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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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기

입력 2017.12.19 18:44

도종환(1955~ )

아침에 내린 비가 이파리 위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어는 저녁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주려고
고갯마루에서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뒷모습처럼 서서 빈 가지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
부스러진 잎사귀와 끌려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
그래도 뿌리 하나로 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

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
떨어진 잎 이 세상 거리에 황망히 흩어진 뒤
뿌리까지 얼고 만 밤
씨앗 하나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

이 겨울 우리 몇몇만
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해도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

차가운 겨울 하늘에도 봄볕은 숨어 있고 눈서리 길어도 그 속에는 꽃 소식이 있어 그까짓 추위는 몇 번 비벼서 따뜻해진 손으로 마주 잡으면 살아지겠지 살아지겠지.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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