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자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받은 자녀들 역시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며 삶은 면면히 흘러간다. 이런 커다란 흐름 속에서 크고 작은 출렁임을 겪지만, 언제나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만은 않다.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이러냐?” “부족한 것 하나도 없어요. 다만 그냥 저를 좀 놔두세요.”
목소리 톤이 높아지자 공기가 위태로워졌다. 아들도 이번에는 맞붙는다. 젊은 아들처럼 아버지도 꿈을 꾼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꿈은 아들이 자신보다 더 멋지게 세상을 사는 것이다. 거칠 것 없이 본인이 가진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있다면 한 번뿐인 삶이 얼마나 즐겁고 만족스러울까? 그것을 제공하고, 기쁨을 함께 하는 것이 아버지의 꿈이었다. 그것을 위해 자신은 부모로부터 미처 받지 못한 지지와 혜택을 아들을 향해 아낌없이 주어 왔다. 그래서 아들의 현주소가 도대체 이해가 안 되고, 화가 나고 괘씸하다. 필요한 모든 것을 줬는데, 조금만 더하면 되는데, 맘대로 내버려 두라니, 자기를 포기하라는 건가?
영화 「고형화 가족」의 한 장면 / 네이버 영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부자간의 대립
아들 역시 아버지의 존재가 산같이 크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아버지의 모습은 오래도록 그의 자랑이었고 목표였다. 아버지의 사랑과 헌신에 더 큰 무언가로 보답하고픈 마음이 아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받을수록, 더 감사할수록 아버지는 아들에게 넘어야 할 산이 되었다. 산이 주는 온갖 환상과 푸르름에도 불구하고 턱 밑까지 쫓아온 가쁜 숨은 그를 괴롭게 한다. 세상을 다 보여주고 싶은 아버지는 정상에서 애타게 그를 부르지만 아들이 보고 싶은 건 그 세상이 아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는 두 사람은 서로가 야속하다.
“왜 이렇게 나약하냐?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아냐? 최선을 다해도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세상인데 언제까지 이렇게 서성거릴 거냐!”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저만의 속도와 길이 있는 거잖아요!”
그날 부자는 정말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물러설 곳 없는 남자들만의 생존과 자존심의 대결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더 괴롭고 힘들었다. 남편과 다 큰 아들 사이에서 오가는 고성과 눈빛에는 여자인 엄마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맹렬함이 있었단다.
“저는 이런 극한상황이 견디기 너무 힘들어요.”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목소리는 떨렸다.
“정말 힘들었겠어요.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이 갈등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어요.”
“한 명이 알겠다고 하면 될 것 같은데, 양보할 수가 없나 봐요. 결국은 서로 상처되는 말들을 마구 쏟아붓고 말았어요.”
“옆에서 보고 있기 참 속상했겠어요.”
“말도 마세요. 어느 순간에는 누가 어떻게 될까봐 겁도 났어요. 남자들은 순식간에 어떨지 모르잖아요. 무조건 그만두라고 말릴 수도 없고, 그런 상황에서는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까마득했어요.”
“뭔가 나서서 해야 될 것 같은데 방법을 모르니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했겠어요. 이제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솔직히 양쪽에 가서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빨리 화해하라고 하고 싶어요. 가족이잖아요.”
본인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누구보다 서로 사랑하는 아버지와 아들이다. 상처 준 것도, 받은 것도 알지만 둘 다 입을 굳게 다문다. 지금 사과한다는 것은 본인들이 지켜온 가치관을 꺾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답이 뭔지 알지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가족이라 더욱 서로 양보하고 빨리 화해했으면 좋겠군요.”
“그럼요. 그런데 사실 남편 마음도 아들 마음도 알 것 같아요. 물론 형식은 싸우는 거였지만 답답한 마음을 진심으로 서로에게 호소하는 것 같았어요.”
“양쪽의 힘듦을 다 아시니 누구 편도 들기 어렵겠어요.”
“네, 맞아요. 며칠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양쪽 얘기를 듣기만 하고 속으로 기도만 했어요.”
“어휴, 어머니에게도 정말 힘든 시간이었군요. 하고 싶은 말 안 하고 듣고 기다려 준다는 건 아무나 하지 못해요. 정말 대단하세요.”
“전에는 이런 경우 제가 못견뎌서 양쪽에 가서 화해시켜 빨리 해결하려 애썼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이 문제가 제 생각대로 화해시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답답하지만 기다렸어요. 서로 잘할 수 있을까요? 아들도 다 커서 자존심이 보통이 아니에요.”
“자신의 행동이 한편 불안하기도 하고, 혹시 더 잘못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나 봐요?”
“네. 솔직히 그래요. 그래도 이렇게 말하고 나니 좀 편해지네요. 지금은 어떻게든 둘이 해결할 거라는 믿음도 살짝 생기고…. 부자지간이니 잘하겠죠?” 그녀의 얼굴이 조금 환해진다.
상처를 회복시켜주는 치유제인 가족
불안한 마음을 견디고 기다리는 것은 상대에게 자신을 믿어준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종종 우리는 나서서 무언가 문제를 정리하고 해결해 주려는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다. 사랑하는 관계일수록 더욱 빨리 개입하고 싶은 유혹이 크다. 당사자인 상대방들 또한 누군가 이 난관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개입해주기를 은근히 바란다. 그러나 당사자들 간의 욕구 충돌이기에, 당사자들이 먼저 자신의 욕구가 정확히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자신의 본 마음이 수면 위로 올라올 때 비로소 상대와 소통이 되기 시작한다.
“지금 심정은 어떠세요?”
“아들이 그간 마음이 불편했겠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저를 사랑하는 마음인 건 알 테니 먼저 사과하면 좋겠어요.”
“아, 아들의 고충은 알겠지만 그래도 자식이 먼저 용서를 빌면 좋겠다는 말씀이죠?”
“그럼요. 다 큰 자식이잖아요. 그러나 한편으론 아들이 사과할 수 있는 여지를 남편이 슬쩍 만들어주면 좋겠다고도 생각해요. 그러면 남편도 아들도 서로의 고충을 좀 더 헤아리지 못한 미안함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시네요.”
“네.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 마음을 조금만 더 헤아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일 테고, 남편은 아들이 씩씩하게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아들이기를 바라는 걸 테니까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자 누군가의 부모다. 그리고 그렇게 쭉 이어져 왔고 또 이어져 내려갈 것이다. 대개의 부모들은 자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받은 자녀들 역시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며 삶은 면면히 흘러간다. 이런 커다란 흐름 속에서 크고 작은 출렁임을 겪지만, 언제나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만은 않다. 때론 바로 ‘그곳’을 후벼파서 아프고 시리다. 가족이라서 더 참았지만, 가족이라서 더 후비고, 그래서 더 아프다. 부모의 마음을 몰랐다면 자식은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자식의 문제가 ‘남의 문제’였다면 부모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평화로운 상태를 마냥 평화롭게만 볼 수 없듯이 갈등상황을 무조건 갈등으로만 볼 수 없는 끈질긴 역동이 있다.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에게는 꼬집듯이 파헤쳐놓은 속살의 상처를 다시 어루만져주고 회복시켜주는 기능이 있다. 이렇게 가족은 상처와 회복 사이를 오가며 우리를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자유롭게 날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