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만든 미터법은 그 합리성과 일관성 덕에 금세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영국이나 미국 등 아직도 일상생활에서 고유의 단위를 고집하는 나라들도 남아있지만, 과학기술에서는 미터법과 그에 바탕을 둔 국제단위계(SI)가 표준이 되었다.
프랑스 파리 교외의 국제도량형국 지하에는 저울추 하나가 세 겹의 유리용기 안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백금과 이리듐을 섞어 대략 골프공 크기의 원통 모양으로 만든 이 저울추의 질량은 1.000000kg이다. 바로 세계 모든 저울의 기준이 되는 ‘킬로그램 원기(原器)’다.
그런데 이 저울추는 내년이면 퇴역하여 역사의 유물이 된다.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0.0000001kg(또는 100㎍) 정도의 오차가 생겨나면서 일곱 자리로 유효숫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국제도량형국은 공기와 접촉을 막고자 밀폐용기 안에 모셔 두고, 다른 저울추를 조정할 때에도 공인된 복사본을 이용하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원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모두 막는 것은 불가능했고, 이 작은 변화들이 100㎍(마이크로그램), 즉 1만분의 1g 수준으로 누적되자 원기의 신뢰성에 금이 간 것이다.
파리에 전시된 킬로그램원기의 공인 복제본. / 위키백과 이미지
표준 도량형은 국가의 중요한 과업
100㎍, 또는 1000만분의 1kg이라면 일상생활에서는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 질량이다. 하지만 약학이나 전자공학 등 대단히 작은 세계를 다루는 분야에서는 작지 않은 오차다. 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18년 열리는 국제도량형총회에서는 ‘킬로그램 재정의 안건’을 의결하여 킬로그램 단위에 대한 기존 정의를 폐기하고 새로운 정의를 채택하기로 했다. 새로운 정의는 인간이 만든 원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의 가장 기본 상수 중 하나인 플랑크상수(h)를 바탕으로 삼기로 한 것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추를 올려놓은 저울의 반대편에 전기장을 걸어서 수평을 맞추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계산하고, 이것을 단위 변환하면 질량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원기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의 근본 상수를 바탕으로 삼겠다”는 취지는 반박할 수 없는 자명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생각 자체가 어찌 보면 근대의 산물이다. 킬로그램이라는 단위가 탄생한 배경에도 그와 같은 근대적 열망이 녹아들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을 남겼다. 인간이 스스로를 기준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이 세상을 측정하는 잣대, 즉 도량형도 대체로 인간에게서 비롯된 기준들을 바탕으로 정립되었다. 동북아시아의 치(寸)나 유럽의 인치(inch)는 손가락 마디의 길이에서, 자(尺)나 피트(feet) 또는 고대 이집트의 큐빗(cubit) 등은 발의 길이 또는 하박부의 길이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사람마다 몸이 제각각이므로 신체를 기준으로 한 도량형은 항상 모호함을 안고 있었다. 누구나 손가락 마디가 얼추 한 치는 되지만, 아무도 손가락 마디가 한 치로 딱 떨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사람마다 도량형이 제각각이라면 장사에는 다툼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기술은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며, 나라는 세금을 걷는 데도 일관된 기준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문명이 발달하면서 도량형을 표준화하여 보급하는 것은 나라의 중요한 과업이 되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유교문명이 정립되면서 여러 다른 차원을 아우르는 일관성 있는 도량형 체계를 만들려는 복잡한 시도가 이어졌다. 도량형이라는 말도 풀어보면 도(度)는 길이를 재는 자, 양(量)은 부피를 재는 됫박, 형(衡)은 무게를 다는 저울을 뜻한다. 도량형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뜻밖에도 소리, 즉 음악이다. 아악에서 ‘황종’이라는 이름의 음은 ‘기장 1200알이 들어가는 부피의 피리로 내는 소리’로 정의하고 있다. 피리의 지름이 정해져 있으므로 그 길이를 구하면, 그것이 바로 한 자(1 황종척)가 된다. 이를 변환하여 부피와 무게의 기본 단위도 정할 수 있다. 세종대왕이 각종 문물제도를 정비하면서 박연에게 황종관을 새로 만들고 아악(雅樂)을 정비하도록 명한 것은 단순한 여흥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기본체계를 확립하는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1미터’는 지구 세로둘레 4000만분의 1
하지만 일견 고도로 세련되어 보이는 이러한 도량형 체계도 현실에서는 그다지 잘 적용되지 않았다. ‘기장 1200알’과 같은 기준이 시간과 장소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류의 이성이 팽창하면서, 이렇게 인간 또는 동식물에 바탕을 둔 도량형은 자연의 진리를 탐구하는 데는 적절치 않다는 인식도 자라났다. ‘자연스러운’ 것들에 구태여 의문을 던지고, 종내는 ‘부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정확한’ 설명들로 바꿔놓은 것이 바로 근대과학이다. 인류 이성의 영원한 진보를 믿었던 근대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을 초월한 영원불변의 잣대를 찾고자 했다.
계몽사상의 세례를 받은 프랑스 혁명기에 미터법이 제정된 것은 그런 면에서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혁명이 시작된 바로 이듬해인 1790년, 프랑스 정부는 불변의 우주에 바탕을 둔 새로운 도량형을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왕정을 폐지하고 유럽의 모든 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등 국내외의 연이은 혼란 속에서도 프랑스 과학자들은 북극점에서 적도까지의 거리를 재는 탐사여행에 나섰고, 1793년에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지구의 세로둘레(자오선의 길이)의 4000만분의 1을 ‘1미터’라고 부르는 새로운 도량형을 만들어냈다. 질량 또는 무게의 단위도 미터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밀도가 최대가 되는 섭씨 4도의 물을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센티미터(100분의 1미터)인 용기에 담았을 때의 질량을 ‘1그램’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다만 매번 ‘지구 둘레의 4000만분의 1’이나 ‘1세제곱미터의 물’을 측정하여 쓸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이에 바탕을 둔 표준 자(미터 원기)와 표준 저울추(킬로그램 원기)를 만들어 실질적인 표준으로 삼았다.
프랑스가 만든 미터법은 그 합리성과 일관성 덕에 금세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영국이나 미국 등 아직도 일상생활에서 고유의 단위를 고집하는 나라들도 남아있지만, 과학기술에서는 미터법과 그에 바탕을 둔 국제단위계(SI)가 표준이 되었다.
미터법은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져서, 부득이하게 미터 원기나 킬로그램 원기 같은 인공물에 의지할 필요도 점점 줄어들었다. 20세기에 성립한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플랑크상수나 광속 등 우주 어디에서도 변하지 않는 값들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오늘날 1미터는 더 이상 미터 원기의 길이도, 지구 자오선의 4000만분의 1도 아니라, ‘빛이 진공에서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거리’로 정의된다. 계몽주의자의 후예들은 이렇게 선조가 시작한 여정에서 한 발짝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