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은 ‘전용기’가 아닌 ‘전세기’를 이용한다. 2010년 2월 대한항공에 5년간 1157억원에 빌렸다. 그리고 2014년 말 박근혜 정권 때 1421억원을 주고 2020년 3월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인 멜라니아와 함께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오르고 있다. / AP연합뉴스
“떠나는 사람이 고칠 거, 돈 들어갈 일을 다 해주고 비행기도 전용기로 주문해 놓으려고 했는데 국회에서 그게 기각돼 버렸어요. 비행기를 내가 못해놓고 가게 되어 무척 섭섭해요.” 2008년 2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MBC 다큐멘터리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이다. 후임 대통령에게 전용기를 마련해주고 싶었지만 한나라당의 반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한 것이다. 후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을 위한 것이었는데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전용기를 구입할 예산인 있으면 빈곤층에게 눈길을 돌려야 한다’며 반대했다.
미국은 ‘에어포스 원’, 북한은 ‘참매-1호’
평창올림픽에서 때 아닌 전용기 구입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다. 각국 수반은 전용기를 타고 한국에 들어왔다. 특히 아베 총리는 각국 순방을 갈 때 전용기 2대로 국격을 과시한다고 한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전용기 ‘참매-1호’가 있다. 이번 올림픽에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 북한의 대표단은 이 전용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왔다. 미국의 ‘에어포스 원’은 ‘하늘의 백악관’으로 불린다. 백악관 집무실과 똑같이 암호통신을 하고 화상회의를 한다. 대통령 전용기는 국가안보를 위한 핵심시설이기도 하고 외교를 위한 핵심설비이기도 하다. 미국은 4대의 전용기를 운영 중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전용기가 없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전용기’가 아닌 ‘전세기’를 이용한다. 빌려서 사용하는 것이다. 공군1호기 일명 ‘코드 원’으로 불리는 현재 전용기는 보잉 747-400(2001년식) 기종으로 대한항공 소속 여객기다. 그런데 이제 전세기간이 2년밖에 남지 않았다. 대통령 전용기 도입논의가 시작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때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무산된 대통령 전용기 구매문제를 현 정부에서 다시 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당시 조 의원은 입찰과 업체 선정 등을 고려하면 2∼3년은 걸리므로 내년 상반기, 즉 올해 초에 구매할지 임차할지를 결론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용기 도입이 공론화된 것은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다. 당시 공군1호기인 보잉737-3Z8 모델은 국내에 도입된 지 21년이 넘은 것이었다. 전두환 정부 때 도입된 비행기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반대로 전용기 도입은 무산됐다. 정권이 바뀌어 이명박 대통령 때 전용기 도입을 추진했으나 이번에는 민주당이 같은 논리로 반대했다. 결국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 때의 입장을 사과하고 전용기를 구입하기로 했지만 보잉사가 너무 높은 가격을 요구해 백지화됐다. 당시 정부는 5000억원을 제시했으나 보잉 측은 8000억원 이상을 요구해 성사될 수 없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비롯한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고위급대표단을 태우고 북한으로 출발할 전용기가 2월 11일 밤 인천공항에 계류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 전용기는 2010년 2월 대한항공에 5년간 1157억원에 빌렸다. 그리고 2014년 말 박근혜 정권 때 1421억원을 주고 2020년 3월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미사일 방어장치 등 개·보수에만 300억원이 들었다. 400석이 넘는 좌석을 200여석으로 교체하고 일반통신·위성통신망, 미사일 경보 및 방어장치 등을 장착했다. 5년 동안 1721억원이니 연간 400억원 가까이 든 셈이다. 유지·관리나 실제 운행비용 등은 빠진 액수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사는 것이 더 싸게 드는 것일 수도 있다.
대통령 전세기, 1년에 400억원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만약 새 비행기가 어렵다면 중고를 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최근 미국은 파산한 러시아 항공사의 보잉비행기를 구매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 비행기 값은 조건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미국에서 최근 보잉사와 협상한 내용에 따르면 대당 40억 달러 정도라고 하니 지난 협상 때 보잉사가 우리 정부에 요구했던 8000억원은 매우 비현실적인 가격임은 확실하다. 이런 와중에 또 교체의 시기는 다가오고 있다. 5년마다 재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전용기를 두고 ‘국격’과 같은 허례의식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전용기는 국격 문제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글로벌 시대에 업무를 위한 국익 차원에서 전용기는 필요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가령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전세기에 공간이 부족해 일부 참모들은 민항기를 이용해야 했다. 이런 상황을 토대로 국방연구원과 국회 예산정책처에서는 25년 이상 사용 시 전용기 구입이 장기 임차보다 경제적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제 전용기 도입은 정쟁 대상을 벗어난 이슈다. 이번에 전용기가 도입된다 해도 사용은 다음 대통령이 하게 된다. 게다가 한 번 사면 수십 년을 사용하게 된다. 대승적인 차원의 해결이 필요하다. 하지만 또다시 정쟁의 대상이 될 것 같은 느낌은 단순한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