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속 등장인물들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 특히 정신장애인은 범죄율이 전체 인구 범죄율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리고, 대부분의 정신장애인은 결코 위험하지 않다고 설득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냉담하다.
일본의 만화가 사토 슈호가 그린 <헬로우 블랙잭>의 한 장면. 서울 문화사
지난 5월 30일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에 들어갔다.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를 ‘망상, 환각, 사고나 기분의 장애 등으로 인하여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요한 제약이 있는 사람’으로 축소하여 규정하고, 흔히 ‘강제 입원’이라 잘못 불리는 ‘비자의 입원’ 중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하 보호입원)’을 개선해 입원절차를 까다롭게 하고, 입원 판단 주기를 단축해 정신질환자의 인권 보장을 강화한다는 것이 골자다. 보호입원 요건을 ‘입원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이 있거나, 자·타해 위험이 있는 경우’에서 ‘입원치료가 필요하면서 자·타해 위험이 있는 경우’로 수정하고, 보호입원 절차를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1인의 진단’에서 ‘보호의무자 2인의 신청과 정신과 전문의의 권고로 2주간 입원이 가능하도록 하고, 입원을 지속할 필요가 있는 경우 서로 다른 병원의 정신과 전문의 2인의 소견을 추가’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일본 입원 환자의 3분의 1이 정신과 환자
개정법에 대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시행 전부터 반대의사를 표하였다. 정신질환자의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입원치료가 필요하나 비자의 입원의 법적 근거가 부족하여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염려가 있고, 취지와는 달리 병원을 떠날 정신질환자들의 사회 복귀를 도울 제도가 미흡한 데다,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며, 복잡해진 입원절차를 담당할 인력도 준비되지 않았고, 시행규칙이 미리 확정되지 않아 혼란이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반대 입장에서는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이 인권보장 측면에서 아직 미흡하다고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있다. 결국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법률만 일단 시행된 상황이다.
그동안 정신질환자의 범죄가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늘 있어 왔다. 사건이 발생하면 정신질환자의 범죄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더불어 불특정 다수를 ‘위험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늘어난다. 불안감이 커지면 제도적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이를 방치한 국가나 의료기관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정신질환자의 인권 문제도 늘 제기되었다. 사회가 질병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을 개탄한다.
이웃 나라 일본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은가 보다. 초보의사의 성장기라 할 수 있는 만화 <헬로우 블랙잭>은 대학병원 인턴인 주인공의 좌충우돌을 그리고 있다. 그 중에 정신과 병동에서 근무하며 겪는 현실을 비중을 두어 다루고 있다. 면면을 보면 오늘날 한국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
흔히 정신질환자의 범죄에 등장하는 질환은 조현병이다. 일본에서는 ‘통합실조증’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정신분열병’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어감을 개선하기 위하여 병명을 바꾼 사정은 한국과 비슷하다. 만화 속에서 정신과 의료 실태를 취재하는 기자는 일본의 전체 입원환자 수의 3분의 1이 정신과 환자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일본에서도 조현병 환자는 증상이 호전되어 퇴원하여도 갈 곳이 없고, 가족만의 힘으로 환자와의 삶을 감당하기는 버겁다. 환자를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로 돌려보내는 탈원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를 감당할 시설과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지금 우리 모습과 같다.
만화 속에서 정신과에 입원한 과거가 있는 사람이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자 미디어와 대중은 ‘정신과 치료 경력’에만 주목을 한다. 범죄가 발생하기까지의 과정은 ‘정신장애자’라는 한마디에 모두 잊혀진다. 여론은 범죄를 저지른 정신장애인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관리하는 ‘의료관찰법’을 거론한다. 불안에 떨던 지역주민들은 병원이 환자를 확실하게 가둬 놨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화 속 등장인물들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 특히 정신장애인은 범죄율이 전체 인구 범죄율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리고, 대부분의 정신장애인은 결코 위험하지 않다고 설득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냉담하다. 퇴원 후 홀로서기를 시도하던 한 조현병 환자는 편견과 의심의 분위기에 밀려 사전에 일하기로 약속했던 농장에서 거절당한다. 실의에 빠져 과거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던 편의점에 사과하려 찾아가지만 오히려 위험인물로 간주되어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돌아갈 곳 없는 환자는 자신이 치료받았던 대학병원 옥상에 올라간다. 추후 경찰 조사 결과 ‘묻지마 범죄’는 정신질환과 상관없음이 밝혀진다. 범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하여 거짓진술하면서 불똥이 다른 곳으로 튀었다. 대신 남은 것은 보다 커진 편견과 차별, 그리고 죄책감이었다. 우리 사회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일이다.
보호입원, 국가기관 공정성 확보해야
만화는 일본에도 치료를 원치 않거나 자신의 문제에 대한 현실적 자각이 불가능한 중증질환의 경우 ‘보호입원’과 국가가 치료를 의뢰하는 ‘조치입원’이 있음을 시사한다.
입원치료와 관련해서 누구에게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 타인에게 위임하도록 허락하는 것이 법의 본질일 것이다. 보호입원의 경우 이를 직계가족인 보호의무자와 의료진인 정신과 전문의에게 맡기는 셈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는 ‘사법입원’을 꾸준히 주장하며 차라리 입원치료와 직접 관련이 없는 국가기관에 맡겨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개정 법은 참여하는 의료진의 수가 늘어날 뿐이어서 일부에서는 여전히 근심 섞인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충분한 논의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은 정신과 병동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기자와 지도 전문의에게 질책을 듣는다. 의사인 당신이 오히려 정신질환자를 차별하고 있다고. 편견이 깊은 것은 당신이라고.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을 둘러싼 잡음을 보면서 같은 의문을 떠올린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건강을 증진하고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을 강화하려는 법률이다. 비자의 입원이 남용되거나 억울하게 적용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빈틈없고 안전한 법체계를 갖추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그런데 본래의 취지인 정신질환자의 건강 증진과 복지서비스 향상에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개정인지는 확신이 안 선다. 억울한 일을 막고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에 만족하여 모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지 않다면 역시 편견에 사로잡혀 이들을 차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을 보호해야 할 약자로만, 혹은 관리해야 할 위험한 대상으로만 보는 편견이 보호의무자나 의료진에 대한 또 다른 편견으로 확대되었을 수도 있다.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본다면 책임과 의무는 우리 사회가 다같이 짊어지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을까.
<신재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