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 가득히 베토벤의 소나타가 울려 퍼졌다. 광막한 서해안, 바다 안개가 몰려든 천수만, 그 깊고 아득한 곳에서 나는 켐프의 연주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 또 들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지난주 이 지면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에 대해 썼는데, 음악을 좀 들으면서 살아왔다는 사람들에게 베토벤은 어떤 식으로든 저마다의 감수성 밑바닥에 한웅큼의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내게 그 첫 기억은 베토벤의 초상화다. 그것은 독자들도 이미 여러 곳에서, 여러 삶의 편린에서 몇 번은 보았을 요세프 칼 슈틸러가 그린 것이다. 슈틸러는 독일 마인츠 출신으로 베토벤 전성기에 빈에서 활동한 초상화가다. 루트비히 1세 치하의 바이에른 궁정에서 명암 대비가 뚜렷하고 인물의 내면세계가 강렬하게 드러나는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현존하는 베토벤의 초상화들이 대개 그의 실제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라면 슈틸러의 초상화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 그리고 왕정복고라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살아간 베토벤의 내면을 잘 드러내준다. 실제 모습에 가까운 초상화들을 보면 덥수룩한 머리칼에 근심이 가득한 베토벤을 볼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사실’일 수 있다. 반면 슈틸러의 베토벤은 어둠을 뚫고 앞으로 전진하는 듯한 베토벤이다. 손에 들고 있는 악보는 종교음악사상 가장 연주하기 어렵고 노래 부르기 어려운 <장엄미사>다. 슈틸러에 의하여 베토벤은 당대의 한계를 뚫고 저 너머의 환희를 응시하는, 굳건한 낭만주의적 자아를 지닌 근대적 예술가의 아이콘이 된다.
독일화가 요세프 칼 슈틸러가 1820년에 그린 베토벤 초상화. / 정윤수
베토벤의 초상화가 걸린 초가집 안방
이 초상화는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수첩에 꽂혀 있다.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한 일이다. 나는 경북 영주 순흥면의 산골짜기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내 사는 마을에서 좀 더 위로 올라가면 작은 마을이 한두 개 있고 그 다음은 소백산이다. 초가집에서 살았고 호롱불 밑에서 가가거겨를 익혔으며 책보를 메고 학교에 갔다. 산간 오지 마을이다.
그런데 그런 집 안방에 베토벤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무슨 까닭으로 슈틸러가 그린 베토벤 초상화가 그 오지의 허름한 초가집 안방에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폭풍의 언덕>이나 <제인 에어> 같은 책도 몇 권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어머니가 시집 오면서 갖고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는 해도 베토벤 초상화를 걸어둘 정도로 우리 집이, 그리고 그 마을이 바깥 세계의 문화 동정에 열려 있는 곳은 아니었다.
서울로 오면서 버려도 되는 잡동사니를 다 버린 까닭인지 새로 이사한 도회지의 집에서는 그 초상화를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조금 더 커서 베토벤이 누구인지를 알 만한 까까머리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사람이 어릴 적에 호롱불 밑에서 가갸거겨를 쓰고 있는 나를 내려다 본 그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 후로 지금까지 베토벤을 들으면서 살았음은 물론이다.
그런 기억 중에 천수만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93년의 가을에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차에 대한 동경! 소설가 폴 오스터가 여러 소설들에서 오직 차만이 혼자 집중하여 스스로 세상을 제어하면서 어디든 가고 또 어디든 설 수 있으므로 그 좁은 공간이야말로 최적의 자유 공간이라고 말한 바와 같은 동경! 그것을 위하여 두세 차례 응시 끝에(그 시절의 운전면허 시험은 조금 까다로웠다) 면허증을 받자마자 선배에게 연락했다. 급한 일로 취재를 가야 하는데 차가 필요하다, 이런 용건이었는데, 그 무렵의 미풍양속은 누군가 차가 필요하면 차키를 내주는 것이었으므로, 두 시간 후 나는 선배의 낡은 르망 자동차를 끌고 시흥에서 남쪽으로 무작정 내려갈 수 있었다.
어디로 가겠다, 하는 목적은 전혀 없었다. 일단 차를 끌고 나왔으니 서울을 벗어나는 게 자연스러웠고 최종 목적지는 안양을 벗어나서야 정해졌다. 남해안이나 동해안은 일정으로도 너무 멀고 초보운전자로서도 겁이 나는 여정이었다. 폐차 직전의 르망은 이윽고 서해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천수만!
