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1936~)
전실 딸 셋의 철물점 주인 중늙은이한테 후살이를 간
전화교환원을 지낸 새파란 전쟁미망인이 좋아서,
그 옆 두 평짜리 가게에서 풀빵을 굽던 머리 검노란
그녀의 동생이 더욱 좋아서,
인사 한 번 옳게 않다가도 밥사발이 비면 주걱으로
채워주던 두 볼이 붉은 상밥집 젊은 새댁이 좋아서,
늙은 나무에 감이 익는 청국장 냄새가 짙게 배었던
그집 널따란 마당이 더더욱 좋아서,
그래서 더욱 슬펐던 내 산읍에서의 한철…….
시외로 가는 완행버스를 탄다, 한 백 리 가서 내리면
퇴락한 장터, 골목으로 접어들면 상밥집도 있겠지,
청국장을 끓여 달래 요기를 하고, 그리고 걷자,
해 떨어지기까지, 그 산읍에서처럼,
담 넘어오는 따뜻한 숨소리를 엿들으며, 감이 붉으면.
초록 감이 툭 툭 떨어진다. 얼마 안 있으면 감은 붉게 물들고, 좀 더 지나면 이파리를 떨군 채 붉게 물들 것이다. 시인은 언젠가 ‘그래서 더욱 슬펐던 내 산읍에서의 한철……’을 보냈나 보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 ‘그 산읍에서처럼’ 정겨운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감이 붉으면’ 어디선가 따뜻한 숨소리가 들릴 것 같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