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까지 8편이 나온 <분노의 질주>는 자동차 액션 영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시리즈다. 전설은 2001년 개봉된 롭 코헨 감독의 <분노의 질주>에서 시작됐다.
달리던 트럭이 도로 위에서 정체 모를 폭주족에게 잇달아 약탈당한다. 사복경찰 브라이언(폴 워커 분)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다. 경찰과 FBI는 폭주족의 대부격인 도미닉 토레토(반 디젤)를 의심한다. 브라이언은 도미닉과 스트리트 레이싱을 벌이다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한다.
도미닉은 마지막으로 트럭을 더 약탈한 뒤 손을 씻으려 한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이번에는 도미닉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트럭 운전사들이 산탄총을 소지했기 때문이다. 트럭 운전사들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경찰이 당최 폭주족을 쫓아오지를 못했다. 이런 상태라면 더 이상 트럭을 몰 수 없고, 운전사들은 직업을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 트럭 운전사들이 생각해낸 것이 무장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변화한 것이다.
계속해서 발전하는 경쟁상대에 맞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발전하지 못하는 주체는 결국 도태된다. 이런 가설을 ‘붉은 여왕 가설(The Red Queen hypothesis)’ 혹은 ‘붉은 여왕의 달리기’라고 한다. 이 용어는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인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유래됐다. 거울나라는 한 사물이 움직이면 다른 사물도 그만큼의 속도로 따라 움직이는 나라다. 앨리스는 붉은 여왕과 함께 나무 아래를 계속 달린다. 숨이 찬 앨리스가 붉은 여왕에게 묻는다.
“계속 뛰는데, 왜 나무를 벗어나지 못하나요? 내가 살던 나라에서는 이렇게 달리면 벌써 멀리 갔을 텐데.”
그러자 붉은 여왕이 답한다. “느림보의 나라 같으니…. 여기서는 힘껏 달려야 제자리야. 나무를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밴 베일런은 1973년 <새로운 진화 법칙(A New Evolutionary Law)>이라는 논문에서 ‘붉은 여왕 가설’을 제기했다. 그는 “생명체들은 모두 진화를 하는데 진화의 속도는 차이가 난다”며 “다른 생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화가 더딘 생명체는 적자생존에 따라 소멸된다”고 말했다.
붉은 여왕 가설이 경영학에 접목된 것은 1996년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수인 윌리엄 바넷과 모튼 헨슨의 공동논문 <조직 진화 내의 붉은 여왕(The Red Queen in Organizational Evolution)>이 계기가 됐다. 이들은 경쟁에서 성과를 높인 기업은 시장에서 승자가 되지만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다고 봤다. 후발주자는 선발주자의 장점과 단점을 알기 때문에 손쉽게 쫓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다. ‘1등을 하는 것보다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유경쟁시장에서는 새로운 경쟁기업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혁신을 하지 않는 한 영원한 1등은 없다.
비무장이던 트럭 운전사들이 산탄총을 준비한 것은 도태되지 않기 위해 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도미닉 일당은 전과 비슷하게 공격하면서 위기를 맞게 된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한국이 고전하고 있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한국축구의 변화가 느렸던 탓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