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부(1942~2012)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지난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었다. 한겨울에는 도무지 올 것 같지 않더니만, 마침내 봄이 ‘더디게 더디게’ 왔다. 꽝꽝 얼어붙었던 유빙도 서서히 녹아 바닷물이 되어 흐른다. 세상의 모든 나무는 물줄기를 끌어올리느라 바쁘고, 땅 속 깊은 곳에서는 기지개 켜는 소리가 우렁차다. 봄이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