안면도로 해서 서해를 일람한 후 홍성을 거쳐 예산으로 갈 예정이었다. 내 손가락은 서해의 구불구불한 국도를 손쉽게 따라갔다. 그러나 실제 운행은 그러지 못했다. 초보자에게 먼 여정이었고 태안반도 전역의 국도는 제법 난코스였다. 게다가 가을의 밤, 서해는 일찍 어두워졌다.
독일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빌헬름 켐프가 연주한 「베토벤 소나타」 앨범 표지 사진. / 정윤수
호기 있게 태안반도 끝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서 창리로 방향을 잡았는데 아뿔싸 어둠뿐이었다. 한참을 달려가는데,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 듯한 기이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틀림없이 지도책의 선은 맹속의 직선인데 내 앞의 길은 비포장이었고 구불구불했다. 길섶에는 갈대가 울창했고, 저 멀리 질주하는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였다. 나는 완전하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무작정 직진하여 10여분을 달려보기도 하고, 비포장의 좁은 길에서 간신히 차를 돌려 거꾸로 또 몇 분을 달리기도 하였다. 대형 덤프트럭의 바퀴자국들뿐이었다. 어느덧 밤은 깊어 12시가 넘었고, 유량계의 여유는 점점 줄고 있었다. 거대한 바퀴자국들을 따라가보니 파란색이나 빨간색 깃발들이 수없이 꽂혀 있었다. 나는 길을 찾기 위하여 일단 50m가량을 직진한 후, 차에서 내려 빨간 깃발을 길 한복판에 꽂았다. 한참을 가다가 다시 그런 깃발이 보이면 탈출하기를 포기하겠노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리 되었다. 한참이나 우회전이나 좌회전을 하면서 거대한 바퀴자국 사이로 달렸는데 결국 맨 처음 장소, 즉 도로 한복판에 내가 꽂아놓은 깃발 앞으로 돌아온 것이다.
<월광>, <비창>이 수록된 카세트 테이프
포기했다. 유량계 아래에 불이 들어왔다. 초보운전자인 나는 기름이 떨어졌다는 불빛을 보고 차가 금세라도 멈추리라 생각했다. 시동을 끈 채 차 안에 앉아 있었다.
그것도 무섭고 또한 무료하여 차 안을 여기저기 뒤져보니, 카세트 테이프 하나가 보였다. 베토벤이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선곡집이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들, 그러니까 <월광>, <비창>, <열정>이 수록된 카세트 테이프였다. 그 무렵에 이 곡의 대표 거장으로 빌헬름 박하우스, 마우리치오 폴리니, 에밀 길레스 등이 있었고 특히 빌헬름 켐프가 국내에는 널리 인기가 있었다.
바로 그 곡, 즉 켐프의 녹음이었다. 나는 살며시 그 테이프를 밀어넣어 보았다. 차 안 가득히 베토벤의 소나타가 울려 퍼졌다. 광막한 서해안, 바다 안개가 몰려든 천수만, 그 깊고 아득한 곳에서 나는 켐프의 연주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 또 들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곧 귀청을 찢을 듯한 경적소리! 피로에 지쳐서 깊이 잠들긴 하였으나 아마 그리 오래 잔 것은 아니었을 그 밤, 아니 새벽에 온 전신을 뒤흔들어댈 듯한 경적소리에 소스리차게 눈을 떴다.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빛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강렬한 빛 뒤로 돌아가보니 거대한 덤프트럭이 서 있었다. 새벽에 공사를 하러 나온 덤프트럭 운전자는 새벽 안개를 헤치고 달리다가 소형 자동차가 서 있는 것을 보고 급정거를 했던 것이다. 하마터면 그대로 밀고 나갈 뻔했다고 하면서 운전자는 여기는 ‘천수만 매립공사’ 하는 곳으로 누구든 여기로 빠져들면 대낮이라도 좀처럼 빠져나가지 못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기름을 걱정할 틈도 없이, 덤프 트럭을 따라갔다. 얼마 후에 트럭은 안녕 인사를 고하고 사라졌고 나는 홍성으로 나가는 국도변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두 가지를 깨달았다. 유량계에 기름이 떨어져 간다는 불빛이 들어와도 몇십㎞ 정도는 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까지도 카세트 테이프는 돌고 있었다는 것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그 중 가장 사랑하는 <열정>은 새벽의 주유소에서도 거칠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