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경제]<박열>-우파 아나키즘 ‘아나코 캐피털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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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경제]<박열>-우파 아나키즘 ‘아나코 캐피털리스트’

입력 2017.07.18 13:37

영화를 통해 미처 몰랐던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나는 것은 반갑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은 일제시대 뜨겁게 살다간 또한 명의 독립투사의 삶을 재조명했다. 박열은 일제의 감옥에서 22년 2개월을 복역한 최장기 독립투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열은 그간 우리가 알던 정형화된 독립투사와는 거리가 멀다. 권력을 부정하는 아나키스트였기 때문이다.

“우리 동거합시다. 나도 아나키스트입니다.” 박열의 시 ‘개새끼’를 읽은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과의 동거를 제안한다. 박열은 도쿄 중심가에서 최초의 조선인 무정부주의 단체인 흑도회와 항일단체인 ‘불령사’를 조직한다. 1923년 9월. 진도 7.9의 관동대지진이 일어난다. 일본 민간인으로 구성된 자경단은 조선인 사냥에 나선다. 이렇게 목숨을 잃은 조선인이 6000여명. 일제는 관동대학살을 감추기 위해 대형사건이 필요했다. 그 희생물이 ‘조선인에게는 영웅, 일본인에게는 원수’인 박열이었다. 박열은 일본 왕자 히로히토를 암살하려 한 ‘대역사건’으로 아내 후미코와 함께 사형 선고를 받는다.

영화 「박열」의 한 장면./영화사 하늘

영화 「박열」의 한 장면./영화사 하늘

흔히 ‘무정부주의자’로 표현되는 아나키스트는 모든 제도화된 정치조직,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한다. 아나키스트 박열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박열은 일본 왕실을 무너뜨리면 일본 민중도 착취에서 해방된다고 믿었다.

노동자와 민중의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아나키즘은 사회주의와 가깝다. 전통적인 아나키스트들은 자본주의를 싫어한다.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 간 수직적 관계를 만들고, 자본가의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 국가와 폭력을 필요로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아나키즘과 묘하게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이른바 ‘아나코 캐피털리즘(Anarcho-capitalism)’이다.

아나코 캐피털리즘은 자유방임을 추종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철학적 맥을 같이한다. 아나코 캐피털리스트는 국가란 개인의 자유를 옥죄는 악이라며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의 지향점은 극단적 자유주의다. ‘우파 아나키즘’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대표적인 아나코 캐피털리스트가 오스트리아 학파의 머레이 로스바드다. 그는 “세금은 도둑질”이라며 “만일 누군가 우리에게 와 우리 수입의 절반을 달라면서 주지 않으면 투옥시키겠다고 하면 도둑이라고 부를 텐데, 왜 정부가 그럴 때는 행동을 달리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밀턴 프리드먼의 아들 데이비드 프리드먼은 아버지보다 더한 자유주의자였다. 그는 때로 정부의 효용을 인정했던 아버지와 달리 “국방과 치안도 실은 시장이 더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며 “가장 좋은 사회는 어떠한 정부도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사회”라고 주장했다.

아나코 캐피털리스트들은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지 않고는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사회주의는 어떠한 형태로든 권위주의를 다시 부른다고 자신했다. 전통 아나키스트들은 이 같은 아나코 캐피털리스트들에 대해 “아나키스트의 철학성과 역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변종”이라며 무시했다.

박열과 가네코는 자신들의 형을 무기징역으로 감형시킨다는 일왕의 사면장을 갈갈이 찢어버린다. 그리고 외친다. “감히 일왕이 뭐라고 나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느냐”고.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거인, 조국독립을 염원했던 독립투사, 민중을 사랑했던 아나키스트, 그가 박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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