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미포비아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아무런 의심 없이 너무나 과도하게 화학물질을 사용해온 케미토피아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는 화학물질과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이 넘쳐나고 있다.
어떤 큰 사건이나 재앙, 참사가 일어나면 그 반작용으로 새로운 사회 현상이 나타난다. 그 현상은 바람직한 부분도 있고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조류독감이 대유행하면 소비자들은 아예 닭고기와 오리고기, 심지어는 계란 등을 외면한다. 수돗물에 중금속이 들어 있다거나 정수과정에서 유해물질이 생긴다며 사회 문제로까지 번진 1990년대 초반 수돗물 안전 파동의 여파로 집집마다 먹는 샘물을 사서 마시고 정수기를 들여다 놓는 등 수돗물 기피 현상이 생겼다. 서울시와 수자원공사 등은 병에다 수돗물을 넣은 뒤 ‘아리수’ 등 예쁜 이름을 지어 공급하는, ‘튀는’ 아이디어가 나와 지금도 공급되고 있으나 소비량은 별로 많지 않다. 한 번 불신이 생긴 수돗물에 시민들이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것이다.
안아키는 케미포비아의 의료판이다
사건의 여파로 인해 특정한 무엇을 기피하는 현상은 유해식품 파동에서 가장 두드려졌다. 1989년 라면 튀김기름에 미국산 ‘공업용’ 우지(쇠기름)를 사용했다는, 검찰 수사가 준 충격은 라면 기피 현상을 한동안 낳았다. 수입 자몽 농약 알라 검출사건, 고름우유 파동, 중국 기생충알 김치, 쓰레기 만두 파동, 납꽃게 파동, 통조림 포르말린 파동 등 거의 연례행사처럼 터진 불량·유해 의혹 식품 파동은 많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해당 식품을 오랫동안 기피하게끔 했다. 이 대부분의 파동은 실체가 부풀려지거나 거짓으로 나중에 판명이 났지만 식품 파동과 해당 식품 소비 기피 현상은 그 후에도 오랫동안 교훈을 얻지 못하고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처럼 되풀이됐다.
환경정의, 발암물질 없는 사회만들기 국민행동 회원들이 2016년 9월 12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생활화학제품 속 알레젠(알러지를 일으키는 화학물질) 향 사용 실태 조사 결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식품 파동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제품 기피 현상을 불러왔다. 이른바 극도로 화학제품 사용을 기피하는 케미포비아(chemiphobia) 현상이다. 이런 사람들을 노케미(nochemi)족이라고들 한다. 가습기 살균제가 지난 17년간 한국 사회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이 가운데 세균에 대한 막연한 공포, 즉 박테리오포비아(bacteriophobia) 탓이 크다. 이는 한마디로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각종 감염병의 근원이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박멸해야 한다는 믿음이 우리 의식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습기와 가습기 물을 살균·소독하지 않으면 세균 번식으로 호흡기 감염병에 걸릴 위험성이 있다는 두려움이 소비자들의 뇌리에 각안됐다. 이 때문에 세균을 99.9% 없애주며 인체에도 안전한 살균성분을 사용했다는 제조·판매회사 선전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제품을 아무런 의심 없이 구매했다. 여기에는 현대과학의 힘으로 인체에는 아무런 해가 없지만 세균에는 치명적인 화학성분이 있을 수 있다는 케미토피아(chemitopia)적 사고방식이 한몫 했을 터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끔찍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의사나 화학전문가들조차 알지 못했고 짐작조차 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이를 생각한다면 시중에 나와 있는 각종 화학제품에 대한 불신과 불안은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이다.
극단적인 신념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행동은 각종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식품·화장품과 심지어는 의료에까지 확대돼 나간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은 인터넷이나 SNS 공간뿐만 아니라 공중파와 종편채널, 신문·잡지에서도 새로운 현상 내지 바람직한 현상으로 부추김을 받으면서 확고한 신념 체계로 굳어간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이른바 최근 물의를 빚은 ‘안아키’, 다시 말해 ‘약을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인터넷 카페 아동학대 고발사건이다. 안아키는 현대의학(과학)을 거부하는 현상이다. 현대의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치료법이나 치료약을 거부하고 가정에서 극단적인 자연주의 치료에 목을 매는 엄마들의 정보교류·행동다짐 사이버공간이 안아키이기 때문이다. 수두 백신을 비롯한 각종 예방접종을 거부하고 일부러 수두에 아이들이 걸리도록 하는 파티를 열자고 주장하는 어머니, 아이가 아토피에 걸리면 피부를 마구 박박 긁어 상처를 내어 고름이 생기도록 만든 뒤 피딱지가 생기면 이를 나중에 뜯어내는 방식의 치료법을 신봉하는 이들이 안아키스트들이다. 케미포비아의 의료판이 안아키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의사들이 병원에서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아 잘 낫지 않는 아토피와 같은 질병에 대해서는 의사의 실력 부족, 현대의학의 한계로 보고 더는 이들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들 나름의 자구책을 강구한 것이 자연주의 치료가 최고라는, 비뚤어진 건강신념 체계로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을 해볼 수 있다. 또 예방백신을 맞고 갑자기 숨지거나 자폐증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극히 예외적인 부작용과 허위 주장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생긴 공포 때문에 자신의 자녀들도 그럴 가능성이 상당한 것으로 착각해 극단적이며 비과학적인 안아키 행동을 보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안아키는 우리 사회에서 아동학대 혐의로 고발당해 철퇴를 맞았다. 안아키 인터넷 카페는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아키주의자들이 모두 자신들의 생각까지 바꾼 것은 아닐 터이다. 이들이 더는 우리 사회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또 ‘광신도’들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싹을 틔우고 자랄 수 있었던 토양 자체를 바꾸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는 케미포비아 현상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대형마트 직원이 항균제품 관련 제품을 정리하고 있다. '케미포비아'는 살균에 대한 강박의 반작용이기도 하다. / 연합뉴스
