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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최소한의 정의를 확인하는 재판이 되길…

입력 2017.05.02 17:22

1심 판결에 대해 피고인들과 검찰 모두 항소하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항소심에서 우리는 검찰과 법원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

누군가가 처벌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것은 누구보다도 본인을 괴롭게 만든다. 어떤 잘못을 했는지 하나하나 밝혀내고, 그 대가를 치르게 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 자체가 다시금 괴로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판매한 사람들이 법정에 서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1심 재판은 6개월 만에 끝났다. 구속상태에서는 6개월 이내에 재판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동안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분노와 고통의 세월에 비하면, 짧아도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2017년 1월 6일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관련한 형사재판 1심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예상보다 낮은 형량에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법원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 책임자로 지목된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69)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고, 함께 기소된 존 리(49) 전 대표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 정지윤기자

2017년 1월 6일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관련한 형사재판 1심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예상보다 낮은 형량에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법원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 책임자로 지목된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69)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고, 함께 기소된 존 리(49) 전 대표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 정지윤기자

기다리던 1심 형사재판 결과, 그러나…

수차례 고발을 해도 제대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다가, 이제야 법정에 서게 된 저들을 바라보는 피해자 분들의 마음은 어떨까. 피고인석에 서서 자기는 몰랐던 일이라고 변명해야 하는 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똑같은 수의를 입고 저 사람은 왜 고개를 푹 숙이고 있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빤히 검사를 쳐다보고 있을까. 저들에게 어떤 형벌이 어떻게 선고돼야 하는 걸까. 법정에 앉아 재판을 지켜볼 때마다 많은 질문들이 스쳐지나갔다. 어떤 질문에 대한 답도 얻지 못한 채, 지난 1월 6일 1심 재판 결과가 선고됐다. 그리고 1심 재판 결과는 다시금 많은 질문들을 하게 만들었다. 그 질문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인체에 위험한 물질을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로 사용하면서 안전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제품을 제조·판매했고, 안전성에 문제가 있을 경우 이를 제품에 표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다하지 않아 사상자를 발생시켰다는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업무상과실치사상죄 및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이에 따라 옥시 전 대표이사와 연구소장, 연구원 등 관계자들은 모두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들이 소비자들을 속여 가습기 살균제 판매금액만큼 이익을 취하였다는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인 ‘특경법’ 위반)는 인정되지 않았다. 또한 2005년부터 5년간 옥시 대표이사를 역임했던 리존청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리존청이 대표이사일 당시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이나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문제제기 등에 대해 보고받았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물질을 옥시에 공급했던 유통업체 대표 역시 무죄를 선고받았다. 원료물질의 중간 유통인에 불과하여 이 물질이 어떤 제품에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었고 관여할 수도 없었다는 이유였다.

1심 판결에 대해 피고인들과 검찰 모두 항소하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항소심에서 우리는 검찰과 법원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

연구소장은 유죄, 대표이사는 무죄

리존청은 2005년 4월부터 2010년 5월까지 옥시 대표이사였다. 1심 법원도 리존청이 대표이사로서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할 주의의무가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보고체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보았다. 한편 같은 시기 연구소장으로 가습기 살균제 연구와 개발을 담당했던 조모씨는 혐의가 모두 인정돼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실무자는 유죄, 회사 업무를 총괄하는 대표이사는 무죄를 선고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2012년 8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옥시 등 10개 업체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과실치사 혐의로 고발했다. 그러나 정부(폐손상위원회)의 피해조사 결과가 나와야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며 수사를 중단했고, 2014년 3월께 다시 수사를 시작, 2016년 5월에 이르러서야 관계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가 늦게 시작됐고, 그 과정에서 리존청이 대표이사일 당시 근무했던 외국인 임원들에 대한 수사는 적극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신현우 전 대표이사와 달리 재판과정에서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된 보고를 받았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고,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무죄를 선고받게 된 것이다.

리존청이 대표이사로 재직한 기간에 제품을 사용한 사망피해자만 81명(1심 판결 기준)에 이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형사적 책임을 지지 않는 결과를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표이사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회사 내 보고체계가 완전히 달라졌고, 리존청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와 판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 검찰은 지금이라도 당시 외국인 임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관련 증거를 확보하여 리존청의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검찰은 공소제기 당시 정부의 판정 결과를 기준으로 피해자 수를 산정했다. 1심 재판과정에서 확인된 피해자(1차~3차 판정)는 총 239명(사망 102, 상해 137)이고, 2002년 6월에 발생한 사망피해가 확인된 첫 사례였다. 그런데 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공소시효가 5년이고, 검찰이 공소 제기한 2016년 5월을 기준으로 하면 2011년 이전에 발생한 피해자들은 혐의에 포함될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검찰은 피해자 전부를 포괄하여 하나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재판에 넘겼다.

여기서도 검찰의 수사와 기소 시기가 늦었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피해자 1명에 대하여 하나의 범죄가 성립하기 때문에 각각 피해자들에 대해 성립한 범죄가 경합하게 되고, 이럴 경우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 정해진 최고형(5년)에 1.5배(7년6개월)까지 선고할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은 공소시효 문제로 인해 포괄하여 하나의 죄로 기소하였고,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해서는 최고형인 5년형이 적용된 것이다.

