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이 여전히 논란거리다. 벌써 잊혔지만 지난 대선 때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모든 후보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다. 여기에는 득표전략을 넘어 다른 더 깊은 원인이 있다. 디지털 혁명이라는 기술변화가 그 원인이다. 인공지능이 아니라도 디지털 기술은 이미 많은 인간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자동차 조립은 로봇으로 대체되고 은행원 업무는 인터넷 뱅킹으로 대체되고 있다. 자동차 생산은 사상 최대라지만 고용규모는 그대로다. 동네의 은행지점은 자고 일어나면 사라진다. 그 결과 괜찮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단순한 그래서 임금이 낮은 일자리만 늘어난다. 이런 일자리로 사람이 몰리니 임금 하락 압력은 더 강해진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부분 선진국이 벌써 최저임금 인상에 나섰다. 우리 대선 후보들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몇 가지 요인 때문에 상황이 더 어렵다. 로봇 이용과 기계화에 우리나라가 제일 발 빠르다. 제조업 종사자 대비 로봇의 숫자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인구구조도 한몫 하고 있다. 베이붐 세대의 자녀인 에코붐 세대가 노동시장에 대거 진입하고 있다. 그리고 노인빈곤율이 OECD 최고 수준이니 노인들마저 택배 같은 일에 나섰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저임 일자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인류 역사상 기술진보에 대한 낙관이 이렇게 높았던 적도 없을 것이다. ‘상상하기만 하라, 무엇이든 실현시켜 주리라’는 기세이다. 이런 기술진보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할지 모르지만 당장은 많은 이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반세기 동안 바삐 달려왔는데 다시 숨고를 틈도 없이 이 도전을 맞이해야 한다. 언젠가 새로운 기술체계에 적합한 분배제도가 만들어지고 또 노동시장 진입자 수도 줄어드는 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이 깊은 시대의 계곡을 건너야 한다. 이 횡단의 부담을 우리 사회가 조금씩 나누어 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부담은 사회의 약자, 특히 지금의 청년세대의 몫이 된다.
얼마 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사회가 같이 나누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올바른 지적이다. 소규모 사업장을 위한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을 세금 낭비라고 볼 것이 아니다. 취약 노동자의 생계유지를 위해 사회가 부담을 조금씩 나누어 지는 것이다.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이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올리는 것 역시 비용 인상의 부담을 소비자가 나누어 지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생활물가가 들썩인다는 언론 보도에 정부는 물가인상을 단속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잘못된 대응이다. 비용은 오르는데 가격을 올리지 말라는 것은 모든 부담을 자영업자가 지라는 뜻이다. 비용 인상에도 납품단가는 올리지 말라는 원청업체의 횡포와 다르지 않다. 비용 인상을 소비자가격에 전가하는 것, 이는 경제 이론적으로도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비용 분담을 의미한다.
다행히 지금 우리는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시대가 아니라 디플레이션의 위험을 막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물가상승은 지나치지 않다면 경기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그밖에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의 납품단가 인상 요구를 수용하는 것, 그리고 조직된 노동자가 고용 안정성을 조금 양보하여 청년 채용에 숨통을 틔워 주는 것도 모두 이 계곡을 우리가 같이 건너가는 방법들이다.
<박복영 경희대 국제대학원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