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은 <옥자>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봉준호 감독
봉준호 감독(48). 다작 감독은 아니다. 3~4년에 한 편이다. 내놓는 영화마다 숱한 화제를 뿌린다. 논쟁도 활발하다. 이번에 내놓은 <옥자>도 그렇다. 일단 논란은 그가 선택한 영화 개봉 방식을 두고 벌어졌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시 말해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개봉이다.
국내 극장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멀티플렉스들은 <옥자>를 외면했다. 넷플릭스 ‘밖’, 오프라인에서는 전국 각지의 단관 극장들, 다양성 영화 극장을 통해 개봉됐다. 감독은 “가늘고 길게, 가급적 여러 층의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현재 전국 57개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7월 21일 기준으로 누적 관객 수는 28만명을 넘었다. 넷플릭스 ‘관람’은 제외된 수치다. ‘공동체 개봉’도 추진되고 있다. 7월 28일, 동물보호시민단체 KARA 회원들과 함께하는 상영회도 열릴 예정이다.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다. 예전 식으로 말하면 문예영화, 그리고 독립영화 중심으로 영화산업의 비주류 생태계가 첨단기술로 무장한 글로벌 IT기업의 대규모 자본 투자를 받은 상업영화 덕분에 재발견되고 있는 현실이. <옥자>가 영화산업의 미래나 플랫폼을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문제는 이미 여러 매체에서 다뤘다. 어찌 보면 주변적인 논란이다. 봉 감독이 <옥자>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주간경향>이 봉 감독을 만나 인터뷰한 이유다.
-영화 첫 장면부터 인상적입니다. 폐허가 된 대공장에서 천장을 향해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인 루시 미란도가 내려옵니다. 화면 중앙을 기점으로 동선을 보면 역기역자 형태의 동선이에요. 예를 들어 평론의 입장에서 볼 때 김기영 감독 영화의 주무대인 2층 양옥집의 계단은 계급 내지는 신분 상승과 추락을 상징하는 알레고리로 보통 해석합니다. 옥자에서도 그런 알레고리를 의도한 것인가요.
“공간 자체가 19세기에 쓰던 폐광입니다. 공간 자체가 시각적인 매력이 있고, 자기 스테이지에 도달해 프로젝트 소개를 시작하잖아요. 무대 올라가기 전까지 틸다(루시 미란도)가 할 말이 많으니까 동선을 짜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계단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인데, 하이힐 신고 내려오기가 위험하긴 했어요. 배우가 고생이 많았지요.”
-아니, 진짜로 그게 원래 있던 계단이었던 것입니까.
“그럼요. 있던 로케이션을 어떻게 활용할까 하다가 그렇게 한 겁니다.”
-그 광산이 어디에 있는 겁니까.
“영화 내 설정에서는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인데, 행사장 입구 건너편에 뉴욕 맨해튼 빌딩이 보이잖아요. 브루클린인 척하는 것이긴 한데, 사실 거기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 시간 정도 가면 있는 곳입니다.”
-설정을 보면 미란도 코퍼레이션은 네이팜탄도 생산했던 화학회사로 되어 있어요. 루시는 공장의 벽이 노동자의 피로 얼룩져 있다고 말하는데요.
“루시의 레토릭이죠. ‘자기 할아버지대에는 노동자도 착취하고 환경도 막 파괴하고 했지만, 나는 달라’라는 것이 콘셉트죠.”
-봉 감독 영화들을 보면 반자본주의 정서가 깔려 있다는 평이 흔히 나옵니다.
“그렇지 않아요.”
-실제 이전 정권에서도 그렇게 봤던 걸요.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라고, MB정부 초기에 청와대에서 작성한 문건이 있습니다. 거기에 아예 좌파감독이라고 찍어서 이름이 나오던데요.
“아 왜 그런 걸 해. 바쁜 사람들이 할 일도 없이.”
-“<괴물>은 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시킨 영화다. 좌파영화니 척결돼야 할 필요가 있다.” 문건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그런 반자본주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아 왜 그래요.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위한 괴수 영화인데. 무슨 반자본주의 영화입니까. 그냥 사는 게 힘들다, 삶의 피로를 다룬 영화지요. 내가 사회과학자도 아니고 무슨 반자본주의입니까.”
