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생명체의 ‘비밀’이 적의 수중에 넘어가느니 해부한 뒤 없애버리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수조 속의 이 ‘괴물’과 엘라이자의 교제는 이미 사랑으로 발전되었는데 말이다. 탈출 그리고 추적.
누구는 사랑을 봤고 또 다른 누구는 평등과 연대를 봤다. 어디서? 물에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한글판 포스터에는 이렇게 부제가 달려 있다. 사랑의 모양. 물은 그 매개다.
앞서 언급한 평등을 언급한 이는 신영복이다. 언젠가 면전에서 직접 들은 강의에서 그는 이렇게 설파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가장 큰 바다를 이뤄냅니다.” ‘아하, 중력의 작용이겠지만 거기서 평등 지향성을 읽어내는구나’ 하고 감탄했다.
광기에 맞서는 이종 간의 사랑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는 이뤄질 수 없는 이종(異種) 간의 사랑만을 다룬 달착지근한 판타지로맨스물이 아니다. 오히려 광기에 맞선 소수자, 차별당하는 자들의 연대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도 핍박 받은 소수자의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다. 어스름이 깔리는 초저녁이면 극장 위에 자리 잡은 낡은 단칸방에 세를 살고 있는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는 눈을 뜬다. 물을 받고, 계란을 삶고, 구두를 닦는다. 출근버스를 타고 그녀가 당도하는 곳은 미국 항공우주센터의 비밀실험실. 그녀의 직업은 야간청소부다. 딱히 삶의 목적도 없고 그저 지각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녀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은 이들이 아마존의 정글에서 미지의 생명체를 잡아 오면서부터다. 이 미지의 생명체는 물속에 사는 수중인간인데, 아마존의 원주민들은 그를 신적인 존재로 숭배하고 있었다. 호기심을 느낀 엘라이자가 계란을 주자 이 생명체는 먹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그들의 비밀교제가 시작된다. 하지만 당시는 체제경쟁이 벌어지는 냉전 시기다. 이 낯선 생명체가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효용’을 둘러싼 물밑 첩보전이 벌어지고, 군부는 이 ‘비밀’이 적의 수중에 넘어가느니 해부한 뒤 없애버리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수조 속의 이 ‘괴물’과 엘라이자의 교제는 이미 사랑으로 발전되었는데 말이다. 탈출 그리고 추적.
영화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이 비밀실험실의 절대지배자로 묘사되고 있는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새넌 분)에 대한 묘사다. 군 장성과 그의 관계는 한국전쟁 당시 부산전투(그런 전투가 있었나?) 때 만들어졌는데, 아마존에서 잡은 괴수를 실험실까지 데리고 오는 작전을 수행한 것도 그였다.
그에게 괴수는 그저 괴수다. 좀비영화에서 좀비에게 물린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괴물(the thing)로 인식되듯, 통제되고 분석·해체되어야 할 인간 형상을 닮은 물고기에 불과했다. 그는 그 괴물에게 자기의 손가락 두 개를 잃었는데, 1960년대의 성형술은 그 두 개를 붙여놓기는 했지만 끝내 검게 썩어 들어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퇴근 후 돌아간 집에는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부인이 전형적인 50∼60년대 백인 중산층의 얼굴을 하고 기다리고 있다. 스트릭랜드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랑의 모양’은 어떤 것일까. 권력추구의 욕망이다. 그리고 그 욕망은 끊임없이 지연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후 부인과 섹스를 하지만 욕망은 충족되지 않고, 그 성욕은 말을 못하는 청소부 엘라이자에게 향한다.
영화는 여러 차원의 서브코드를 심어놓고 있다. 문화인류학자들은 ‘괴물은 타자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었다’는 고전적인 명제를 스트릭랜드의 광기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접합수술로 간신히 이어놓은 그의 손가락은 썩으면서 악취를 풍기고 있는데, 그의 권위에 짓눌린 실험실 사람들은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한다. 동시에 그것은 결국은 ‘예정된 실패’에 대한 스트릭랜드 내면의 불안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특유의 코드
영화를 보다보면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타지 영화에서 익숙하게 반복되는 코드도 발견된다. 영화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필리아는 정말로 지하왕국의 공주로 돌아간 것일까. 아니면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사람들이 종종 경험한다는 섬망증(delirium)이 야기한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총을 맞은 오필리아는 지하세계로 가는 문의 경계선 위에 쓰러진다. ‘순결한 처녀’인 그녀의 피가 이제 아기에 불과한 동생 대신 그 문을 작동시킨다는 판타지를 담고 있다. 아직 영화를 안본 이들을 위해 다 거론하기는 어렵지만 거의 유사한 구조가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도 발견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현재 올해 아카데미상에 총 13개 부문 후보로 올라 있다.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좋은 영화다. 감독 특유의 과도한 폭력묘사 때문인지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강력히 추천하고픈 작품이다.
제목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원제 La forma del agua, The Shape of Water
제작연도 2017년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출연 샐리 호킨스, 마이클 섀넌, 옥차비아 스펜서, 리차드 젠킨스, 마이클 스털버그
상영시간 122분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개봉 2018년 2월 22일
영화관에서 나서자마자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분명 저 괴물은 길맨(Gill-man)인데. 확인해보니 역시 맞다. 수트를 개발하기 위해 9개월간의 연구과정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가 영화의 보도자료에 실려 있지만, 다 잡설이다. 감독이 꽁꽁 숨겨놓은 ‘비급’은 누가 뭐래도 잭 아놀드 감독의 <해양괴물(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1954)에서 첫선을 보인 괴수, 길맨이다.
잭 아놀드의 성공 이후 길맨은 수많은 B급 SF호러에서 복제되었다. B급 영화의 대부 로저코먼에서부터 심슨 가족까지, 길맨은 거의 프랑켄슈타인급의 아이콘이 되었다. <심슨 가족>에 이르러서는 ‘모에화’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길맨을 영화화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의 2004년작 <헬보이>의 주연급 조연 ‘아베 사피엔스’ 역시 길맨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다만 헬보이는 오리지널 작품이 아니라 코믹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엄밀히 말해 ‘아베 사피엔스’의 저작권은 코믹북 작가인 마이크 미놀라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감독의 오리지널 ‘길맨’이 등장한 것은 이번 영화가 처음이다. <판의 미로-오필리아의 세 개의 열쇠>(2006)에서 판과 손바닥 눈알 괴물, <헬보이>의 아베 사피엔스 역을 맡았던 더그 존스가 이번 작품에서도 괴생명체 역을 맡았다. 이쯤 되면 그의 배역은 감독이 만들어내는 기괴한 판타지의 핵심을 담당하는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