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괴수영화의 시초는 <킹콩>이다. 메리언 쿠퍼 감독이 1933년 처음 선보였으니까 벌써 84년이 됐다. 당시 대공황이 한창이었지만 극장표가 매진되는 대성공을 거둔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위의 킹콩 모습은 그 뒤 괴수영화의 아이콘이 됐다. 킹콩은 1976년, 2005년 잇달아 리메이크됐고, 역시 성공을 거뒀다. ‘콩’(kong)은 고릴라를 의미하는 영어단어다. ‘킹콩’은 콩 중에서 가장 크고 힘이 센 ‘콩의 왕’이다.
조던 보그트-로버츠 감독은 <콩: 스컬 아일랜드>를 통해 또 다른 킹콩을 창조했다. 배경은 베트남전에서 미국의 패색이 짙어가던 1972년이다. 미국의 관측위성이 남태평양에서 미지의 섬 ‘스컬 아일랜드’(skull Island)를 발견한다. 괴생명체를 뒤쫓는 ‘모나크’팀은 미국 정부를 설득, 이 섬에 대한 탐사에 들어간다. 베트남 철수를 준비 중이던 미군이 급파돼 탐사팀을 호위한다. 탐사팀을 기다리는 것은 킹콩이다. 탐사팀은 킹콩과 싸우다 괴멸된다. 알고보니 킹콩뿐 아니다. 섬에는 거대 도마뱀과 대형문어, 대형거미도 산다. 한때 지구를 점령했던 고생명체들이다.
영화는 ‘지구공동설(地球空洞說)’이라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지구공동설이란 지구 속이 텅 비어 있고, 비어 있는 그곳에는 또 다른 인류가 산다는 이론이다. 혹은 외계인이나 고대생물이 산다는 주장도 있다. 남극과 북극이 세상으로 나오는 통로라고 한다. 19세기부터 유행했고, SF의 모티브로 많이 사용됐다. 지구공동설은 2013년 전 미국 CIA 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언급해 화제가 됐다. 스노든은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 정부는 호모사피엔스(인간)보다 더 지능이 높은 종족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 지 오래됐다”며 “과학자들은 지구의 맨틀 안쪽에 이들이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베트남전 패배의 트라우마를 가진 패커드 중령(사무엘 L 잭슨)은 킹콩에 의해 부대원을 잃자 복수심에 불탄다. 그리고 외친다. “이 전쟁까지 질 수는 없어! 우리는 군인이니까.” 패커드 중령의 복수심은 ‘이카로스의 역설’을 떠올리게 한다. 이카로스의 역설이란 자신감에 도취돼 실패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역량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다.
이카로스는 아버지가 밀랍과 깃털로 만들어준 날개를 달고 미궁을 탈출한다. 아버지는 태양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자신감이 생긴 이카로스는 태양을 향하다 날개가 녹아 떨어져 죽는다. 캐나다 경제학자인 대니 밀러 교수는 성공한 기업의 실패를 그리스신화 속 이카로스에 빗대며 ‘이카로스의 역설’이라 불렀다.
샤프, 소니, 도시바 등 실패한 일본 기업에 이런 사례가 많다. 일본 거대기업들은 그간 대성공을 안겨줬던 기술력을 자신한 나머지 밀어붙이다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잇달아 사라지고 있다. 이카로스 역설은 과거 성공요인이 되레 지금에 와선 실패를 불러오는 치명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국가 정책도 이카로스의 역설에 빠질 수 있다. 과거 성공한 정책이거나 다른 나라에서 성공했다며 무작정 도입했다가는 큰 실패를 맞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모델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관치로 움직이던 1970년대가 이미 아니었다.
패커드 중령은 전설의 군인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스컬 아일랜드로 헬리콥터 부대를 이끌고 들어가면서 그는 ‘이카로스의 날개’ 신화를 언급한다.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면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는 군인이니까 성공할 수 있다”며 부대원을 독려, 끝내 스컬 아일랜드로 진입한다. 그의 명성은 베트남전부터 삐끗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베트남전은 ‘패배’가 아닌 ‘포기’라며 자위한다.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다가 실패하는 것, 그것이 이카로스의 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