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과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안드라스 쉬프의 언급을 단초로 삼아 이해하자면, 무엇보다 19세기 초의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묘사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부제로 ‘템페스트’라고 불린다. 왜 이런 제목이 붙었는가. 제자 안톤 쉰틀러가 이 작품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자 베토벤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보라”고 했다고 쉰틀러는 베토벤 사후에 기록했다. 이것은 믿을 만한 이야기인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보라”
베토벤과 연관된 갖가지 에피소드들은 대체로 쉰틀러가 기록한 것인데, 그 대부분이 쉰틀러가 작은 사실을 부풀렸거나 기억을 왜곡했거나 심지어 없는 얘기를 가공하여 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민은기의 연구에 따르면 쉰틀러는 베토벤이 죽은 후에 그의 자필 악보, 스케치, 대화 수첩, 편지 등의 유품을 정리한 후 그것을 자신의 재산으로 정리하여 상당 부분 수정 또는 폐기하거나 심지어 팔아넘기기도 했다. 1840년에 출간한 <베토벤 전기>는 한동안 베토벤 연구의 1차 자료로 활용되었으나 그 책 자체의 진실성 여부가 지속적으로 의심되었고, 베토벤과 관련된 의미 있는 자료들이 새로 발굴되어 연구됨으로써 쉰틀러의 기록은 그 진실성을 의심받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셰익스피어의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희곡을 읽어보라고 한 베토벤의 말까지 가공의 산물은 아닌 듯하다. 베토벤이 셰익스피어를 자주 읽었고 그와 관련된 책자나 자료도 남아있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일단 베토벤이 제자 쉰틀러에게 ‘템페스트’를 보면 이 작품의 의미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하자.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19세기 독일 초기 낭만주의 화가인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그린 '지는 해를 마주보는 여인'. / Wikimedia Commons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전체 3악장의 전형적인 소나타 전개과정을 템페스트의 주요 인물과 연관하여 해석하는 방식이다. 정치적 음모와 저주와 복수의 셰익스피어 캐릭터들을 이 17번 소나타의 지배적인 정서들, 즉 복잡한 감정(1악장)과 기이한 침잠(2악장)과 격정의 극적인 표현(3악장)에 연관짓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희곡작품의 주인공들을 각 악장이나 악절의 감각적 표현에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일차원적인 해석일 뿐이다.
이 작품에 관한 다양한 자료와 해석의 역사를 살핀 논문에서 민은기는 이렇게 기계적인 대입보다는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죽기를 결심하고 유서까지 썼던 시기의 베토벤의 상태, 즉 청각장애와 사회활동의 단절과 극심한 내면적 고통의 상황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가 보여주는 격렬한 감정상태와 연관된 것이 아닌가 하고 접근한다. 믿었던 동생 칼의 석연치 않은 행동까지 겹쳐지면서 베토벤은 ‘템페스트’의 대사처럼 “자신의 영지에서 점점 이방인”이 되는 참담한 상태에 이르렀고 그것이 이 격렬한 소나타의 주제가 되었다는 접근이다. 충분히 접근 가능한 이해의 방식이다.
