라고 했는데, 웬걸 그냥 1편 이야기 골격을 그대로 가져다 놓았다. 오리지널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신통치 않다. 세월이 흘러 기억 속 오리지널이 미화된 부분이 없지 않겠지만, 도무지 원작 감성이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주요 캐릭터가 영화가 진행되다 그냥 사라져버리고 마는 초보적 실수까지 보인다. 영화는 끊임없이 익숙한 멜로디를 들려준다. ‘당년정’(當年情)! 장국영이 불렀던 오리지널 <영웅본색>의 주제곡이다. 장국영은 이 2018년판 영화에서 당년정이 수록된 LP 표지인물로 등장한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청년들이 부르는 노래도 이 당년정이다.
이 2018년판 영화의 무대는 국제적이다. 주인공 카이(왕카이 분)는 중국과 일본을 화물선을 타고 오가는 밀수업자다. 그에겐 동생이 있다. 차오(마천우 분)다. 차오는 형사가 된다. 범죄자 형과 경찰 동생. 원작으로 치면 적룡과 장국영이다. 아직 한 사람이 남았다. 카이의 의형제 마크. ‘아시아 스타’ 왕대륙이 맡았다. 다시 말해 30년 후 리메이크에서는 주윤발이 왕대륙이다. 비록 밀수업자지만 카이는 마약에는 손을 안 대려고 한다. 나름 지조 있다. 그래서 조직과 갈등한다. 자신의 형인지 모르는 동생에게 검거되지만 그는 조직을 불지 않는다. 의리를 지켰지만, 의리는 그가 출소한 후 차가운 배신으로 돌아온다. 어리버리한 악당으로 나오는 여애뢰는 몇 년이 지난 뒤 거물 악당이 되어 있다. 카이의 애인을 마약에 중독시켜 사창가로 돌린다.
영화의 시작 장면. 범죄조직을 쫓던 차오 일행이 도주하는 악당과 좁은 골목길에서 총격전을 벌인다. 개인적으로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다 싶었더니 칭다오다. 딱 지난해 이맘 때쯤 가족여행을 갔던 곳이다. 그런데 가만. 칭다오라고? 그러니까 이 영화의 배경은 오리지널처럼 홍콩이 아니라 중국 대륙? 중국이 총기 소지가 합법화된 나라였나. 영화가 시작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 든 의문이다. 의문은 꼬리를 문다. 형제라고? 중국은 강력한 산아제한정책 국가가 아니던가. 2013년에 폐지되었지만 1980년대부터 30년 넘게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는 정책이 시행되었는데 저 형제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길래 둘을, 그것도 아들만 낳게 되었지? 하는 의문이다. 답은 둘 중 하나다. 중국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족이 아니거나(부모의 한쪽이 소수민족, 예컨대 조선족이라면 둘까지 낳을 수 있다) 아니면 부과되는 막대한 벌금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부자거나. 소수민족 출신이라는 설정은 없는 것 같고. 영화는 이 문제에 답하지 않는다.
배경은 홍콩이 아닌 중국 대륙
홍콩도 아니고 대륙에서 총격전이라. 뉴스를 살펴보니 일부 조직폭력배들이 총기를 소유한 케이스도 없지 않은 듯하지만 현대 중국사회에서 흔한 광경은 아닐 것이므로 이 부분부터 핍진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영화 초반부터 원작을 ‘오마주’해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명확해진 만큼, 그 유명한 ‘풍림각 총격신’을 어떻게 재현하는지 팔짱 끼고 지켜보게 되었다. 감독도 중국대륙에서 유혈이 낭자한 총격전은 너무 허풍이라고 생각했는지 이번엔 무대를 일본으로 옮겼다. 마크의 다리에 치명상을 입히는 악당은 마약장사를 권하던 일본 야쿠자였고. 오리지널처럼 잔인하게 다섯 연발로 머리에 관통상을 입힌다든가 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요즘 인기 있다는 중국배우들을 잘 몰라 그냥 본대로 말한다면, 영화 주인공인 카이 배역을 맡은 왕카이와 마크 역 왕대륙은 오리지널과 뒤바뀌었다는 인상이다. 왕대륙이 카이를 맡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배우 임설이 카이와 암투를 벌이는 밀수조직의 최종보스를 맡았는데 자꾸 코미디언 유민상이 생각나는 것도 감상에 방해가 되는 포인트다. 중화권 배우 팬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오리지널 영웅본색의 팬이라면…. 자꾸 고개를 젓게 된다.
홍콩 느와르’ 장르 개척자 오우삼
영화 영웅본색 한국 출시판 비디오 커버. | 경향자료사진
“오우삼이었다면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 텐데….” 영화를 보며 계속 떠오르던 생각이었다. 영화 보도자료에는 “어려서부터 영웅본색 시리즈를 보고 자라난 세대”라고 감독 딩성을 소개하고 있다. 영화의 홍보자료엔 나와 있지 않는데, 감독의 한자 이름을 찾아보니 정성(丁晟)으로 필자와 같은 성이다. 게다가 1970년생. 비슷한 시기에 <영웅본색>이 담고 있는 사나이의 의리랄까, 비장함 같은 정서를 경험한 세대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영화학교 재학 중이던 2001년 <찻잔 속의 폭풍>으로 데뷔했으니 입봉시기는 빠르다. 주로 CF감독으로 활동했다. 이 점에서 60~70년대 홍콩영화 전성기를 이끈 장철 감독 수하에서 잔뼈가 굵고, 마침내 영화사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홍콩 느와르’ 장르를 열어젖힌 오우삼과 비교하긴 무리다.
주윤발과 장국영을 투톱으로 내세운 <영웅본색>과 <첩혈쌍웅>
시리즈는 그 후 많은 영화에 영향을 줬다.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1996) 총격신이 영웅본색의 풍림각 장면을 레퍼런스하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 홍콩의 반환을 앞두고 할리우드로 건너간 오우삼 감독은 <하드 타겟>(1993), <브로큰 애로우>(1996),
<페이스 오프>(1997), <미션 임파서블2>(2000) 같은 영화들을 만들다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삼국지를 바탕으로 <적벽대전 1·2>(2008, 2009)를 만들었다. 감독의 가장 최신작은 다시 정통 느와르로 돌아와 한·중·일, 거기에 대만 배우까지 총출동한
<맨헌트>(2017·배우 하지원이 킬러 레드 역을 맡았다)인데, 일본 감독 다카쿠라 켄의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1976)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홍콩 느와르와 함께 그의 전성기도 몰락했다는 평가를 흔히 하지만 글쎄. 1946년생이니 올해 72세다. 아직 은퇴할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자신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웅본색 2018>을 그가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