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규(1958~ )
책을 책꽂이에 꽂는 일이 먼저이고요,
책꽂이의 책을 가지런히 하는 게 그 다음입니다.
책꽂이가 좁아 책을 책상 모서리에 쌓아 올려야 하고요.
연필을 깎다 보니 손이 더러워졌죠.
손을 씻고 다시 책상에 앉습니다.
촛불을 밝히는 일이 먼저이고요,
흘러내리는 촛농이 굳기를 기다리는 일이 그 다음입니다.
촛불이 만들어주는 그림자에 흰 종이를 내어 보여주지요.
그림자가 잠드는 때를 기다립니다.
손을 씻고 다시 책상에 앉습니다.
책상서랍을 열어 잡동사니를 정돈합니다. 필통, 수첩, 만년필,
저금통장, 동전, 묵은 교통카드, 영수증, 알약, 사진 여러 장…….
사진을 보다가 눈이 움푹 들어가 버렸네요. 움푹 팬 눈이
우물이 되었고요. 그 우물 속으로 누가 두레박을 타고 내려옵니다.
오디오를 켜는 일이 먼저이고요,
음악을 듣는 게 그 다음입니다.
뱃속의 태아처럼 몸을 모은 여자가
허공에 떠 있습니다. 수학시험에 못 푼 문제들이
꼬리를 뭅니다. 도대체 이 시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딴청을 부린다 싶으면 불안해진다. 무엇을 하기 위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할때는 더욱 더 그렇다. 하지만 딴짓도 해야 할 일을 하는 단계. 좀 더디면 어떤가, 딴길로 새면 어떤가. 딴짓하면서 마음을 모은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