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로 만들 수 있는 영화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분노의 질주>시리즈를 보다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분노의 질주8: 더 익스트림>도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F. 게리 그레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8편에서는 차량들이 빌딩에서 비처럼 떨어진다. 해킹당한 자율주행자동차는 좀비처럼 쏟아져 나온다. 기발한 착상들이다.
레티와 평화로운 신혼생활을 즐기던 리더 도미닉(빈 디젤 분)이 갑자기 가족들을 배반한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버리던 도미닉의 변심에 모두들 당황하지만 힘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도미닉을 움직이는 자는 첨단 테러 조직의 리더인 ‘사이퍼’다. 팀원들은 적이 되어버린 도미닉의 테러를 막기 위해 적이었던 데카드쇼(제이슨 스타뎀 분)와 손을 잡는다. 사이퍼는 베를린에서 주변의 전자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는 EMP를 탈취한 뒤, 러시아에서 핵무기 탈취에 나선다.
도미닉은 어쩌다 악당 사이퍼 편에 서게 됐을까. 사이퍼의 답은 간결하다. “선택이론이지.”
영화 '분노의 질주:더 익스트림' 스틸 이미지 / UPI코리아
선택이론(choice theory)이란 곧 ‘합리적 선택이론(rational choice theory)’을 말한다. 합리적 선택이론은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수익과 비용 등을 따져가며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이론이다. 결혼, 이혼, 범죄, 출산, 흡연 등 사회적 행동들은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경제적 판단을 통해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고 본다.
사이퍼는 선택이론의 전제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자신의 선택은 자신이 한다는 것과, 상대는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만 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개인의 행동은 누군가의 강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취득한 정보를 가지고 사건의 가능성, 잠재적 비용과 이익 등을 따져가며 찾아낸 가장 좋은 결정이라는 것이다. 게리베커는 경제학을 의사결정의 과정까지 끌어올린 공으로 199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게리베커의 논문 제목은 ‘인간 행동에 대한 경제적 분석’이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7년 “베커 교수는 경제원칙들이 단지 이론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격찬했다.
범죄자들도 허투루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잡힐 것을 뻔히 알거나 범죄를 해봤자 별 이익이 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죄를 짓는 사람은 없다. 만약 범죄 적발률을 높이거나 강한 처벌 수단을 가지고 있다면 범죄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게리베커는 결혼도 결혼을 통해 얻는 효용(만족)이 혼자 살아갈 때보다 클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때 성립된다고 밝혔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아이를 낳아서 얻는 효용이 낳지 않을 때보다 크다는 기대를 주어야 한다고 게리베커는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자면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출산장려금, 자녀양육비, 결혼공제 등의 복지를 제공하는 것은 유용하다.
합리적 선택이론을 가장 잘 설명한 책 중 하나가 팀 하포드가 쓴 <경제학콘서트2>다. 책을 보면 미국 젊은이들 간 구강성교가 늘어나는 이유는 성적 취향이 바뀐 게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보다는 에이즈 등 성병과 뜻하지 않은 임신에 따른 부담이 커지면서 통상적인 섹스에 대한 ‘비용’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빈둥대더라도 상사에게 많은 임금을 주는 이유는 그래야 부하직원들도 상사가 되는 꿈을 꾸며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대도시 집값이 비싼 이유는 대도시에는 유능한 사람들이 많아서 인적자본을 누릴 기회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도미닉은 이것저것을 따져봤을 때 팀원들을 배신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