-루시가 그 공장에서 새로운 가치 선포식이라는 것을 하는데 환경과 생명을 핵심 가치로 내겁니다. 그런데 축산을 주력사업으로 하면서 환경과 생명을 내거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아닐까요. 고기를 생산하려면 도축을 해야 할테고.
“루시가 나중에 그러죠. ‘little white lie’라고.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GM(유전자 조작) 부분을 숨긴 거죠.”
-루시가 일종의 추임새처럼 ‘어섬(awesome)’을 넣습니다. 그런데 이건 스티브 잡스가 프리젠테이션에서 즐겨 사용하던 말이에요. 빌 게이츠 이래 ‘착한 자본주의’를 거론하는 기술혁신기업에 대한 풍자로 읽힙니다.
“유전자 조작으로 돼지를 개발하는 학자들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실제 한국과 중국, 북미에서 GM돼지는 실험되고 있어요. 그분들 입장에서는 유전자 조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학의 영역이니 더 깊게 이야기는 못 나눴는데, 유해성을 입증하지 못했으니 괜찮다는 입장과 보다 적극적으로 안전성이 입증돼야 한다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건 현재진행형인 영역이에요. 영화에서 등장하는 동물해방단체, ALF의 입장이 꼭 100% 옳을 수만은 없어요. 물론 저 역시 그분들의 취지에 근본적으로 공감하면서 영화가 그쪽으로 기운, 일종의 기울어진 운동장인 것은 사실인데, 틸다(루시 미란도) 쪽 입장에서도 최소한의 변명은 해줘야 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아까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했는데 거짓말이 아니고 진심이라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할 때 생산된 자기 제품을 먹잖아요.”
-GMO 논란은 혹시 깊숙이 들여다보셨습니까. 글리포세이트 논란이라든가 세라리니 실험 같은….
“저는 동물 관련해서 많이 집중했어요. 영화를 보면 낸시가 다시 권력을 잡고 걸어가면서 그 옆의 프랭크에게 막 이것저것 시키잖아요. 우리 FDA 승인은 이미 받았지? 이런 식. 실제 북미에서는 GM연어가 FDA 승인을 받았다고 합니다.”
-2013년인가, 뉴욕타임스에 프랑켄피시라고 비판하는 칼럼이 실렸죠.
“그분들이 이 영화를 보면 기분이 묘할 겁니다. 영화에서도 10년에 걸친 프로젝트로 묘사했습니다. 실제 유전자 조작 돼지도 만들어졌지만 아직 상용화는 안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친환경 돼지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됐는데, 대량축산을 위해 개발한 것이거든요.
배설물이 토양을 오염시키고, 그게 공장축산의 폐혜라는 비판이 나오니까, 그것을 피해가기 위한 목적인 겁니다. 배설물은 예전처럼 나오지만 유해성분을 줄였다고. 그게 최근 몇 년 동안에 벌어진 일들이고. GM옥수수나 GM콩도 한국에서는 문제가 되는 것으로 알아요. 완전표시제를 둘러싼 논란이 있는데, 유럽은 그게 다 표시가 되는데 한국이나 일본은 아직 안 되고 있죠. 예민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어서 그렇지, 여전히 우리가 모르고 먹고 있거든요.”
영화 <옥자>의 스틸사진. 넷플릭스
-과학사회학 영역에서는 조금 복잡한 논쟁의 대상이 되는 문제이긴 합니다.
“예. 여전히 논란이 있고 유럽과 북미 쪽은 입장이 많이 다릅니다.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 과학자들이 ‘배양육’이라는 것을 만들어요. 아직은 맛도 약간 떨어지고 가격도 너무 비싼데 그게 성공하면 인류가 이제 도살이나 공장식 축산 문제에서 해방되는 겁니다. 그게 <설국열차>의 오리지널 만화 1권에 나옵니다. 배양육을 썰고 있는 장면입니다. 1980년대 만화인데 어떻게 그런 상상을 했는지 대단하지 않나요.”
-그런 저런 만남이나 공부가 다 <옥자>를 찍기 위해 취재자료로 사용한 겁니까.
