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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성

입력 2017.11.15 09:21

조정권(1949~2017)

배추를 뽑아 보면서 안쓰럽게 버티다가
뽑혀져 나온 뿌리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뿌리들이 여지껏 흙 속에서 악착스럽게
힘을 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뿌리는 결국 제 몸통을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배추를 뽑아 보면서 이렇게 많은 배추들이 제각기
제 뿌리를 데리고 나옴을 볼 때
뿌리들이 모두 떠난 흙의 숙연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배추는 뽑히더라도 뿌리는 악착스러우리만큼
흙의 혈을 물고 나온다
부러지거나 끊어진 배추뿌리에 묻어 있는 피
이놈들은 어둠 속에서 버티다가 버티다가
독하게 제 하반신을 스스로 잘라 버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뽑혀지는 것은 절대로 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뽑혀지더라도 흙 속에는 아직도 뽑혀지지 않은
그 무엇이 악착스럽게 붙어 있다
흙의 육을 이빨로 물어뜯은 채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고 생각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 스스로 악착스럽게 잡고 버티게 하는 힘이 있다. ‘뽑혀지더라도 흙 속에는 아직 뽑혀지지 않은 그 무엇이 악착스럽게 붙어 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일으키는 힘, 근성(根性)이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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