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은 힘이 세다. 사실과 가공의 담벼락을 절묘하게 거닐며 관객을 화면 속으로 빨아들인다.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는 1100만명의 관객들을 1980년 5월의 광주 금남로로 안내한다.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 분)에게 그날은 ‘운수좋은 날’이다. 독일 기자인 피터를 태우고 광주로 갔다가 통금 전에 돌아오면 10만원을 받을 수 있다. 10만원은 그간 밀린 몇달치 월세를 갚을 수 있는 거금이다. 한국은행의 ‘화폐가치 계산’을 이용하면 1980년 5월과 2017년 8월 물가상승배수는 36.7배다. 당시 10만원은 현재 367만원쯤 된다. 광주의 상황이 엄중한 만큼 왕복비용으로 이 정도는 필요하다고 피터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는 ‘효용가치설’과 닮았다. 효용가치설이란 구매자가 상품의 효용가치를 주관적으로 판단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알프레드 마샬 등 신고전학파가 ‘효용’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정착시킨 이론이다.
/ 쇼박스
택시운전사 만섭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10만원은 너무 큰 돈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광주까지 오가는 데 드는 비용은 그만큼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섭에게 왕복 택시비란 광주까지 운전하는 데 드는 운전노동과 기름값에 약간의 이윤을 더한 가치다.
상품의 가격이 투입비용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면 ‘노동가치설’에 가깝다. 노동가치설이란 상품의 가격은 투입된 노동량에 비례한다는 이론이다. 노동가치설은 아담 스미스, 리카도 등 고전학파들의 논리다. 자본론을 주창한 마르크스가 노동가치설을 이어받았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노동가치설이 지배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노동가치설만으로는 교환가치와 사용가치 간에 왜 차이가 나는지를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즉 공기처럼 사용가치가 큰 상품은 교환가치가 작은 반면, 사용가치가 거의 없는 보석은 교환가치가 컸다. 가치는 투입된 객관적인 노동량이 아니라 주관적인 효용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하니 비로소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광주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 만섭은 그제서야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위험한 데를 10만원으로 갈 사람이 어딨냐”며 역정을 낸다. 자신의 노동가치, 기름값, 그리고 리스크 비용이 더해지니 10만원은 결코 큰 돈이 아니었다.
효용가치설과 노동가치설은 심심찮게 충돌한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아파트 원가공개를, 치킨 가격을 잡기 위해 치킨 원가공개를 요구한다면 ‘노동가치설’에 가깝다. 반대로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자신들이 매긴 가치에 따라 가격을 결정하니 아파트 원가나 치킨 원가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효용가치설’이다.
생산보다 수요가 중요한 요즘 경제학에서는 효용가치설에 무게추가 좀 더 쏠린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수많은 상품 공급자가 있고 각 경제주체들은 모든 정보를 동등 수준으로 얻는 완전경쟁이 이뤄지는 시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점이나 투기 등으로 인해 시장이 왜곡됐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공급자의 과도한 이윤 추구를 방치했다가는 시장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과도한 물가상승 때 정부가 개입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딸 생각에 서울로 돌아가던 만섭은 발길을 다시 광주로 돌린다. 군인들의 발포로 쓰러지는 광주시민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피터에게 추가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광주의 진실을 세계로 알리는 효용가치가 택시요금보다 더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섭의 기대대로 피터의 보도는 효용가치를 매길 수 없는 정도로 귀중한 보도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