케미토피아든, 케미포비아든 극단적인 신념이나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쪽에 심하게 치우친 신념은 정반대의 극단적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세균혐오증만 해도 극단적인 사례로 미국의 갑부 하워드 휴즈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세균감염을 우려한 나머지 타인과 악수도 하지 않고 접촉 자체를 꺼린 신비주의적 대부호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어머니의 세균 공포를 물려받은 것이 배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는 아무리 몸과 실내를 무균 상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몸속의 장(腸)에는 수십조 마리의 세균들이 우글거리고, 우리가 먹고 마시는 식품과 물·공기에는 엄청난 양의 세균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고 있다.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병원성 미생물이 우리 몸속에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청결과 위생, 그리고 안전한 식품조리이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미생물에 접촉함으로써 평소 면역을 길러주는 것이 외려 바람직하다는 사실과 우리 몸은 미생물이 웬만한 양이 들어오더라도 이를 방어해낼 수 있는 면역체계를 갖추어 왔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첨가물·화학물질 섭취 최소화해야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화학물질은 늘 위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화학물질은 극미량으로도 치명적인 작용을 하는 아주 나쁜 놈도 있고, 아주 많은 양을 접촉하거나 들이마셔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놈도 있다. 그 양쪽 사이에 다양한 수준에서 선과 악의 작용을 하는 물질이 무수히 많다. 해답은 우리가 이들 물질에 대해 용도마다 어떤 독성을 지니고 있는지 철저하게 뒤를 캐는 것이다. 어떤 양에서 어떤 독성을 보이는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동물실험과 물질독성 예측 연구를 해야 한다. 피부독성이 있는지, 경구독성이 있는지, 흡입독성이 있는지, 생식·최기형성독성이 있는지, 유전독성이나 면역독성이 있는지, 다른 물질과 함께 사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복합독성이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우리 사회가, 정부가, 전문가들이, 기업이 이를 게을리하거나 아예 무시해 벌어진 비극이다.
케미포비아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빚어낸 비뚤어진 현상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왜 생겼는지를 정확하게 진단해야만 그 현상이 사라지게 만드는 묘약을 만들 수 있다. 케미포비아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아무런 의심 없이 너무나 과도하게 화학물질을 사용해온 케미토피아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는 화학물질과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으로 넘쳐나고 있다. 어떤 제품에 어떤 물질이 들어갔는지 알 길이 없다. 너무나 많은 성분이 한 제품에 들어가 있어 이를 모두 표기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막걸리를 집에서 만들어 먹을 때는 아무런 첨가물이나 화학물질이 따로 들어가지 않지만, 시중에 팔리는 대부분의 막걸리에는 구연산, 아스파탐, 아세설팜, 스테비오사이드, 올리고당 등 인공감미료와 첨가물이 많게는 7~8종씩 들어간다. 소시지나 햄 등 각종 육가공품과 어묵 등 많은 가공식품에도 이보다 더 많은 화학물질과 첨가물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현대인들이 생활하면서 이런 가공식품을 전혀 소비하지 않거나 마시고 싶은 술을 죄다 집에서 직접 담가 먹는 것은 대부분 현실성이 떨어진다. 외식을 하게 되면 첨가물·화학물질 섭취를 최소화하겠다는 자신의 식생활 신념은 말짱 도루묵이 된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화학물질, 특히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먼저 모기약과 파리약 등 살생물제를 사용할 때는 사용량을 최소화하고, 이를 뿌릴 때에는 마스크를 하는 등 안전장치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되도록 모기채로 직접 잡거나 모기장을 구입해 그 안에서 잠을 자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제품들은 안전성이 완벽한 것은 아니므로 최대한 독성이 낮은 제품을 골라야 한다. 천연성분도 독성이 제로가 아니므로 마구 사용해서는 안 된다. 많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정을 방문해 환경조사를 벌인 결과 이들은 방충제, 방향제, 탈취제, 세정제, 윤활제, 방수제, 항곰팡이제, 살서제, 살충제, 살균제, 김 서림 방지제, 해충 기피제, 농약 등 너무나 다양한 화학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화장실과 실내, 침실뿐만 아니라 가정 밖과 자동차 안에서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사용 종류와 사용량을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 또 사용할 때는 되도록 사용시간을 줄이고 사용량도 줄여야 한다. 사용 후 기침, 두통, 어지럼증, 가려움증 등 이상 증상이 있으면 즉각 사용을 중단하고 그래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거나 심하면 곧바로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의 생명은 국가가 지켜주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그렇지 못한 대표적 사례이다. 나와 가정의 안전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국가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알았다면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해 경각심을 늘 가지는 것이 현명한 자세이다.
<안종주 <빼앗긴 숨> 저자, 보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