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의학적으로 규명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상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가해자 즉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
2006년이니까 10년도 지난 일이다. 일본 구마모토에서 열린 ‘국제수은심포지엄’에 참가했다. 미나마타병 전문가이자 ‘미나마타병 환자의 친구’인 구마모토학원 대학의 하라다 마사즈미 교수가 조직한 행사였다. 세계 10여개국의 수은 관련 피해자, 전문가, 운동가들이 초대되었다. 잘 알려진 대로 미나마타병의 원인은 수은이라는 중금속이다. 하라다 교수는 전 세계 수십 개 나라의 수은오염 현장과 건강피해 문제를 조사했고 한국의 온산병도 수은오염 여부를 조사했다. 하라다 교수는 온산병은 수은뿐 아니라 카드뮴 등 여러 원인물질이 의심되어 소위 ‘복합오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온산병이란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면에 온산국가공단이 들어선 자리에 살던 주민들에게 발생한 환경성 질환을 말한다. 지금 온산공단에는 여러 개의 대형 정유공장들이 들어서 석유화학공단의 비중이 더 커졌다.
하라다 교수는 울산공단 지킴이로 본인이 울산 온산을 방문할 때마다 안내를 했던 울산환경운동연합 김장용 의장을 2006년 구마모토 행사에 초대했다. 나는 김장용 의장과 함께 온산병 문제를 국제심포지엄에 발표할 자료를 준비했다. 1994년 1년 동안 울산에 머물면서 활동할 당시 온산병 문제를 재조명해보려는 시도를 김장용 의장과 같이 한 바 있던 경험과 기억을 되살렸다. 온산지역 주민으로서 온산지역 문제를 시로 기록한 김상화 시인과 다른 몇몇 활동가 및 지인들도 미나마타 현장답사에 같이 갔다.
일본 미나마타만 연안의 어패류를 먹은 어민들에게 1953년부터 발생한 미나마타병은 약 60년 뒤 한국에서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유사한 면이 많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건 손이 뒤틀리고 말을 잘 못하며 침을 흘리는 60세의 태아성 미나마타병 환자의 모습이다. 1956년을 전후한 때에 태어난 그들은 본인들이 직접 수은에 오염된 생선을 먹은 게 아니었다. 그들을 임신한 엄마가 먹은 생선 속에 있던 수은이 엄마의 탯줄을 타고 뱃속의 태아에게 전달됨에 따라 그들은 기형, 뇌성마비의 증세를 안고 태어났다. 엄마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자신이 먹은 생선 때문임을. 그러나 당시의 전문가들과 일본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까지의 의학적 지식에 따르면 태반은 외부로부터의 오염물질을 막아 태아를 보호해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1961년 하라다 박사는 동물실험과 뇌성마비 아이를 출산한 가정이 보관하고 있던 탯줄을 분석해 수은이 탯줄을 타고 태아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태아성 미나마타병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태아성 미나마타병 과학적 입증
가습기 살균제 문제 특히 피해증상의 입증문제와 씨름하면서 늘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미나마타병과 보팔 참사, 그리고 탈리도마이드 피해자들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습기 살균제와 유사하거나 참고할 만한 건강피해 환경사건은 이들 세 가지 사례다. 모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환경참사다. 정부와 제조사의 책임은 제대로 규명됐을까? 피해자들에게 다양한 건강피해 증상이 나타났을텐데 관련성이 제대로 인정됐을까? 피해자들은 정부와 제조사로부터 제대로 사과받고 배상받고 그랬을까? 지금까지 살고 있는 피해자들의 삶은 어떠할까? 세계적인 환경사건인데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한 조치는 하고 있는 걸까? 이들 다른 나라의 환경참사는 우리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매우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미나마타병은 공장 폐수에 의해 바다생태계가 오염되고 생선에 수은이 축적되어 이를 섭취한 사람들에게 건강피해가 나타난 경우다. 보팔 참사는 공장에서 유해가스가 누출되어 수많은 주민들이 호흡곤란과 실명으로 사망하고 피해를 입은 경우다. 탈리도마이드는 임신 초기 엄마들이 입덧완화제 또는 진정체로서 먹은 알약 한두 알이 태아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어 사산되거나 끔찍한 기형아로 태어난 사건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비교할 때 큰 차이점도 있고 매우 유사한 점도 있다. 전반적으로 비교해서 고려하되 특히 유사한 점의 경우 자세히 살펴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임은 물론이다.
