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1968~ )
짐 꾸리던 손이
작은 짐이 되어 등 뒤로 얹혔다
가장 소중한 것이 자신임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 끗발 조이던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안았다
세상을 거머쥐려 나돌던 손가락이
제 등을 넘어 스스로를 껴안았다
젊어서는 시린 게 가슴뿐인 줄 알았지
등 뒤에 두 손을 얹자 기댈 곳 없던 등허리가
아기처럼 다소곳해진다, 토닥토닥
어깨 위로 억새꽃이 흩날리고 있다
구멍 숭숭 뚫린 뼈마디로도
아기를 잘 업을 수 있는 것은
허공 한 채 업고 다니는 저 뒷짐의
둥근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겠는가
밀쳐놓은 빈손 위에
무한 천공의 주춧돌이 가볍게 올라앉았다
나이가 들면 점점 뒷짐질 일이 많아진다. 달려들 일도, 해야 할 일도 줄기 때문이다. 하지만 뒷짐지면서 몸이 편해지기도 한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쉴 수 있다. ‘세상을 거머쥐려 나돌던 손가락이 제 등을 넘어 스스로를 껴안았다.’ 시인은 ‘허공 한 채 업고 다니는’ 뒷짐을 ‘둥근 아름다움’이라고도 한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