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특종(scoop)이 나오기까지 한 언론사 내에서 벌어진 갈등을 축으로 전개되고 있다. 사주와 편집장. 사주는 앞서 이야기한 메릴 스트립이고, 편집장 벤 브레들리 역은 톰 행크스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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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The Post
제작연도 2017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메릴 스트립, 톰 행크스, 밥 오덴커크, 매튜 리즈, 브루스 그린우드
등급 12세 관람가
상영시간 116분
개봉 2018년 2월 28일
노렸다. 영화를 본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다. 무엇을? 오스카상 수상을. 영화는 올해 아카데미상 두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있다.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당장 지난번 리뷰한 <셰이프 오브 워터>의 여성 주연 샐리 호킨스가 떠오르지만, 이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이 보여준 <워싱턴포스트>의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 연기는 최고 경지에 도달했다.
아카데미상에 한정해 본다면 스필버그 감독은 세 번 수상했다. ‘슈가랜드 특급(1974)’이나 ‘죠스(1975)’에서 시작하여 세계 영화사에 그가 남긴 족적에 비춰보면 의외다. ‘클로스 인카운터(1978)’로 첫 번째 후보로 오른 뒤, 그의 첫 수상작은 ‘쉰들러 리스트(1993)’였다. ‘E.T.(1983)’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 같은 작품들은 다 건너뛰고!
메릴 스트립, 첫 스필버그 주연 영화
감독 이야기는 잠시 제쳐두고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는 특종(scoop)이 나오기까지 한 언론사 내에서 벌어진 갈등을 축으로 전개되고 있다. 사주와 편집장. 사주는 앞서 이야기한 메릴 스트립이고, 편집장 벤 브레들리 역은 톰 행크스가 맡았다. 톰 행크스는 스필버그 영화에서 자주 주연을 맡았는데, 당장 떠오르는 영화가 그에게 오스카를 안겨준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와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 ‘터미널’(2004) 같은 영화다. 메릴 스트립은 의외로 톰 행크스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앞서 케서린 그레이엄도 그렇지만 벤 브레들리도 다 실존인물이다. 물론 영화가 다루는 사건도 실제 사건이다. ‘펜타곤 문서(pentagon paper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미국의 베트남 개입 비밀문서다.(박스 참조) 당초 이 문서들을 입수해 특종한 언론사는 <뉴욕타임스>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벤 브레들리는 ‘경쟁매체’ 뉴욕타임스(뉴욕타임스가 경쟁매체라는 건 워싱턴포스트 쪽의 생각이고, 타임스 쪽에서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아무튼)의 에이스 기자 ‘닐 시한’(역시 실존 인물이다)이 몇 주째 지면에 등장하지 않은 것을 눈치 챈다. 그는 닐 시한이 무언가 아주 중요한 정보를 잡았다는 냄새를 맡고 그것이 무엇일까 전전긍긍한다. 그리고 마침내 터진 뉴욕타임스의 특종. 제대로 당한 워싱턴포스트 측도 무언가 한 쪼가리라도 건지려고 노력한다. 마침내 문서의 일부를 입수해 특종경쟁에 뛰어들려고 하지만, 이미 타임스 측은 포스트가 입수한 자료들에 대한 완벽한 분석을 끝내고 후속 보도까지 내놓은 상태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비밀문서는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맥나마라’가 작성한 것이 이미 알려진 상황. 벤은 맥나마라가 사주 캐서린의 절친인 것을 떠올리고 그녀를 찾아간다. 특종을 위해 우정을 저버릴 수는 없기에 그녀는 난색을 표한다.
민완기자 출신인 포스트의 부사장은 독자적인 경로로 그 문서들을 찾아 나서고, 마침내 포스트도 방대한 분량의 해당 문서들을 입수하는 데 성공한다. 비밀문서 공개는 국익을 해친다며 미국 정부가 보도금지 가처분 소송을 건 것을 확인한 포스트 측은 고민에 빠진다. 까딱하면 언론사로서는 존폐위기에 처할 수 있다. 법무팀과 기자들 사이의 대립이 폭발한 가운데, 모든 시선은 사주 캐서린의 판단에 쏠려 있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은?
