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촛불시위, 그리고 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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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촛불시위, 그리고 옥자

입력 2017.06.19 16:07

넷플릭스

넷플릭스

제목 옥자

원제 Okja

감독 봉준호

출연 틸다 스윈튼, 폴 다노, 안서현, 변희봉, 스티븐 연, 제이크 질렌할

상영시간 120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7년 6월 29일 넷플릭스&극장 개봉

지난겨울 주말 촛불시위. 밤 늦은 시각 신문사 근처에 주차해놓은 차로 돌아오다 그를 만났다. 봉준호 감독. 수염을 기른 ‘튀는 외모’를 하고 있었는데도 길거리의 초를 들고 돌아가는 수많은 시민들 중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던 게 인상적이었다. 간단히 근황만 묻고 헤어졌는데 그날 만남의 잔상은 오래 지속되었다.

<설국열차>(2013) 개봉 후 <주간경향> 인터뷰 때도 물어봤지만 그의 작품들에는 깊숙이 자리 잡은 어떤 원형질 같은 ‘페이소스’가 있다. 나는 이것을 ‘진정성에 대한 냉소’라고 봤다. <설국열차>에서 뒤칸의 반란 지도자인 길리엄과 그들을 억압하는 독재자 윌포드가 알고 보니 전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협조자였다는 설정. 길리엄을 마음속 깊이 존경했던 커티스가 그 사실을 알고 좌절하는 장면 같은 것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도망자를 밀고하는 변절한 386 ‘뚱게바라’ 같은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옥자>는 어땠을까.

예상했던 방향에서 크게 어긋나진 않았다. 글로벌 식품기업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음모를 파헤치려는 과격행동파 동물보호단체 ALF의 계획은 무모하다. 도덕적 윤리에 집착하는 지도자 ‘제이’(폴 다노 분)는 통역을 맡은 ‘케이’(스티브 연 분)가 “옥자(유전자 변형 돼지)와 함께 산골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미자의 대답을 반대로 통역했다는 것을 고백하자 그를 무자비하게 폭행한다. TV를 통해 ‘어린이의 친구’로 알려진 동물학자 ‘죠니 윌콕스’(제이크 질렌할 분)는 어떤가. 미자네 산골집을 방문하며 더위에 지친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온갖 쌍욕을 해댄다. 그러다 카메라가 돌아가자 표변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버지와 달리 ‘윤리적 기업’에 집착하는 미란도의 CEO 루시 미란도(틸타 스윈튼 분)의 ‘위악’에 대한 냉소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봉 감독이 바라보는 세계는 그럴 듯하고 번지르르한 말과 다르게 결국은 자신의 이익에 급급해 한치 앞의 운명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 군상들의 극장이다. 그리고 주인공 소녀 미자. 미자는 왜 산골 깊숙이 살아야 했을까. 시스템에 포섭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미자는 감으로 보이는 산속 열매를 따서 계곡물에 씻어 먹는다. 수도와 같은 인프라나 심지어 농사조차도 이미 자본주의 시스템에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옥자를 키우며 미자의 할아버지는 손녀의 교육에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교육 역시 끊임없이 오염시키는 체제, 시스템의 핵심 기둥이기 때문이다. 계약기간이 끝나 회사가 옥자를 끌고간 뒤 미자의 목표는 단순하다. 옥자는 가족이기 때문에 돌아와 살아야 한다. 타협이란, 없다. 기존 시스템의 입장에서는 그게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거의 난센스에 가까운 일일지라도.

다분히 우화적인 대안, 낭만적 가족의 구성을 통해 ‘절망 혹은 냉소 속에 피어나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괴물>, <설국열차>와 같은 그의 작품들에서 비교적 일관된 결말이다. 과거 작품과 다른 것은 진정성에 대한 냉소 내지는 야유 내지는 블랙코미디의 강도가 조금은 낮아졌다는 점이다. 앞서 이 리뷰의 시작 부분에서 지난겨울의 ‘경험’을 이야기한 것은 그 때문이다. 최순실-박근혜라는 ‘거악’에 맞서온 시민이 대통령 탄핵을 만들어냈다. 뜨겁게 보낸 지난겨울의 기억은 봉 감독이 아마도 수없이 머릿속에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했을 ‘옥자의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감독을 다시 만나면 차분히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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