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해(1941~ )
흙은 원고지가 아니다. 한 자 한 자 촘촘히 심은
내 텃밭의 열무씨와 알타리무씨들
원고지의 언어들은 자라지 않지만
내 텃밭의 열무와 알타리무는 이레 만에 싹을 낸다
간밤의 원고지 위에 쌓인 건방진 고뇌가
얼마나 헛되고 헛된 것인가를
텃밭에서 호미를 쥐어보면 안다
땀을 흘려보면 안다 물기 있는 흙은 정직하다
그 얼굴 하나하나마다 햇살을 담고 사랑을 틔운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내 텃밭에 와서 일일이
이름을 불러낸다
칠월, 아침밥상에 열무김치가 올랐다
텃밭에서 내가 가꾼 나의 언어들
하늘이여, 땅이여, 정말 고맙다
더위를 타지 않는 사람은 혹시 참을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그는 묵묵히 더위를 받아들이며 열무김치로 밥을 비벼먹거나 국수를 말아먹지 않을까. ‘텃밭에서 내가 가꾼 나의 언어들’인 열무김치가 아침밥상에 올랐다. ‘자라지 않는’ ‘원고지의 언어들’과는 견줄 수 없다. ‘물기 있는 흙’에서 호미질로 키운 ‘햇살을 담고 사랑을 틔운’ 언어들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내 텃밭에 와서 일일이’ 불러낸 이름들이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