촛불혁명 이끈 특종은 어떻게 영화화될까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1946년생이니까 올해 72세, 벌써(!) 노장감독이다. 홍보사가 배포한 사진을 보면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감독 사진들이 있는데, 72세 노인으로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의 영화들을 보면 천부적인 이야기꾼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당대에 쓰여지고 있는 교과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잘 만든다는 정도가 아니라 장인을 넘어 어떤 신적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1972년 뮌헨올림픽 테러사건을 다룬 영화 ‘뮌헨(2005)’을 리뷰했을 때도 썼던 말이지만 ‘신 바이 신’으로 분석텍스트로 삼을 만한 교과서적인 영화다.
게다가 영화는 언론인의 눈으론 지금은 사라진 ‘어떤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종을 위해 칸을 비워놓고 있다가 넘어온 원고에 맞춰 식자공들이 납활자들을 다루고, 기사를 읽은 편집기자가 ‘미다시’를 뽑아 연필로 위에 적어놓고 마침내 대량 인쇄되어 배달되는 그 두근거림. 정말로 오랜만에 보게 되는 스펙터클이다. 설령 오스카를 받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개인적으로 인생영화로 꼽을 만한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훌륭한 영화다.
영화를 보다보면 한국적 맥락에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바로 2016∼2017년 촛불과 탄핵국면에서 언론, 구체적으로 JTBC의 태블릿 보도다. 스필버그 식으로 이야기를 푼다면 ‘고뇌하는 언론사주’ 캐서린의 위치엔 홍석현을 넣게 되는 걸까. 한국의 이 사건은 나중에 어떻게 영화화될까, 역시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른바 ‘펜타곤 문서’의 공식 이름은 ‘미국과 베트남 관계 1945∼1967: 국방부 연구보고서’다. 트루먼부터 아이젠하워, 케네디, 그리고 린든 존슨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베트남과 관련한 미국 정책의 극비사항을 담은 이 문서들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
<뉴욕타임스>의 ‘펜타곤 문서’ 첫 보도. 1971년 6월 13일.
방대한 극비사항이 털리게 된 것은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맥나마라의 독특한 학자적 자세 때문이었다. 후세의 연구사가들을 위해 베트남과 관련한 방대한 보고서들을 수집해 기록을 남겼다. 문서를 유출한 이는 그의 보좌관으로, 문서 작성작업에 관여한 다니엘 엘스버그다. 영화는 실제 베트남을 오가며 자신이 목격한 전쟁 실태와 맥나마라가 언론 앞에서 공표하는 내용이 다른 것을 보고 실망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국방부 기밀문서들은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에 카피본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엘스버그는 입구의 보안요원들 몰래 기밀문서를 빼돌려 복사하는 것으로 영화에서는 묘사되었다. 그런데 방대한 문서 분량을 하루 저녁에 다 가지고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혼자 작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실제 문서들은 엘스버그와 그의 조력자에 의해 수개월 동안 빼돌려졌고, 그 문서들이 <뉴욕타임스> 기자 닐 시한에게 건네졌다.
사실 엘스버그는 이 ‘펜타곤 문서’보다 오늘날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 때 위험회피 성향뿐 아니라 설혹 선택의 결과가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모호성 회피 성향 역시 보인다는 것을 밝혀낸 ‘엘스버그의 역설’로 더 유명하다. 그는 오늘날 ‘행동경제학’으로 알려진 사조를 정초한 인물이다. 다시 아이러니는 펜타곤 문서를 폭로한 그의 행동은 개인적인 이익만 놓고 생각하면 피해야 할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나중에 “문서를 폭로함으로써 이 잘못된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2011년, 전체 문서가 마침내 기밀해제됐다. 첫 보도 후 40년 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