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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은 월드컵이 아니다

입력 2017.10.23 15:34

[칼럼]노벨상은 월드컵이 아니다

북유럽을 여행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다는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을 막 지나칠 무렵 스마트폰 창에 뜬 속보를 통해 노벨문학상 선정자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고은 시인이 또다시 노벨 문학상 수상에 실패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연관 검색어에 이끌려 며칠 앞선 기사를 검색해 봤다. 고은 시인이 영국의 도박 사이트에서 배당률 4위로 급상승해 수상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설레발치던 뉴스가 눈에 띄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에는 고은 시인의 수상 실패 요인을 진단하고 향후 한국 문학이 노벨문학상을 타기 위해 필요한 전략까지 제시하는 야심찬 분석기사들이 잇달아 인터넷에 올라왔다. 우리 언론이 노벨상을 다루는 방식이 대략 이렇다. 노벨상을, 그것도 문학상 수상 가능성을 판돈이 오가는 도박판 배당률 따위에 근거해 점치고, 결과가 발표된 후에는 마치 스포츠 경기가 끝난 것처럼 승패를 기준으로 파헤친다. 노벨상은 월드컵이 아닌데도 말이다.

때마침 며칠 후 스웨덴에서는 룩셈부르크와의 월드컵 유럽 예선전이 열렸다. 스톡홀름 상점 어디를 가도 TV 화면에는 축구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나중에 결과를 확인하니 스웨덴이 8대 0 대승을 거뒀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간에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러시아와의 평가전에서 졸전 끝에 2대 4로 패배하고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는 소식이 스마트폰 창에 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감독 경질론이 대두되고, 축구협회의 무능을 지적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어진 모로코와의 평가전까지 패배하자 급기야 축구팀이 귀국하는 인천공항에는 시위대까지 몰려갔다.

노벨상과 월드컵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얼추 비슷하다. 이 둘은 흡사 국운이라도 걸린 듯 사력을 다해 반드시 성취해야만 하는 국민적 염원처럼 간주된다. 염원만 간절할 뿐 막상 기반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기초과학은 외면 받고 문학은 냉대당하는데 그래도 노벨상만은 갈망한다. K-리그전이 열리는 축구장 관객석은 늘 썰렁하고 선수들의 인권은 여전히 보장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국가대표팀에 대해서는 전 국민이 감독 노릇을 하며 승리만을 열망한다. 노벨상과 월드컵은 아주 많이 다른데도 말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한 번 올랐다고 해서 한국이 순식간에 축구 강국의 반열에 든 게 아니라는 점을 그때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설령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국익이 훼손되고 국운이 쇠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 어떤 걸출한 천재가 느닷없이 나타나 노벨 물리학상이나 노벨 문학상을 거머쥔다고 해서 한국의 과학이나 문학 수준이 갑자기 수직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직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한국의 과학과 문학 수준이 형편없이 낮은 지경인 것도 역시 아니다.

자신의 나라에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노벨상 발표가 이뤄진 그 순간에도 스웨덴 사람들은 놀랄 만큼 평범했다. 월드컵 예선에서 엄청난 압승을 거둔 그 순간에도 축구 강국 스웨덴 사람들은 얄밉도록 차분했다. 우리와 달리 그들에게 노벨상은 그저 노벨상일 뿐이었고, 월드컵은 단지 월드컵일 뿐이었다. 북유럽 국가가 부러운 이유를 또 하나 찾게 된 여행이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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