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증가는 가파른데 이에 대한 피해보상은 줄어들고 있다. 왜일까. 범죄피해자에 대한 보상기준으로 예산이 편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금의 수입기준으로 예산이 편성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들어오는 돈만큼만 지원하는 구조인 것이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고준희양 사건의 끝이 보이고 있다. 친부의 집에서 혈흔이 발견되고 친부 스스로 유기했다고 증언한 것으로 보아 해결의 가닥이 잡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아동폭력, 심지어는 살해에 이르는 상황을 대비하지 못해 이런 사건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범죄자 수용비, 범죄피해보호기금의 30배
형사사법의 인권 개선은 가해자 위주로 발전해 왔다. 피해자 인권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2008년 조두순 사건의 영향이 컸다. 범죄피해자와 그 유족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위로금 성격의 범죄피해 구조금은 1987년부터 2008년까지 500만원이 최대 상한선이었다.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2009년 3000만원, 2014년 9000만원까지 증액됐다. 구조금은 법무부가 조성하는 ‘범죄피해 보호기금’에서 나온다. 해마다 벌금 수입의 6%를 전입해 조성하는데, 올해 기금은 1019억원이다. 법무부 관계자도 “범죄자의 수사와 재판, 수용, 교화 등에 쓰이는 국가 예산이 연평균 3조원인 걸 고려하면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기금 사용처를 보면 강력범죄 피해자 또는 성폭력 피해자, 아동학대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최근 강력범죄,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해야 할 사회적 공감대는 커져가고 있다.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책임을 회피하고, 개인들은 무력하게 자신의 불운으로만 돌리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많이 발전한 것이다.
성탄절인 지난 12월 25일 오후 경찰이 전북 전주에서 실종된 고준희양(5)를 찾기 위해 하천을 수색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구체적인 사업을 보면 강력범죄 피해자 보호 및 지원사업은 범죄피해자 치료 및 자립지원, 형사 조정을 통한 피해회복 지원, 범죄피해구조금, 범죄피해자 등의 신변보호 강화 등이 있다. 그러나 예산은 2016년 1075억원에서 2017년 1019억원, 2018년 정부안은 1011억원으로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범죄 증가는 가파른데 피해보상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범죄피해자에 대한 보상기준으로 예산이 편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금의 수입기준으로 예산이 편성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들어오는 돈만큼만 지원하는 구조인 것이다. 결국 범죄자들 돈으로 피해자를 돕는다는 것인데, 이런 논리는 국가의 존재 이유가 안전과 행복에 있다는 것을 망각한 관료적인 발상이다. 국가가 제 역할을 못해 피해를 입은 범죄피해자들에게 수익자 부담의 원칙을 적용한 셈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강력범죄 피해자와 유족 2000여명에게 돌아간 구조금은 1인당 평균 670만원에 불과했다. 형사정책연구원이 추산한 강력범죄로 인한 경제적 손실(7950만원)의 12분의 1 수준이다. 연구원에 따르면 범죄피해자의 74.4%가 월 소득 20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이다. 범죄로 인한 경제적 피해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현재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여성가족부 위탁기관인 해바라기센터가, 아동학대 피해자는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한다. 법무부 산하에는 스마일센터와 각 검찰청에 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있다. 지난해 형사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제3차 범죄피해자 기본계획’ 보고서에서 “기관들 사이에 주요 서비스 대상과 내용 중첩이 발생하면서 경쟁관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 협력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중복 서비스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원센터가 대도시에만 있고 전문적 치료는 평일만 가능한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피해자 보호 실무는 경찰이, 기금 집행은 검찰로 이원화돼 발생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피해는 수시로 일어나는데 각 검찰청의 구조금 심의회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린다. 검찰에 사건이 송치되고 나서야 피해자 지원이 들어가면 이미 한참 지난 시점이다. 경찰 단계에서 필요한 보호업무가 있는데 인력이나 예산 등에서 어려움이 있다.
부처 간 칸막이와 중복 서비스가 문제
예산과 인력 배분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라도 범죄피해자 업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국회에는 법무부가 총괄하는 범죄피해자 보호업무를 총리실로 격상시키는 범죄피해자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이번 예산에서도 성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이 줄어들었다. 근본적 원인은 예산 편성 권한이 여성가족부가 아닌 법무부에 있기 때문이다. 여가부는 법무부가 책정한 예산을 집행하고 평가받는다. 여가부가 예산 편성의 자율권이 없는 상태에서 집행 실적에 따라 저조한 평가점수를 받으면서 예산이 감액된 것이다.
장기적으로 일반회계와 기금의 성격에 맞게 예산을 재편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은 “성폭력 피해자 지원사업의 사업 추진 부처(여가부)와 기금 관리 부처(법무부)가 서로 달라 사업 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여가부 소관 유사 사업과의 일관된 추진에 어려움이 있어 여가부 일반회계로 이관해 편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양성평등기금 내 성폭력 피해자 지원사업 또한 일반회계로 이관해 사업의 연계 추진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안전이다. 국가는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예산 부족이라는 이유로 이를 범죄자들에게서 걷는 벌금으로 충당한다는 것은 확보된 예산 수준에서만 사업을 진행한다는 잔여적인 사고방식이다. 결국 범죄피해자를 돕고자 만든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 자체 재원조달 부족으로 범죄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을 없애고 관련된 사업은 일반예산사업으로 전환하여 사회적 필요와 국민적 공감대를 통해 금액을 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과 국회 등 공기관들의 주장이다. 정부는 왜 존재하는가? 세금은 왜 내는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때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