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빅픽처스
제목 유리정원
원제 Glass Garden
감독 신수원
주연 문근영, 김태훈, 서태화, 임정운, 박지수
상영시간 116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7년 10월 25일
어쩌다 보니 그날은 양복차림이었다. 영화사 관계자처럼 보였나 보다. 대기석에 앉아 있는 어린 여배우들이 꾸벅하고 인사했다. 어어, 하다 인사를 받았다.
그게 개인적으론 첫 만남이었다. 배우 문근영. <장화, 홍련>(2003)의 시사회장이었다.
2~3년쯤 후, ‘연예인 X파일’ 사건이 터졌다. 유명기획사가 영화계에 도는 지저분한 소문들을 취합해 PPT파일로 모아놓은 것인데, ‘너 한 번 읽어봐’라고 누군가 메신저로 밖으로 유출한 것이 사단이 났다. 그런데 그 스캔들로 제일 득본 것은 문근영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문근영에 대해선 좋은 말만 잔뜩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공부면 공부, 연기면 연기, 성격이면 성격. 기획사가 모아놓은 영화계 인사들의 전망은 그녀가 차세대 충무로를 이끌 유망주 1순위라는 것이었다. 위기는 외부로부터 왔다. 그의 외조부 좌익 경력을 물고 늘어진 지만원씨와 같은 우익인사들의 끈질긴 공격이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녀를 공격한 사람들은 여론의 지탄을 받았지만 정작 피해당사자인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마 속으로 곪아갔을 것이다.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그녀의 연기는 처연했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극중 연구원 재연의 연기에는 내면으로 고통을 삭여야 했던 그녀의 삶이 녹아 있었다. 감독(신수원)이 그녀를 이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한 것은 그런 내면을 꿰뚫어본 때문일까.
매리 샐리의 프랑켄슈타인 이래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의 비뚤어진 욕망을 변주한 판타지 계열의 영화는 많이 만들어졌다. 재연(문근영 분)은 대학에서 녹혈구를 연구하고 있다. 녹혈구란 산소를 나르는 적혈구를 대신해, 스스로 산소를 생산하는 엽록소를 유전자 조작을 통해 핏줄 속에 흐르게 하는 것인데, 이 연구가 성공한다면 따로 산소호흡을 할 필요 없이 불사의 존재가 될 수 있다. 다만 수많은 연구윤리 규정을 지켜가며 임상실험을 거치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가 있다. 지도교수(서태화 분)는 무언의 압박으로 당장 랩을 살리기 위해 ‘돈 되는’ 연구를 요구한다. 교수의 선택에 좌절한 재연은 낙향해 그녀가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 숲 속의 ‘유리정원’에 연구실을 차리고 녹혈구 연구에 매진한다.
한편, 금기시되어 있는 문단 거물의 표절 문제를 폭로하고 당장 살 길이 막막해진 작가 지훈(김태훈 역)은 건너편 옥탑방 문 앞에서 좌절하고 흐느끼는 재연을 목격하고 그녀에게 관심을 갖는데, 그 호기심이 그를 시골마을 숲 속의 유리정원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 탐사과정을 웹소설로 써 성공을 거둔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너도 나도 해피한 결말은 없다. 여기서 영화는 ‘다크 판타지’를 추구하는 앞서 프랑켄슈타인의 길을 따른다.
확실히, 영화는 독특하다. 영화의 주된 톤인 ‘녹색’은 상투적인 상징인 희망이나 성장이 아닌 좌절이나 밀림의 공포와 결합한다. 그 낯선 조합이 영화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다. 뜯어보면 그 자체가 판타지적 공간인 유리정원과 두 주인공이 공유한 옥탑방, 출판계와 연구실(랩)이라는 공간의 구조 대칭도 감독이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머무르지 않고 얼마나 많은 사유를 영화에 투여했는지 어렴풋하게 느끼게 된다. 어쨌든 영화를 보며 자꾸 신경이 쓰였던 것은 상영시간 내내 주연배우 문근영씨 얼굴에 드리운 음영이다. 물론 영화가 요구하는 것은 정극 연기였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