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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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달력

입력 2017.07.03 17:35

  • 네거티브의 진수

하재연(1975~)

초록색 사과를 깨물면 내가 있고

사과를 네 쪽으로 갈라서 깎기를 좋아하던 당신이 있고

나는 구름이 변하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구름의 발목이 사라지는 광경을 바라본다.

발목이 발목을 데리고 가는 순간에,

당신의 전화가 울린다.

여름의 구름은 대기의 규칙을 따른다.

오른발을 먼저 내미는지 왼발을 먼저 내미는지

하얀 선 앞에 서보고 싶었는데.

멀리서 시작된 누군가의 달리기.

당신의 자동응답기는

여름의 목소리만 담고 있다.

그리고 당신의 달력은

월요일부터 시작한다.

구름과 초록은 대기로 스며들고

사라지고

내 여름의 달력은

일요일부터 시작한다

해마다 처음 맞는 ‘여름’은 같은 사람에게도 다르게 다가온다. 소나기 한 줄기를 고대하기도 하고 그늘 한 줌을 찾기도 한다. 여름이 여름 같으려면 어떠한 날씨여야 하고 어떠한 마음이어야 할까. 가물어 갈라진 논도, 더위에 지쳐 늘어진 호박잎도 ‘여름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내 여름의 달력은’ 시원한 빗줄기부터 시작한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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