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물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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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물결 하나

입력 2017.10.10 18:53

나희덕(1966~)

한강 철교를 건너는 동안
잔물결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얼마 안 되는 보증금을 빼서 서울을 떠난 후
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한강.
어제의 내가 그 강물에 뒤척이고 있었다
한 뼘쯤 솟았다 내려앉는 물결들.
서울에 사는 동안 내게 지분이 있었다면
저 물결 한쪽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결 하나 일으켜
열 번이 넘게 이삿짐을 쌌고
물결 하나 일으켜
물새 같은 아이 둘을 업어 길렀다
사랑도 물결 하나처럼
사소하게 일었다 스러지곤 했다
더는 걸을 수 없는 무릎을 일으켜 세운 것도
저 낮은 물결 위에서였다
숱한 목숨들이 일렁이며 흘러가는 이 도시에서
뒤척이며, 뒤척이며, 그러나
한 번도 같은 자리로 내려앉지 않는
물결 위에 쌓았다 허문 날들이 있었다
거대한 점묘화 같은 서울.
물결 하나가 반짝이며 내게 말을 건넸다
저 물결을 일으켜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예전에 살던 곳을 지날 때면 기분이 참 이상하다. 그곳에서 보낸 시절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사람도 건물도 풍광도 많이 바뀌었지만, 그곳에 살았던 시간이 금세 내 앞에 와 있다. 느닷없이 소환된 지난날, 그 시절이 말을 걸면서 갈 길을 묻는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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