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국가책임제, 환자 돌보는 이들에게도 관심을



주간경향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치매 국가책임제, 환자 돌보는 이들에게도 관심을

입력 2017.06.13 13:29

요양보호사들의 열악한 현실… 양질의 서비스 위해 돌봄노동환경 개혁 필요

“어르신들이 누워 있기 때문에 등에 욕창이나 종기가 생길까봐 일일이 앉혔다가 다시 눕히면서 자세를 바꿉니다. 요양보호사 1명이 아침마다 이렇게 해드려야 하는 어르신이 20명이 넘어요. 쉬는 시간 30분이 있어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죠.”

한달 240시간 근무, 월급 120만원 수준

중년여성 한 명이 자세를 바꾸기엔 노인이라고 해도 몸무게가 적지 않게 느껴진다. 때때로 ‘중노동’에 가깝게 힘을 쓰는 모습은 요양보호사 정숙희씨만이 아니라 전국의 요양보호사들이 매일 반복해야 하는 요양보호 일의 단면이다. 정숙희 전국공공운수노조 돌봄지부 도봉실버센터분회장과 함께 6월 8일 국회에서 열린 ‘요양보호사 집담회’에 나온 요양보호사들은 정부가 나서서 치매를 ‘국가 책임제’로 돌봐야 하는 무수한 이유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될 국가 책임 돌봄정책의 범위를 보다 넓혀야 할 이유들도 함께 제시했다.

“그래도 괜찮은 시설에서는 낮에는 보통 9시간, 이브닝(저녁시간대)이면 8시간 반, 밤에는 10시간 정도로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죠. 근데 그런 곳 말고 격일제로 2교대에 가깝게 일하는 곳이 더 많아요. 그래봤자 월급은 어디서든 다 비슷해요. 140만원 받으면 많은 거고….” 서울의 한 요양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요양보호사 박모씨는 “요구하는 걸 들어보면 정말 최소한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한 뒤 요양보호사의 현실에 관해 설명했다. 하루 16시간씩 격일로 일하면 한 달 평균 근무시간은 약 240시간, 하지만 월급은 보통 120만원에서 130만원을 오가는 정도다. 계산해 보면 최저임금인 시간당 6470원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 이 액수도 야간근무수당과 연장근무수당 같은 각종 수당과 건강보험공단에서 나오는 월 10만원의 요양보호사 처우개선비를 포함해야 겨우 나오는 수준이다.

한 노인장기요양기관에서 요양보호사와 노인들이 함께 활동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한 노인장기요양기관에서 요양보호사와 노인들이 함께 활동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요양보호사들의 요구는 최저임금 수준까지만이라도 임금을 현실화하고 법으로 보장된 휴게시간만 지키게 해달라는 정도의 ‘최소한’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받아들여지는 것이 쉽지 않다. 고용상황 역시 불안정한 것은 마찬가지다. “요양보호사 노동조합을 만들었더니 시설을 증축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면서 정리해고를 하더라고요.” 공공운수노조 돌봄지부 소속 조합원인 송춘임씨는 시설 소속 요양보호사지만 재가 요양보호사에 비해 딱히 고용 안정성이 높지도 않은 현실을 꼬집었다. 언제든 쉽게 해고하고 다른 인력을 채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적지않은 시설 운영진들 사이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요양보호사도 사람인데 대놓고 무시하는 거죠.”

요양보호의 다른 한 축을 맡고 있는 재가 요양보호사들의 현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요양서비스를 받는 어르신이 전화로 요양보호사를 바꿔 달라고 하거나, 돌보던 분이 돌아가시면 자연히 실업자가 되는 겁니다.” 재가 요양보호사 이봉선씨의 말처럼 언제든 실업자가 될 수 있는 현실 외에도 금전적인 처우가 10년 전보다 거의 나아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올해부터 방문요양서비스 1회당 요양보험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기존 4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었다. 요양보호사 오귀자씨는 “10년 전 시급이 6300원이었는데 4시간씩 두 집에서 일하면 월급으로 100만8000원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시급은 8400원으로 올랐지만 3시간씩 두 집에서 일해서 똑같이 100만8000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일하는 시간이 줄면서 실제 벌 수 있는 돈이 10년 전 수준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 배경에는 최소한의 요건만 갖춰 신고하면 요양기관을 설립할 수 있는 현행 신고제 하에서 난립하는 영세 재가 요양기관이 있다. 그동안 정부의 노인돌봄정책은 시장을 통한 서비스 공급을 늘리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고용된 요양보호사가 10명이 안 되는 곳인 영세기관이 열 곳 중 세 곳에 달한다. 현재 일하고 있는 33만4000명의 요양보호사 중 27만3300여명이 재가 요양보호사일 정도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만 시간제 노동이 주가 된 탓에 재가 요양보호사의 지난해 한 달 평균 임금은 57만원에 불과했다. 평균 76시간을 일해 번 액수다. 여기엔 재가 요양기관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요양보호사의 임금을 깎아 서비스 이용자의 본인부담금을 할인해주는 출혈경쟁까지 벌어진 탓도 있다.

