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도 경제위기야?”
“우리나라가 경제위기니까.”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면 부모들이 잠을 같이 안 자?”
개구쟁이 아들의 갑작스런 질문에 아빠 지오그로의 말문이 턱 막힌다. 아이는 이미 달라진 집안의 공기를 맡고 있었던 거다. 국가 경제위기는 기업과 개인을 위험에 빠뜨린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 포스터./(주)팝엔터테인먼트 제공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감독의 <나의 사랑, 그리스>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던 2015년 그리스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과도한 국가부채로 인한 국가부도 위기,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그리고 가혹한 긴축. 이어지는 자살과 가정파탄. 이는 20년 전 겪었고, 여전히 그 여진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의 사랑, 그리스>는 경제위기 속에서 피어난 세 개의 사랑 이야기가 얽혀 있다. 여대생 다프네와 시리아 난민 청년인 파리스의 20대의 사랑, 그리스의 한 회사 매각을 위해 스웨덴에서 파견돼온 엘리제와 피매각회사의 직원인 지오그로의 40대 사랑, 그리스 주부 마리아와 독일 교수 세바스찬의 60대의 사랑 등이다. 다른 언어를 쓰는 세 커플의 각기 다른 사랑 이야기는 한 지점에서 만난다. 하지만 경제위기 속의 사랑은 마냥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가 본격 분출된 것은 2009년 11월이었다. 그리스는 자신들의 실제 재정적자가 지금까지 발표치의 2배라고 실토했다. 그간 가려져 있던 국가부채 문제가 터져나오면서 유럽 채무위기는 암처럼 급속히 확산됐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PIGS 국가가 특히 문제였다. 앞서 2008년 7월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왜 돼지(PIGS)는 날지 못하나(Why PIGS can’t fly)’라는 기사를 통해서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를 경고했다. PIGS라는 용어가 처음 쓰인 것은 이때다.
그리스인은 낙천적인 성격과 끈끈한 가족의 유대관계를 자랑한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닥친 경제위기는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주택담보대출, 생명보험료, 가스료, 전기료, 재산세, 의료보험, 신용카드 대금… 밀려드는 청구서에 지오그로는 우울증 약인 로세프트를 먹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디폴트가 우려됐던 그리스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 등 이른바 ‘트로이카’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구제금융에는 조건이 있었다. 복지 축소 등 긴축정책과 증세 등 조세개혁이었다. 그 혹독함에 질린 국민들은 반발했다. 2015년 1월 정권을 잡은 급진좌파 정당인 시리자는 그렉시트(Grexit)라는 배수진을 쳤다. 그렉시트란 그리스(Greece)와 탈출(Exit)의 합성어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뜻한다. 더 이상 유로화를 쓰지 않고 과거 자신들의 돈인 드마크라를 쓰겠다는 의미로 시티그룹 수석 분석가인 윌렘 바우터가 2012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처음 언급했다.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은 타 국가의 연쇄 이탈을 유도해 유럽연합 자체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세계 경제를 긴장시켰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유럽연합도 강경해지고 있다. 구제금융에 대한 조건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유로존에서 강제로 퇴출시키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른바 그렉아웃(Grexout)이다. 그리스(Greece)와 퇴출(Out)의 합성어다. 영화는 경제위기의 해법으로 ‘사랑’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리스와 유럽의 힘겨루기를 보면 돈 앞에서는 에로스의 힘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