미나마타병의 사건 개요는 이렇다. 1932년 일본말로 칫소라고 부르는 신일본질소공장이 일본 남부 바닷가 도시 미나마타에 세워져 아세트알데히드라는 화학물질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 공장은 1950년에는 대량생산 설비를 갖춘다. 그리고 5년 뒤인 1955년께부터 소위 ‘미친 고양이 사건’이 시작된다. 마을의 고양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바다로 뛰어들어 죽는 사건이다. 사람들은 원인을 몰라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불안해 하기만 했다. 그리고 1956년 5월 1일 뇌성마비 증상을 보이는 어린이 환자를 이상하게 여긴 의사가 당국에 보고함으로써 첫 미나마타병 환자 발생을 기록한다. 공장 가동 34년 만의 일이다. 하지만 유사한 환자가 이미 여럿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1953년 12월 5세 어린이에게서 증상이 나타났고, 3년 뒤인 1956년 3월에 사망한 사례도 그 중 하나다. 1956년 11월 구마모토 대학이 ‘증상의 원인이 어패류를 통해 인체에 노출된 중금속’이라고 밝혔지만 당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3년이 흐른 1959년 구마모토 대학은 메틸수은이 원인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2년 뒤인 1961년에는 태아성 미나마타병이 최초로 확인된다.
첫 환자 보고 후 12년 만에 정부 인정
그러나 병의 발병과 공장의 관계를 정부가 공식 인정한 것은 구마모토 대학의 발표로부터 9년이 지난 1968년이었다. 첫 환자 보고 후 12년 만의 일이었다. 그 사이에 미나마타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수은중독사건이 발생했다. 1964년 니가타 지역의 쇼와덴코 카노세 공장도 아세트알데이드를 생산하는 공장인데, 부산물로 인해 수은오염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니가타의 사례는 제2의 미나마타병이라고 불렸다. 정부의 공식 인정이 나오자 1969년 피해자들은 공장을 상대로 첫 민사소송을 제기한다. 소송 결과는 2년 뒤인 1971년에 피해자 승소로 판결되었다. 그리고 다시 6년이 지난 1977년에 가서야 일본 정부는 피해자 인정기준을 마련한다. 원인이 밝혀진 지 18년, 정부가 인정한 지 9년이나 지난 후의 일이다. 1978년에는 국립미나마타병 연구센터가 세워졌고, 1979년에는 칫소 사장에게 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1987년 구마모토 법원에서 국가와 지방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1995년 환자단체들은 ‘살아있는 동안 구제를’이란 요구를 내걸고 당시 집권당인 사회당 정부와 화해하고 합의하게 된다. 이는 최종적인 해결안으로서 정부가 의결한다. 원인이 밝혀진 지 무려 36년이 지났고, 정부가 공식 인정한 뒤 27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미나마타병의 인정기준은 이렇게 변화해 왔다. 일본 정부는 1977년 ‘감각장애와 시각장애 등 복수의 증상이 나타나야만 인정한다’는 입장을 2013년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36년 동안 바꾸지 않았다. 1979년 구마모토 법원이 ‘팔다리 지각장애만으로도 오염된 생선을 다량섭취했다는 역학조건을 만족하면 피해자로 인정한다’고 판결해 정부의 인정기준이 너무 협소하다는 점이 공식적으로 지적되었다. 2004년에는 최고재판소에서 미나마타 주변에서 오염 어패류를 대량섭취했다는 증명과 함께 다음 세 가지 중 한 가지에만 해당하면 피해자로 인정한다고 판시했다. 첫째는 ‘2점식별각 이상’이라는 것으로 피부의 두 지점을 바늘로 찔러서 느낌을 제대로 얻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둘째는 손끝 발끝 감각장애이고, 셋째는 사망한 경우로 입 주위에 감각장애나 시야협착이 있었던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2008년 6월 두 달에 걸쳐 전국을 순회하는 소위 ‘미나마타 전국종단’ 캠페인이 전개되었다. 2009년 7월 정부가 미나마타병 특별조치법을 제정했지만 피해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2009년 9월 사건이 발생한 해역인 시라누이 해역의 주민 1044명을 대상으로 한 대검진을 이틀에 걸쳐 실시한다. 이는 첫 환자가 보고된 지 5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2013년 최고재판소는 소위 전신성 감각장애 여부에 대해 ‘단일증상의 경우 미나마타병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즉 미나마타병이다라는 판결을 내린다.