영세 재가 요양기관 난립으로 출혈경쟁

요양보호사들에게 적정수준의 노동환경을 제공하는 데 실패한 결과는 자연히 질 좋은 요양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도 실패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요양원에 있는 치매노인이 약물을 과다복용해 병원으로 이송되는 일은 요양보호사들 사이에서 쉬쉬하면서도 흔히 벌어지는 일로 알려져 있다. 요양보호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치매 등 돌보기 어려운 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들에게 처방된 양보다 더 많이 투약하는 일이 적지 않다. 손쉬운 관리를 위해 약물을 과용하게 하는 상황이 결국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치매를 비롯해 거동이 불편하거나 인지능력이 저하되는 등의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갈 수 있는 요양시설은 크게 요양병원과 요양원 두 곳으로 나뉜다. 요양병원은 말 그대로 병원이기 때문에 의료진으로부터 해당 질환에 대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을 적용받더라도 치료에 따라 비용이 발생하고, 입원한 환자를 돌보기 위한 간병인을 고용해야 하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환자의 생활 전반을 돌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요양원은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환자를 대상으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 일상을 무리없이 보내고 병이 심해지는 것을 막는 데 주목적이 있다. 때문에 전문의료진이 아니라 요양보호사들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적용돼 월 60만원대 정도의 비용만 내고 이용할 수 있어 요양병원보다는 부담이 적은 편이다.

서비스 수요와 질환의 심각한 정도 등을 고려하면 요양원이 요양병원보다 더 폭넓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년 보건의료 통계를 보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인구 1000명당 요양병원 병상 수는 31.4개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았지만, 요양원의 병상 수는 22.8개로 26위에 그쳤다. 회원국 중 한국만이 요양병원의 병상 수가 요양원보다 많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요양원의 요양보호사들은 자격증을 취득하고 요양과 돌봄에 관한 경험과 지식을 쌓아 환자를 돌보는 반면, 요양병원에서 환자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간병인들은 자격이 필요없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들이 받는 간병비가 월 평균 50만~60만원 수준이고, 요양병원에 내는 진료비와 입원비를 더하면 요양원보다 요양병원에 입원할 때 부담은 두 배 이상 된다. 하지만 간병비의 보험급여 적용이 되지 않는 탓에 환자 보호자들은 경제적 부담과 함께 상대적으로 낮은 질의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보호자들이 최대한 간병비를 낮추기 원하는 상황에서 저임금을 당연한 것으로 감수하며 일하는 간병인의 노동환경은 요양보호사들보다도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간병비 급여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간병인을 고용하는 데 대한 공식적인 규정까지 전혀 없다”며 “요양원 확충과는 별개로 현재 요양병원이 감당하고 있는 의료서비스 규모를 감안하면 간병비 부담을 줄이는 것이 환자 가족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지만, 아직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와 간병인을 막론하고 돌봄노동 전체의 노동환경 악화와 그에 따른 서비스 질 저하의 악순환을 끊을 대책은 정부의 개입으로 귀결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일 서울 강남구 서울요양원을 찾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치매 국가 책임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현실이 그 배경이 됐다. 치매를 앓는 노인을 돌보는 문제를 개별 가정에서 해결하는 대신 국가 차원에서 접근하고 책임지는 정책이기 때문에 분명 이전까지의 정책과는 구별된다. 대통령 공약에서는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을 10% 이내로 줄이고, 현재 47곳인 치매지원센터를 전국 250곳으로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일 서울 강남구 국민건강보험 서울요양원을 방문해 요양 시설 종사자, 치매환자 보호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일 서울 강남구 국민건강보험 서울요양원을 방문해 요양 시설 종사자, 치매환자 보호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공약에 큰 기대감

문 대통령이 찾은 서울요양원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유일하게 직영하는 곳으로, 요양시설의 표준을 선보인다는 취지로 만들어져 국내 최고 수준의 시설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만큼 시설과 서비스가 좋기 때문에 정원 150명에 대기자만 800명이 넘어 입소 경쟁이 치열하다. 서울요양원 외에도 국·공립 요양원은 대체로 국민건강보험공단 평가 결과 가장 높은 A(최우수)등급을 받고 있어 입소 희망인원이 몰린다. 반면 민간 요양원의 평가등급은 A부터 E(미흡)까지 다양하다. 그럼에도 어느 시설에 들어가든 요양보험 혜택을 받으면 환자 부담액은 똑같다. 전체 노인요양시설의 2.2%에 불과한 국·공립 시설에 환자들이 몰려 산술적으로는 100세가 넘어서도 입원하기 어려울 정도까지 경쟁률이 치솟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치매 국가책임제를 시작으로 돌봄서비스 환경에도 정부와 공공부문 중심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경숙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장은 “한국이 모델로 삼은 일본을 봐도 요양기관은 민간업체가 영업할 수 없게 돼 있고, 재가 요양서비스 공급도 법인사업자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개인사업자까지 할 수 있게 규제를 풀어 서비스 수요를 맞춘 탓에 영세업체들이 난립하고 덩달아 노동환경과 서비스의 질 모두 낮아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최 센터장은 “과당경쟁으로 하향식 서비스 경쟁이 되면서 결국 피해는 이용자와 요양보호사 모두가 보고 있다. 공공부문이 적어도 30% 이상을 책임져야 민간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들은 이와 함께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에 높은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당장 올해 추경으로 창출되는 사회서비스 일자리 중 치매관리 일자리가 5125개 늘어나는 등의 변화가 있지만, 추경을 급히 준비하다보니 기존의 임시직에 가까운 일자리를 우선 늘리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한계도 나타났다. 좋은돌봄 요양보호사 실천단의 이봉선씨는 “사회서비스공단이 생겨 실업과 퇴직금 걱정을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