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판정기준 설정에서는 엄격한 기준을 설정해 피해자이면서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오류를 반복하기보다는 피해자들이 비피해자로 잘못 판정되는 오류를 줄이는 데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2011년, 가습기를 사용하던 산모와 어린이들이 원인 모를 폐 손상으로 연이어 목숨을 잃었다.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와 동물실험을 통해 폐 손상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였다는 것을 밝혔고, 이는 대한민국을 충격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오랫동안 물이 고여 있는 가습기의 특성상 세균이 번식할 위험이 높기 때문에 세균 번식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살균제가 오히려 산모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노출된 인구는 350만~400만명 정도
2017년 5월 말까지 추가 피해신고 접수와 민간에 신고된 접수를 포함하면 전체 피해자 규모는 5615명에 이르고, 사망자 규모는 1195명에 달한다. 피해자 규모는 계속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지역별 가습기 살균제 사용비율, 가구별 가습기 살균제 사용특성을 분석한 결과, 2011년까지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누적 노출인구를 산출하면, 임신가구 인구에서 약 67만명, 비임신가구 인구에서 약 305만명, 합계 인구가 372만명에 달했다. 이 또한 누적 비율을 이용한 계산 결과와 유사한 결과이다.
결론적으로 가정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인구는 대략적으로 350만~400만명 정도 이상으로 추정된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 수(350만~400만명)에 건강피해 경험 및 병원진료 경험 비율을 직접 적용하여 계산할 경우, 전체 건강피해자는 49만명에서 56만명 정도인 것으로 계산된다. 새로운 증상이 발생한 경우는 28만명에서 32만명, 기존의 질병이 악화된 경우가 23만명에서 27만명 정도로 계산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우리 사회에서 경험한 가장 큰 환경피해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정부의 관리 소홀이라는 치명적인 원인이 숨어 있었다. 원래 외국에서 가습기 세정제로 사용하던 물질이 국내에서 가습기 살균제로 탈바꿈된 것이다. 같은 화학물질이라도 용도에 따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달라진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작업환경의학과 교수가 2017년 1월 19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보상과 인정기준 확대'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가 된 것은 메칠이소치아졸리논/클로로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CMIT), 폴리헥사 메틸렌 구아니딘(PHMG),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의 세 가지 물질로, 이들은 가습기를 세척하는 용도로는 사용할 수 있지만 가습기 물에 넣어 사람에게 직접 사용하면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가습기에서 발생한 미세한 물방울에 독한 살균제가 함유되어 폐 속 깊숙이 침투해 염증을 유발한다. 염증이 생긴 폐는 섬유화 반응으로 딱딱하게 굳어져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이제까지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 폐섬유화의 실체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가습기 살균제의 특이한 병변만을 기준으로 1·2등급으로 판정했을 때, 기존 접수자 883명 중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분류되는 자는 276명(31.3%)에 불과하다. 그러면 3·4등급으로 분류된 분들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이 없는 것인가? 3·4등급으로 분류된 자 중에도 중증 호흡기질환으로 사망한 분도 다수 있고, 폐기능 저하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분들도 상당수 있다.
증빙자료 없으면 피해자로 인정 못받아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임상·영상·병리 소견을 근거로 간질성 부위에 특징적인 폐섬유화 소견이 없으면 1·2등급으로 판정을 받지 못한다. 현재까지 엄격한 기준에 의해 판정이 이루어지기에 조직검사 소견이나 전산화단층촬영(CT)에서 특징적인 소견이 없으면 그 관련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적인 병변이 생기는 그 시기에 조직검사나 CT를 찍어두지 못하면 그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기에, 현재의 판정기준은 피해자이면서도 그 증빙이 되는 자료가 없으면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다.
