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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시곗바늘은 늘 시계 방향으로 도는가?

입력 2017.07.31 16:39

북반구에서 만든 기계식 시계는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바늘을 달게 되었고, 그것을 사람들은 ‘시계 방향(clockwise)’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남쪽 하늘을 지나 서쪽으로 진다. 매일 조금씩 위치가 바뀌기는 하지만, 별들도 동에서 서로 뜨고 진다. 남쪽 상공을 보고 앉으면 왼쪽에서 나와 눈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사라진다. 마치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방향과 같다.

시곗바늘이 도는 방향과 천체가 움직이는 방향이 같다니 일관성이 있어서 이해하기도 쉽고 기억하기도 쉬워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시계 방향’은 해시계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방향, 즉 해가 움직이는 방향에서 비롯된 말이기 때문이다.

시계 방향은 천체의 운행 방향

해시계는 인간이 하루라는 단위로 시간을 인식하고 만든 최초의 시계다. 물시계나 기계식 시계처럼 복잡한 부속을 갖춘 시계보다 간단해 보이기 때문에 흔히 원시적인 시계일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천체의 움직임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잘 만든 해시계는 가장 정확한 시계이기도 하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찍은 해시계 사진. 남반구에서 해시계는 소위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 필제 제공.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찍은 해시계 사진. 남반구에서 해시계는 소위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 필제 제공.

정확한 해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수준의 천문학 지식이 필요하다. 언제가 정오인지 알려면 동서남북을 정확하게 잴 수 있어야 한다. 둥근 호를 그리며 이동하는 해가 평면에 남기는 그림자는 한낮에는 짧고 아침과 저녁에는 길어지므로 해시계의 눈금도 그 차이를 반영하여 다르게 매겨야 한다. 또한 앙부일구처럼 하루의 시각뿐 아니라 계절까지 알려주는 해시계를 만들려면, 여러 해에 걸쳐 각 절기에 따른 해의 움직임을 꼼꼼하게 기록한 정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정밀한 천문학을 발전시켜온 문명들은 대부분 북반구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북반구에서는 태양이 동녘에서 떠올라 남쪽 하늘을 지나 서녘으로 지므로, 해시계의 그림자는 서쪽에서 북쪽을 거쳐 동쪽으로 옮겨간다. 대대로 이런 모습의 해시계를 보고 살아온 사람들이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시계를 만들었을 때,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방향을 해시계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방향과 맞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북반구에서 만든 기계식 시계는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바늘을 달게 되었고, 그것을 사람들은 ‘시계 방향(clockwise)’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시계가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사실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다. 북반구 사람들이 북반구에서 살고 있을 때에는. 그러나 인류의 이동 범위가 넓어져서 북반구와 남반구의 문명들이 교류(이와 같은 중립적 표현은 당시 벌어진 수많은 참혹한 일들을 가려버리는 것이기는 하지만)하기 시작하면서, 북반구 사람들은 놀라운 일들을 겪기 시작했다.

적도를 넘어가면 북쪽으로 갈수록 따뜻해지고 남쪽으로 갈수록 추워진다. 물이 소용돌이칠 때에는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맴돈다. 그리고 천체들은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에서 지기는 하지만 남쪽이 아니라 북쪽 상공을 지난다. 따라서 해시계의 그림자가 도는 방향도 왼쪽, 즉 시계 반대 방향(counter-clockwise)이다.

남반구 사람들의 시계는 시계 방향으로 돌지만 천체는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물론 오늘날 천체를 보고 시각을 재는 사람은 대단히 적을 것이므로 이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북반구, 특히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나라들이 근대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하면서 세계의 남쪽 절반과 그곳 사람들의 시선은 가볍게 취급받거나 무시당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호주인 스튜어드 맥아더가 1971년 그린 지도는 기존 메르카토르 도법에서 남북방향을 바꿔 호주가 중심에 오도록 했다. / 위키백과 공유 이미지

호주인 스튜어드 맥아더가 1971년 그린 지도는 기존 메르카토르 도법에서 남북방향을 바꿔 호주가 중심에 오도록 했다. / 위키백과 공유 이미지

남반구에 가면 반대가 되는 것들

세계지도의 이른바 ‘그린란드 문제’는 의도적이건 아니건 세계의 남쪽이 가볍게 취급받아 왔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례다. 둥근 지구의 표면을 펼쳐서 평면에 투영하다 보면 어느 정도의 왜곡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세계지도를 네모꼴로 만들면 양쪽 극지방이 실제보다 대단히 넓어지게 된다. 고전적인 메르카토르 도법에 따라 그린 세계지도에서는 북극의 그린란드가 대단히 넓게 표시된다. 실제로는 14배나 넓은 아프리카 대륙과 그린란드가 거의 비슷해 보일 지경이다.

남반구 나라와 그 사람들의 자의식이 성장하면서 이 ‘그린란드 문제’는 열띤 토론의 초점이 되었다. 16세기 플랑드르 사람이었던 메르카토르가 자신이 살았던 북부 유럽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쳐도, 20세기까지 이런 지도를 쓰는 것이 옳으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특히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높아졌다. 이에 따라 요즘에는 극지방의 왜곡을 줄이고 적도 지역을 실제 크기에 가깝게 표현하는 빈켈 트리펠 도법 등이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지도라는 것이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에 투영한 것이기에 어떤 도법도 완전할 수는 없다. 빈켈 트리펠 도법은 남북 방향의 왜곡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지도 양 끝에 놓인 나라들이 중심에 비해 많이 왜곡되는 한계를 여전히 안고 있다. 그림과 같이 대서양을 중심으로 삼으면 북미 동해안과 서유럽과 아프리카 등은 덜 왜곡되지만, 동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형태는 상당히 왜곡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넓이는 사실에 가깝다). 반대로 태평양을 중심으로 그리면 동아시아와 미국 서해안의 형태는 왜곡을 피할 수 있지만 다른 지역의 모습이 일그러질 것이다.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일 것이다. 사실 과학이라는 것도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이 쌓여 이루어진 지식과 실천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식하고 이해하는 주체, 인간이 있다.

세계를 인식하는 데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세계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인간이 기울여온 노력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생물학적·사회적·역사적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한계를 넘어 다른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을 남기고자 노력하는 과정이야말로 인류의 지적 여정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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