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신여성과 ‘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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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신여성과 ‘82년생 김지영’

입력 2018.02.12 16:09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이다. 숭배와 혐오가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닌다. 약 100년 전 신여성을 바라보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20년 나혜석은 삽화 ‘저것이 무어신고’를 그린다. 바이올린을 든 단발 여성에게 갓 쓴 남자들은 “아따 그 계집애 건방지다. 저것을 누가 데려가나”라고 쑥덕댄다. 반면, 건너편 젊은 남자는 “그것 참 예쁘다. 장가나 안 들었다면…. 쳐다나 보아야 인사나 좀 해보지”라며 시시덕거린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전시 ‘신여성, 도착하다’는 한 세기 전 여성들이 걸었던 발자취를 담는다. 당시 한국 미술과 대중문화에 나온 신여성 관련 회화, 조각, 사진, 인쇄미술 등 500여점이 선을 보인다. 신여성을 다루는 대규모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1928년작 추정, 캔버스 유채, 88x75cm

<나혜석 자화상> 1928년작 추정, 캔버스 유채, 88x75cm

1890년대 영국 ‘뉴 우먼(New Woman)’ 열풍은 20세기 초 한반도에선 ‘신여성’으로 정착했다. 초·중등 교육을 받은 여학생과 여성인권을 주창하는 ‘신여자’를 뜻하다가 점차 양장을 입고 단발을 한 채 서구 대중문화를 누리는 ‘모던걸’ 이미지로 확산됐다. 그래서 전시에는 현모양처부터 페미니스트까지 결이 다른 신여성들의 모습이 혼재한다.

전시 1부 ‘신여성, 언파레-드(on parade의 1930년대식 표현)는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신여성의 모습을 다룬다. 당시 언론들이 인물 사진을 나열하고 특징을 설명할 때 지칭하던 단어 언파레드처럼 전시는 엘리트 여성부터 기생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신여성을 보여준다. 1920~30년대 출간된 여성지는 신식 머리와 외양을 한 여성들을 등장시키며 신여성되기를 독려했다. 하지만 남성 지식인들이 만든 잡지는 가부장적 시각을 여실히 드러낸다. 1930년 <조선일보>에 실린 안석주의 삽화에는 4명의 여성 다리에 ‘나는 문화주택만 지여주는 이면 일흔살도 괜찮어요’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여성 혐오와 성적 대상화가 신여성에 덧입혀졌다.

안석주의 삽화 ‘여성선전시대가 오면’ / 국립현대미술관

안석주의 삽화 ‘여성선전시대가 오면’ / 국립현대미술관

가부장제와 신여성 사이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엘리트 여성도 보인다. 이유태의 ‘인물일대: 탐구’에서는 온갖 실험도구가 가득한 대학 실험실에서 한 여인이 흰 가운을 입고 있다. 가운 안에 한복을 그려 넣어 조선 여인상을 입혔다.

전시 2부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에는 근대의 여성 미술가들이 등장한다. 기생 출신 서화가들이 주로 그렸던 사군자와 서예작품부터 여학교나 미술학교 출신의 여성 미술가 나혜석·나상윤·박래현·천경자 등의 작품이 소개된다. 해방 이후 자수가 미술의 영역에서 배제되면서 이들의 흔적은 근대미술의 역사 속에서 누락된다.

3부 ‘그녀가 그들의 운명이다’는 화가 나혜석, 작가 김명순, 무용가 최승희, 여성운동가 주세죽, 가수 이난영 등 각자의 분야에서 시대적 한계와 어려움에 맞섰던 대표적 인물을 집중 조명한다.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근대의 꿈은 실현됐으나, 신여성의 꿈은 21세기인 지금도 풍등처럼 표류하고 있다.” 100년 전 신여성과 <82년생 김지영>의 평행이론을 보는 듯한 씁쓸함이 남는다. 4월 1일까지. (02)2022-0600

<이윤정 올댓아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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