한편, 베토벤 소나타 연주 해석에 있어 일가를 이룬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는 다른 길을 제시한다. 그는 베토벤의 당시 상태는 잠시 괄호 안에 넣어놓고, 그 작품을 예술가의 사상이 농축되어 피력된 추상적 사물로 접근한다. 영국 BBC 강의 프로그램에서 쉬프는 대단히 변칙적으로 시작하는 이 소나타의 1악장을 직접 연주하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여러분 모두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대단한 작품이지요. 하지만 이 곡과 연관하려는 시도는 헛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작품의 어느 부분이다’, ‘작품의 어떤 인물과 관련 있다’ 따위 말이지요. 하지만 그렇기는 해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베토벤 소나타의 깊이와 범위를 말해주고 있기는 합니다. 바로, 실존적인, 형이상학적인 주제들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의미 있는 시선이다. 하나의 작품을 믿기 어려운 기록에 의존하여 감각적으로 판단하거나 지극히 사적인 에피소드와 기계적으로 연관 짓는 것은 자의적이고 주관적이다. 음악을 ‘감상’하는 데 있어 이러한 주관, 특히 그러한 주관의 감상적인 수사는 일정한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음악 ‘감상’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전락하게 되고, 기본적으로 실제 사실과 다를 위험성이 크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한다. 비록 그 개인이 특정한 시기에 사적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혹은 유쾌한 일이 많았다 하더라도, 그런 사적이고 일상적인 경험을 고도의 집중된 사유와 실험의 결과인 작품에 일일이 대입하여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어떤 사적 동기 때문에 작품을 쓰기도 하고 중단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작품의 심오한 주제가 바로 그 사적인 일들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느 작가가 신작 소설을 내면서 책의 앞부분에 ‘부모님께 이 작품을 바칩니다’라고 썼다고 해서, 그 작품이 곧장 ‘효도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안드라스 쉬프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 표지. / Wikimedia Commons
“이 곡과 연관하려는 시도는 헛된 것”
그렇다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과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안드라스 쉬프의 언급을 단초로 삼아 이해하자면, 무엇보다 19세기 초의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묘사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그 이전 시기, 이를테면 100여년 전 고전주의 풍경화의 대가인 니콜라 푸생이 남긴 자연 풍경화 특히 말년의 ‘사계’ 연작의 경우, 자연은 실제의 자연이 아니라 작품 속 이야기를 설명하고 보완하여 그 분위기를 더욱 짙게 하기 위한 ‘대상’으로서의 자연이었다. 푸생의 자연은 성서의 가르침이나 고대 그리스의 신화 혹은 고대 로마의 영웅 이야기를 장중하게 받쳐주는 일종의 위엄 있는 무대장치와 같았다. 로마 장군 포키온의 장례식을 묘사하면서 푸생은 비참한 최후를 맞아 실려나가는 포키온의 주위로 시커먼 나무들이 마치 조문객들처럼 추모와 경의를 표하는 듯이 그렸다. 실제의 나무라기보다는 관념적으로 배치되고 표사된 나무에 가깝다.
반면 낭만주의에 이르러 예술가들은 자연을, 어떤 종교적 가치의 전달이나 영웅의 교훈담을 위한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서 이해하고 묘사했다. 생동감 있는 실제 자연들이 화폭 속으로, 그리고 선율 속으로 담기기 시작했다.
자연을 사유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은 물리적 ‘자연’(nature)에 내재된 인간의 ‘자연성 혹은 본성’(natural)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유럽의 대륙에서는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차가운 풍경화’를 통해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장엄한 자연 속의 숭고한 ‘자연성’에 경외감을 표했고, 영국의 윌리엄 터너는 하늘과 바다와 땅의 경계조차 허물어 버리는 화산이나 황혼의 극적인 순간, 즉 ‘뜨거운 풍경화’를 그렸다.
19세기 초의 유럽 사회가 바로 그러한 숭고한 사유와 격정적인 정서적 충일감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산물이며 도시에 집중된 온갖 기대와 불안, 공포와 환희, 불안과 희망의 감정들이며, 이성적 통제보다는 감정의 극적인 표출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문턱을 뛰어넘고자 한 이 감정들의 가장 열렬한 미적 표현이었다.
베토밴의 ‘템페스트’는, 그리고 이 격렬한 작품은 물론 그밖의 소나타들, 이를테면 ‘월광’으로 표기되는 피아노 소나타 14번이나 흔히 ‘전원’으로 얘기되는 교향곡 6번의 자연들은 바로 이 시대의 집단적 열망, 즉 ‘자연’을 통하여 누구도 제약할 수 없고 억누를 수 없는 ‘자연성 혹은 본성’ 그 자체를 향한 ‘실존적이고 형이상학적인’(안드라스 쉬프) 결실인 것이다.
보라, 셰익스피어는 ‘템페스트’에서 “이 파도들이 왕의 이름 따위에 관심 있는 줄 아시오!”라고 쓰고 있지 않은가. 들으라, 베토벤은 거듭 쓰러지고 상처 입더라도 기어코 다시 일어나 소실점을 향하여 맹진하는 인간 ‘본성’의 격렬한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