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봉(1962~ )
<em>벽 틈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풀꽃도 피어 있다.
틈이 생명줄이다.
틈이 생명을 낳고 생명을 기른다.
틈이 생긴 구석.
사람들은 그걸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 쓴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 팔을 벌리는 것.
언제든 안을 준비돼 있다고
자기 가슴 한쪽을 비워놓은 것.
틈은 아름다운 허점.
틈을 가진 사람만이 사랑을 낳고 사랑을 기른다.
꽃이 피는 곳.
빈곳이 걸어 나온다.
상처의 자리. 상처에 살이 차오른 자리.
헤아릴 수 없는 쓸쓸함 오래 응시하던 눈빛이 자라는 곳.
</em>
새 달력을 걸고 새 수첩을 펼친다. 잘 살자. 틈이 많고 허술한 점이 많다 보니 새해 각오도 어딘가 틈이 보이는 듯하다. 일이든 사람 관계든 야무지고 빈틈없이 처리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결코 내가 할 수 없는 일임을 알아챈다. 틈이 있는 대로, 비어 있는 대로 그냥 두자. 비어 놓으면 뭔가가 차오르겠지. ‘빈곳이 걸어 나온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