이러한 불합리함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전문가를 통해서 동물실험·역학연구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실체가 무엇인지 밝히는 과정 중에 있다. 이후 판정기준 설정에서는 엄격한 기준을 설정해 피해자이면서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오류를 반복하기보다는, 피해자들이 비피해자로 잘못 판정되는 오류를 줄이는 데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접수자의 의료 이용자료를 분석하여 가습기 살균제 노출 이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피해의 후보 목록을 작성해 보았다. 1·2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 접수자의 청구상병 빈도 분석 결과로서 2011~2015년 기간 중 청구된 명세서에 기술되어 있는 주상병 및 주요상병은 각각 5436개와 2만565개였다. 가장 흔한 주상병은 차례대로 호흡기계통 질환, 안과질환, 그리고 각종 증상 및 징후 등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가장 흔한 주상병을 뽑아보면, 천식(J45), 급성기관지염(J20), 밝혀지지 않은 균에 의한 폐렴(J18), 비염(J30), 간질성폐렴(J84), 비특이성 중이염(H66), 만성축농증(J32), 만성폐쇄성폐질환(J44), 급성축농증(J01), 급성모세기관지염(J21) 등이었다. PHMG, PGH, MIT/CMIT 등 가습기 살균제는 기도점막, 탐식세포 등에 노출되면 유전자에 영향을 주어 염증반응물질(Pro-inflammatory cytokine)을 많이 분비해낸다. 이러한 독성영향을 고려하면, 여러 장기에 염증반응을 보이는 이들 질환은 잠재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질환일 수 있다.
1~3차 접수자들 1283명이 의료기관을 방문하여 얻은 초기 진단명 2754건을 분석해 보아도 호흡기질환의 비중이 58.6%로 제일 높은데, 이 중 폐렴 14.5%, 간질성폐질환 13.7%, 천식 7.4%, 급성기관지염 5.5%, 비염 5.5%, 급성상기도염 4.6%, 성인호흡곤란증후군 3.7%, 급성세기관지염 3.6%, 기흉 2.9%, 기타 호흡기질환(폐허탈, 무기폐, 폐기종) 2.5%에 달한다. 특징적인 것은 여러 질환들을 다발성으로 호소한다는 점으로, 진단명이 5개 이상 있는 사례가 315명으로 24.6%에 달했다.
가습기 살균제 노출에 따라 질병위험이 높아졌음을 확인하고, 독성학적인 기전이 확인된 질환을 가려내는 까다로운 작업을 거치다보니 분석작업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데, 기존의 폐손상 외에 전문가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천식질환이다. 가습기 살균제가 기관지 자극제로서 알레르기 반응 유도, 기도 변형 등으로 천식을 가져올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정확한 기전이 파악되지 않았다. 역학조사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노출 후 천식의 발병 위험도가 높아진 점, 가습기 살균제 노출이 중단된 이후 중증 천식의 유병률이 감소된 것이 가습기 살균제와 천식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아직은 연구의 초기여서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성이 있다고 확인된 질환이 천식에 불과하지만, 동물실험, 가습기 살균제 체내 거동 연구, 코호트 연구를 통한 추적조사를 통해 분석한 결과가 나오면 가습기 살균제와의 관련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질환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연구와 추적조사를 통해 관련 질환 늘듯
폐손상의 경우도 초기 병변, 이후 폐손상의 변형과정을 추적해 보면, 임상경과를 더 세밀히 파악함으로써 지금보다 더 폐손상의 인정기준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강 에스더씨가 호흡곤란과 천식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모습. /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빼앗긴 숨」 저자 제공
비염·피부염·폐렴 등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은데, 어느 질환 하나를 비교해 보면 흔히 발생하는 질환의 하나로 그 특이성을 찾기 힘들지만, 가습기 살균제 노출 이후 이들 질환이 동시에 다발성으로 발병되는 사례는 매우 특징적인 것이다. 이들 질환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유발하는 과정에 발생하는 하나의 단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피부와 비강, 폐 등에 가습기 살균제 노출로 염증반응이 여러 군데 확인되거나, 염증매개물질이 체내 이동으로 타 장기(간, 신장, 면역계)에서도 염증병변이 발생됨이 확인하였다면, 이를 다 묶어서 포괄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관련증후군(humidifier disinfectants associated syndrome)’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독성학적인 증거나 역학적인 증거가 더 축적된다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밝혀내는 데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 화학물질로 인해 인체에서 야기되는 병변이 여러 장기에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특징을 보일 수 있기에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이에 대한 연구를 더 추진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화학물질 피해를 겪고 있는 만큼, 제대로 규명해서 피해자들이 다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다시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 화학물질 안전관리에 대한 기반을 확실히 마련해야 한다.
70년대 미나마타 질환, 이따이 이따이 질환 등 공해병을 겪으면서 이들 질환에 대한 연구에 집중해서, 이후 일본이 앞서가는 환경선진국이 되었듯이, 우리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철저히 규명해서 이를 환경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의 어려움을 전화위복의 전기로 만들어가자.
<임종한(인하대 의과대학 교수·환경독성보건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