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연을 기만한 죗값을 결국에는 치른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망이 점차 좁혀지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주변의 전문가들이 이 사실을 마주할 날이 임박했다.
수에즈 운하를 완성시킨 기술자이자 외교관인 페르디낭 드 레셉스(Ferdinand de Lesseps)가 파나마 운하 건설사업에 착수한 것은 그가 일흔 넷의 고령이었을 때다. 1879년, 니카라과와 파나마 중 어디에 운하를 건설할 것인가를 두고 국제적인 논쟁이 벌어졌을 때, 파나마로 결정된 것은 레셉스가 해수면과 표고의 높이가 같은 운하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수에즈 운하의 성공으로 명성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그의 회사는 쉽게 사업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는 공사 비용 대비 편익을 높게 작성해 사업의 수익성을 부풀렸다. 열대우림 구간을 통과하는 공사에서 나타날 전염병이나 질병에 대한 걱정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그곳 기후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일축해버렸다. 실제 공사가 진행되자 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해수면과 표고차가 있어서 갑문을 만들어야 했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흙더미를 퍼날라야만 했다. 엄청난 수의 기술자와 노동자들은 열대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사업이 예상과 달리 흐르자 레셉스는 홍보에 열을 올렸고, 자신을 지지해줄 정치인들이나 유력인사들 예컨대 당시 에펠탑을 건축하고 있었던 에펠(A.G. Eiffel) 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다 스캔들이 터졌다. 회사의 거물급 고문이 정부에 막대한 로비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뇌물을 받은 장관은 사임했고 사건에 연루된 회사 간부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결국 1892년 레셉스와 에펠은 사기와 배임 혐의로 기소되기에 이르렀다.
4대강 사업을 추진했던 이명박 대통령은(곁에 있던 전문가들도) 흐르는 강물을 막으면 물이 썩는다는 상식적인 지적을 무시했다. 심지어 녹조가 생기는 것은 강물이 건강해졌다는 증거라고 했다. 강에서 준설한 골재를 팔아서 사업비를 충당하겠다 했지만 현재 어마어마한 양의 흙더미는 먼지를 날리는 흉물이 돼 주변 지역에 쌓여 있을 뿐이다. 4대강 사업의 당위성을 언론에 홍보하려고 시공사별로 언론사를 배정하여 사업의 긍정적인 면을 보도하게 했으며, 이 비용도 사업비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지역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지만 지역업체의 참여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었고, 설계부터 시공까지 오직 대기업만을 위한 특혜사업이었던 것이다.
청계천 복원사업의 성공으로 대통령이 되고, 급기야 한반도 대운하를 무늬만 바꿔서 4대강 사업으로 추진한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와 파나마 운하사업의 레셉스 토건스캔들을 평행이론처럼 유사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 자연을 기만했다는 점, 무리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자연의 순리를 거슬러 사업을 추진했다는 점은 유사하다. 이제 유사한 점이 하나 더 늘어날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자연을 기만한 죗값을 결국에는 치른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망이 점차 좁혀지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주변의 전문가들이 이 사실을 마주할 날이 임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