53년 만에 최고재판소 판정 기준 판결
현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판정기준을 확대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1994년 첫 제품 판매가 이루어진 이후 23년 만이고 2011년 정부의 역학조사가 나온 지 6년 만의 일이다. 연구자 간에도 논쟁이 치열하다고 들린다. 의학적으로 밝혀내지 못하는 부분이 쟁점이다. 지금까지는 의학적으로 규명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상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가해자 즉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 즉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특정 질환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근거를 내놓지 않으면 피해 가능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접근법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의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하되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일본의 미나마타병의 경우 사건이 발생한 지 53년이나 지나서야 대규모 역학조사를 하고 다시 4년 뒤에 법원이 이를 근거로 피해자를 인정했다는 사례에서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이다.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면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가습기라는 제품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맞다.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 사용을 전제로 해 나온 제품이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됐다. 여기서 ‘그러면 가습기는 안심하고 써도 되나?’라는 의문을 품음직하다. 가습기에 평소 살균제를 넣지 않고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가습기 살균제가 시장에 나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지 않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습기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가습기 사용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가 나왔다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 가습기를 제때 청소를 하지 않아 세균 등 미생물이 마구 번식하거나 중금속과 무기질 성분이 가득 들러붙어 있는 상태에서 계속 사용할 경우 인체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 등 우리보다 가습기를 먼저 사용한 나라에서는 1970~80년대 미생물과 무기질 성분으로 오염된 가습기를 사용하다 노동자들과 소비자들이 질병에 걸린 사례가 보고됐다. 1970년 미국의 한 빌딩에서 일하던 근무자들이 집단적으로 기침과 호흡곤란 등 호흡기증상을 호소했다. 근무자 27명이 흉부방사선 촬영을 받았다. 4명의 폐에 이상이 나타났다. 환자의 혈액을 채취했다. 고온에서도 잘 자라는 호열성 세균 양성 반응이 나왔다. 원인을 파고 들어간 결과 범인은 중앙난방 및 공기조절 시스템으로 드러났다. 가습기장치를 냉각방식으로 한 것이 문제였다. 가습기가 미생물에 오염돼 이들이 다량 번식돼 사무실 공간에 뿌려졌고 이 미생물을 공기와 함께 들이마신 근무자들의 폐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미생물이 허파꽈리 즉, 폐포까지 들어가 알레르기 폐포염을 일으킨 결과다. 학계에서는 이를 가습기 폐증(humidifier lung)이라고 불렀다. 거의 같은 시기인 1971년 가정에서도 가열식 가습기를 사용한 사람들에게서 폐렴이 발생했다. 과학자들은 가습기 물에서 방선균의 일종인 호열성 세균을 찾아냈다. 이 세균이 미세한 에어로졸 상태로 사람의 폐 깊숙이 들어가 과민반응을 초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뒤 미국 등에서는 2000년대까지 심심찮게 가습기 오염으로 인한 폐질환이 보고됐다. 호열성 세균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균과 곰팡이 등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지목됐다.
세균 등 미생물과 미생물이 지닌 독소뿐만 아니라 물 속 광물질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가습기를 청소하지 않고 오래 사용하다 보면 가습기 내부 바닥이나 옆면에 하얀 앙금이 생기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물속에 녹아 있던 무기광물질, 즉 미네랄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미네랄이 음식이나 물과 함께 들어오지 않고 호흡기를 통해 폐 속으로 다량 들어올 경우는 폐렴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의학자들은 미생물과 광물질에 의한 가습기 폐증을 과민성 폐렴의 한 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가습기 폐증에 걸리지 않도록 가습기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증류수를 사용하고 가습기 청소를 깨끗이 정기적으로 해줄 것을 소비자들에게 권고하고 있다. 가습기 내부 청소가 어려울 경우 세정제를 사용해 침착된 세균과 광물질을 씻어내되 세정제 성분이 가습기 물에 남아있지 않도록 철저하게 헹궈낸 뒤 사용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가습기 폐증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세정제가 아닌 가습기에 살균제를 타서 이것을 공기 중으로 뿌리는 방식, 다시 말해 미국 소비자나 환경보건당국, 그리고 전문가들의 눈과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가습기를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참극을 불러왔다.
<안종주 보건학 박사·<빼앗긴 숨> 저자>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