“특히 이런 영화는 리서치를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ALF도 만났어요. 실제 있는 단체입니다. 1960년대 영국 사람이 만든 것인데, 그 중 2명을 워싱턴에서 만나고 나중에 뉴욕 시사회에도 초청했습니다. 좋아하던데요. 재미있게 봤다고.”
-<옥자> 리뷰에 이렇게 썼습니다. 봉준호 감독 영화에서 일관된 것이 있다면 진정성에 대한 냉소나 회의 같은 정서가 있다고. 그런데 이번 영화의 경우 ALF에 대한 묘사를 보면, 그런 냉소의 강도가 약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데요.
“전 기본적으로 그분들의 취지에….”
-동의하시는 겁니까.
“심지어 변희봉 선생님같이 우리가 생각하는 구세대조차도 처음 시나리오를 보시고 짧게 딱 요약해 소감을 말씀해주시는데 인상적이었어요. ‘아, 당장 힘들겠으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언젠가는 이렇게 돼야 되지 않겠느냐고 난 받아들였다.’ 비록 걔내들(ALF)이 우왕좌왕, 좌충우돌하고 때론 멍청하거나 찌질한 모습까지 보이지만 멀리 길게 봤을 때는 세상이 그런 쪽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한 것인데.”
-봉준호 영화의 공통점 중 하나가 어떤 운동이나 변화시키려는 의지나 행동은 결국 알고보니 대부분 시스템에 포획되어 있고, 대안이 될지 여부가 불분명한 소시민이나 대안가족을 희망의 상징으로 제시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다른 의미에서 급진적이고 아나키스트적이라는 지적인데요.
“아나키스트까지는 아니고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편이죠.”
-그런 주제의식은 앞으로도 계속되는 부분일까요.
“어떤 깃발을 꽂고, 그 깃발을 향해 시나리오를 쓰거나 그러지는 않는 것 같아요. 어떤 스토리나 사건에 꽂혀서 막 가다보면 저도 써놓고 나서 생각해보는 것이죠. 이게 주제가 뭘까. 다른 사람들은 이 시나리오의 주제가 뭐라고 말할까.”
-영화에서 제일 아이러니한 부분은 낸시와 미자의 거래 장면입니다. 그러니까 루시 식의 ‘착한 자본주의’적 접근이 파산하고, 더 강경한 매파인 낸시가 나섰는데 의외로 쉽게 목적이 이뤄져버린다는 말이에요.
“실제 착한지 착한 척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잘 안 된다는 거죠. 낸시가 돌아온다는 거는 사실 금이 그 정도 부피면 미자가 엄청 손해 보는 거래입니다. 운송료까지 포함해도.”
-아, 그랬던 건가요. 기업 운영하는 입장에서 리스크까지 생각해서, 실제 옥자를 도축해버리면 미자가 저항의 상징이 될 수 있으니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머리를 굴렸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낸시는 루시의 마케팅 플랜 자체를 조잡한 거라고 생각하고 싫어하잖아요. 무조건 가격이 싸면 사람들이 먹고 빨리 생산라인에 투입하고 밀어붙이고 싶어하죠. 기자들이 나쁜 기사를 쓰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탱크 같은 스타일이죠. 그 금돼지를 딱 깨물어보는 것이 낸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인 거예요.”
-대안적인 결말을 생각하신 적이 있나요. 미자가 20대 처녀로 처음에는 설정돼 있었다는 말이 있던데.
“아뇨. 결말은 그거 하나밖에 없습니다. 시나리오 초고 때부터 어린 소녀였는데, 20대 처자였던 것은 2010년도에 처음 10페이지가량 시놉시스 버전에서 잠깐 있었던 설정입니다.”
-다음 작품은 어떤 것을 준비하십니까.
“<기생충>이라는 제목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배우 송강호씨가 출연하는 한국영화예요.”
“어떤 깃발을 꽂고, 그 깃발을 향해 시나리오를 쓰거나 그러지는 않는 것 같아요. 어떤 스토리나 사건에 꽂혀서 막 가다보면 저도 써놓고 나서 생각해보는 것이죠. 이게 주제가 뭘까”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진행 · 사진 정상빈 인턴기자 literature09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