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세상에 대한 예술가들의 반응이다. 그 반응 속에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인간 삶이 들어 있고 정신이 녹아 있다. 따라서 시대에 따라 삶과 예술의 정의가 달라지듯 화폭에 담는 내용이나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예술가도 사회 구성원의 일부이고, 공동체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일례로 스위스 작가 ‘토마스 허쉬혼’은 동시대 폭력적인 사회와 비열한 정치상황을 비참한 순간이 담긴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표현한다. 대표적인 작품인 ‘픽셀 콜라주’는 미디어를 통해 재생산된 사진작업으로, 우리에게 익명성과 진실성이란 무엇인지 되묻는다.
모잠비크 작가 곤살로 마분다의 ‘The Throne of intelligence’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와엘 샤키’는 광범위한 역사적·지리적 리서치를 바탕으로 국가, 종교, 예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한다. 주요 작품으로 거론되는 ‘십자군 카바레’ 3부작은 서유럽 기독교 관점으로 그려졌던 십자군 전쟁을 다층적이고 복잡한 중동의 역사와 정치, 사회적 맥락에서 재해석한 인형극이다. 이 작품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권력구도에서 벗어난 탈식민주의를 비롯해 역사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모잠비크 작가 ‘곤살로 마분다’는 길고 끔찍했던 내전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난 자신의 조국 모잠비크의 악몽을 작품으로 재생한다. 그는 소총, 미사일 등 16년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사용된 무기들을 작업 재료로 사용하는데, 평화를 위해 만들어진 무기가 되레 평화를 위협하는 살상도구가 되는 이중성을 꼬집는다. 하지만 그는 기능을 잃어버린 전쟁 무기가 예술로 소환될 때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이들 외에도 아프리카 가나의 엘 아나추이, 독일의 한스 하케, 멕시코의 호아킨 세구라, 프랑스의 JR(제이알) 등등의 적지 않은 작가들이 세상과 반응하며 시대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20여 명의 영국 건축가 및 디자이너그룹인 영국의 어셈블이나 런던 골드스미스대학 산하의 연구단체인 포렌식 아키텍처도 같은 카테고리에 든다. 이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당대 예술가로서 발언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환경·인권·자본·계급·난민 등과 같이 개인의 범주를 넘어 인류가 다함께 해결해야할 난제들이 무엇인지를 예술로 제시한다.
포렌식 아키텍처의 ‘M2 hospital’
영상 활동가이자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인 고(故) 박종필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평생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한 목소리가 되어주었고, 현장을 누비며 다름이 차별이 되는 사회와 불평등한 구조에 저항했다. 장애인 이동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와 IMF 실직 노숙자를 그린 ‘거리에서’, 세월호 민간 잠수사가 등장하는 ‘잠수사’ 등은 그가 풀다 남긴 숙제들이다.
세상에 대한 반응을 예술화하는 작가들은 사회적 필요 내에서의 기능을 예술의 가치로 확신한다. 정책 및 제도와 달리 예술이기에 생성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신뢰한다. 물론 수십 년 동안 동일한 주제와 개념으로 초지일관하는 작가들도 나름의 가치가 없진 않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감성의 소통을 이끌고, 예술의 쓸모를 대리한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가 처한 다양하고 남루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몸을 던지는, 즉 이타심을 배경으로 한 사회 실천적인 예술가들이 있기에 우리가 보다 나은 삶을 꿈꿀 수 있음은 명징하다.
<홍경한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