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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입력 2018.02.06 14:51

박소란 (1981∼ )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다음에’라고 말하면 편해진다. 할 일을 천연덕스럽게 미루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든든하고 믿음직스럽다. 부득이 일이 생겼으니 늙고 병든 부모님한테는 ‘다음에’ 가고, 좋은 시는 먹고 사는 일이 자리 잡으면 쓸 수 있을 것 같다. 수없이 ‘다음에’였을 지금, 또다시 ‘다음에’에 마음을 얹는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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