또한 특경법상 사기 혐의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특경법상 사기죄는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검찰이 공소장에 기재한 옥시의 편취금액은 51억원에 이른다. 1심 법원은 ‘아이에게도 안심’, ‘인체에 안전한 성분 사용’이라는 문구가 피해자들의 제품 구매에 영향을 미쳤으나 피해자들을 속여서 판매금액을 편취하였다는 점이 개별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안전성’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에 대해 속여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취득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검찰은 이에 대해 철저히 입증해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16년 8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 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SK케미칼 김철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 등 기업 대표들이 위원의 질의를 듣고 있다./강윤중 기자

2016년 8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 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SK케미칼 김철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 등 기업 대표들이 위원의 질의를 듣고 있다./강윤중 기자

원료물질 개발 판매 회사도 책임져야

원료물질 공급업체 대표가 중간 유통인이기 때문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면, 문제된 원료물질을 개발하고 판매한 SK케미칼은 근본적인 책임을 져야 할 지위에 있다. 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업체들도 원료물질이 없었다면 제품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SK케미칼에 대한 구체적인 수사나 기소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이 여러 차례 검찰에 고발하고 수사를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심 판결은 SK케미칼에 대한 수사와 기소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1심 재판과정에서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PHMG, PGH)의 위험성과 가습기 살균제의 제조·판매자들이 어떤 주의의무를 부담하는지 확인됐다. 애경, 이마트 등 CMIT/MIT를 원료물질로 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하고 판매한 업체들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편 위험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용도 제한을 엄격하게 두지 않아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당시 환경부 공무원들도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건강을 잃은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는 피해자들에게 그 어떤 것도 충분한 보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체에 위험한 제품을 만들고 이를 통해 이익을 취한 이들이 잘못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지는 것은 피해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전제이자 과제이고,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Q&A | 나노물질은 안전한가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난 뒤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해온 어느 가정을 찾아가 환경노출조사를 하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조사를 마친 뒤 요즘은 가습기를 쓰는지 물었다. 쓴다고 했다. 청소를 얼마나 자주 하는지 여쭈어보니 내부청소가 쉽지 않은 구조여서 인터넷에서 살균효과가 있다고 선전하는 은(銀)나노 용액을 사서 가습기 살균제 대용으로 물에 타서 사용한다고 답했다. 은나노 용액도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으니 앞으로 사용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나왔다.

나노라는 용어에 첨단기술이나 과학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노라는 말이 붙은 제품은 우리에게 안전하고 매우 획기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나노(nano)라는 말은 ‘아주 작은’ 또는 ‘난쟁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nanos’에서 유래했다. 입자 크기가 1~100㎚에 속하는 물질이 나노물질이다. 1㎚는 10억분의 1m이다. 우리는 미세먼지를 10미크론 이하의 입자, 즉 PM-10이라고 말해 왔는데 나노물질은 미세먼지 크기의 100분의 1 내지 1만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나 작은지를 짐작할 수 있다.

조사를 한 집에서 만난 젊은 주부도 아마 첨단기술 제품은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아무런 의심 없이 은나노 용액을 사용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많은 인명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도 실은 나노 크기이다. 이 성분뿐만 아니라 PGH, CMIT/MIT와 같은 다른 가습기 살균제 성분도 모두 30~50㎚ 크기이다. 입자의 크기나 분자량이 작을수록 피부는 물론이고 폐 등 인체 장기에 잘 침투한다. 만일 그 물질이 독성을 지녔다면 인체에 끼치는 건강 악영향도 더 심각해진다. 나노입자는 단위용적당 표면적이 크다. 이런 특성은 이 물질이 폐와 같은 조직에서 염증을 더 크게 유발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나노입자는 폐에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고 뇌, 혈액, 간, 소화기관 등 다양한 인체 장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나노기술과 이를 활용한 제품들이 최근 들어 시장에 날이 갈수록 많이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나노물질이 인체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 선진국과 달리 경계심을 그리 강하게 보이지 않고 있다. 경계심보다는 유용성에 찬사를 보내느라 바쁘다.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 언론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나 새로운 제품, 새로운 물질에 대해서는 경계보다는 호기심을 나타내고 찬양을 하는 경향이 있다. 석면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가습기 살균제가 처음 선보였을 때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 끝은 참혹했다. 석면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노리는 침묵의 살인자가 되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과학·의학자들은 나노물질이 제2의 가습기 살균제 내지는 석면이 되어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유해성 연구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 영국 등 유럽국가에서 실시한 나노입자 유해성 연구 결과를 보면 나노물질이 21세기 새로운 위험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물론 나노물질이라고 해서 모두가 인체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나노물질 가운데 경계 대상 1호로 탄소나노튜브를 꼽고 있다. 이것 외에도 이산화티타늄, 알루미나, 카본블랙, 산화아연, 탄소 60개로 이루어진 축구공 모양의 풀러렌 등이 경계 대상 목록에 올라와 있다. 이러한 물질 또는 성분 이름은 일반인들에게는 상당히 낯설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이름을 외워 경계하기보다는 나노물질 제품이라고 하면 안전과 관련해 무조건 맹신하지 말고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현명한 자세다.

<안종주 보건학 박사·<빼앗긴 숨> 저자>


<오민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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