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원진레이온 사건은 서로 닮은꼴이 참 많다. 두 참사 모두 사전 예방이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안전에, 생명에 너무나 무신경했다.
작업환경이 나쁘면 노동자는 직업병에 걸린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환경이 나쁘면, 즉 공기·물·토양이 오염되면 환경성 질환에 걸린다. 이 직업병과 환경성 질환은 서로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공장의 작업환경이 나쁘면 직업병뿐만 아니라 공장 인근 주민들이 환경성 질환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그동안 너무나 많았다.
직업병과 환경병이 동시에 일어나
동서고금에서 정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석면 질환은 석면광산과 석면제품 제조 노동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직업병 가운데 하나다. 이와 동시에 석면광산·작업장 인근 주민들도 석면폐증과 악성중피종 등 석면 노동자가 걸리는 것과 같은 형태의 석면 질환에 걸려 숨지거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석면폐광산에서 일한 적이 있는 사람과 광산 인근 지역 주민들이 함께 석면폐증과 폐암, 악성중피종에 무더기로 걸렸다. 또 부산에 있었던 석면방직공장 제일화학과 동양아스베스토 노동자와 공장 인근 주민들도 대거 석면 질환에 걸렸다. 강원 삼척, 영월, 충북 단양, 제천 등지에 있는 시멘트 공장 노동자와 인근 주민, 서울 상봉동 연탄공장 노동자와 인근 주민들은 탄폐증과 만성폐쇄성폐질환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려야 했다. 이를 두고 흔히들 직업병과 환경병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한다. 공장 안에서 걸리는 것이 직업병이라면 공장 밖에서 걸리는 것이 환경병인 셈이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경기도 구리시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직업병 사건도 직업병과 환경병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1988년 언론을 통해 물 위로 떠오른 원진레이온 사건은 대한민국 직업병의 상징이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참사는 1000명에 가까운 피해자를 냈다. 단일공장에서 일어난 이황화탄소 중독사건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원진레이온 참사는 닮은꼴이다. 경기 구리시에 있던 원진레이온 방사공장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3년 공장 문을 닫을 때까지 1000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사상 피해를 입었다. 1992년 촬영된 원진레이온 공장의 작업장을 점검하는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단군 이래 최대의 환경병이라고들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원진레이온 사건은 서로 닮은꼴이 참 많다. 두 참사 모두 사전 예방이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안전에, 생명에 너무나 무신경했다. 원진레이온은 인조비단을 만드는 국영회사였다. 일본에서 1960년대 말 중고기계를 들여와 나무펄프를 이황화탄소로 녹여 인견사, 즉 인조비단실을 뽑아 왔다. 이 인견사는 나중에 천으로 짜여 스카프나 잠옷, 양복 안감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일본에서는 1950~60년대 인견사 공장에서 잇달아 직업병 피해가 생기자 용액 상태의 펄프액이 실이 되어 나오는 방사(紡絲) 공정에 노동자가 들어가지 않고 무인실로 운영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개선했다. 하지만 우리는 직업병 피해를 양산할 가능성이 높은 후진적 작업공정 시스템을 사회적 문제로까지 불거진 1988년 이후에도 계속해 1993년 공장 문을 닫을 때까지 유지했다. 직업병 양산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에 대해 어떤 경고나 정보도 받지 못한 소비자들은 폐와 몸 곳곳이 망가져가고 있었음에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회사의 거짓 선전에 사용 후 몸에 이상이 생겼음에도 그것 때문에 자신의 몸이 그렇게 됐다는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독한 감기려니, 호흡기질환이려니, 폐렴이려니 했다.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임을 깨달은 것은 이미 많은 아이들과 엄마들이 희생되고 난 뒤였다. 2006년부터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 등 대형병원에 봄철이 되면 수십 명의 호흡곤란 환자가 몰려들었으나 의료진들은 그 원인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런 괴질이 발생했으면 방역당국에 제때 알려야 하는데도 자신들의 선에서 원인을 찾으려다 결과적으로 허송세월만 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직업병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초반부터 공장에서는 말이 어눌해지고 팔다리에 마비가 와 손발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노동자가 한 명 두 명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보통사람보다 젊은 40~50대에 중풍이 온 것으로만 여겼다. 자신들이 다루는 물질, 즉 이황화탄소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신경독성물질이라는 사실을 회사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거나 경고해주지 않았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에 대한 특수 건강검진을 맡은 고려대병원 의료진은 1987년 4명의 이황화탄소 중독 노동자를 진단해 직업병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고려대병원과 노동부는 이를 노동자와 학계, 그리고 언론 등에 알리거나 발표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이황화탄소의 위해성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의무적으로 연간 몇 시간씩 유해물질에 대한 교육을 하게끔 돼 있는데도 회사는 이를 무시했고 대학병원 쪽도 이를 외면했다. 이 때문에 회사 쪽은 직업병 환자 발생을 막기 위한 작업환경 개선을 게을리했다. 그러는 사이 노동자들의 몸 곳곳은 이황화탄소로 문드러졌다. 성불구가 되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으며 자살자도 생겼다.
위험에 대한 어떤 경고·정보도 못받아
물론 두 사건은 닮은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점도 있었다. 뒤늦게 괴질로만 여겼던 중중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임을 안 정부 당국은 매우 소극적인 자세로 사건 해결에 임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인구 규모와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데도 매우 안이한 자세를 취했다. 피해자 신청을 받아 그들의 피해를 구제해주는 것에도 굼떴다.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회사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고 정부 책임은 없으므로 살균제를 사용한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피해문제를 해결하라는 둥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대못질을 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 노출로 발생하는 매우 특이한 중증폐질환 이외 질환에 대한 인과관계 파악도 사건의 원인이 드러난 뒤 5년 동안 전혀 하지 않았다. 폐 이외 질환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딴 나라 국민이었다.
2015년 8월 31일 가면을 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옥시레킷벤키저 제품들을 세워놓고 4주기 추모제를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원진레이온 사건의 실체가 물 위로 드러났을 때는 정치여건이 여소야대였다. 노동자, 전문가, 언론, 정치권(야당)이 똘똘 뭉쳐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고 피해배상을 받기 위한 투쟁을 놀라운 모습으로 보여주었다. 한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이황화탄소 중독 산재보상을 받아내기 위해 100일이 넘도록 주검을 두고 투쟁을 벌였다. 전·현직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은 한 공장에서 일해 서로 친밀감과 유대감이 있는 데다가 그들이 거주한 곳도 지역적으로 좁은 곳이어서 정보를 주고받고 소통하는 데 큰 걸림돌이 없었다. 이와는 달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전국에 걸쳐 있는 데다가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 등으로 인해 한 곳에서 한 몸이 되어 싸우기에는 많은 걸림돌이 가로막고 있었다. 원진레이온 사건은 사건 발생 5년 만에 공장이 문을 닫고 피해배상 해결안에 노사가 완전 합의에 이르렀다. 피해 노동자를 위한 전문병원 설립에도 합의해 현재 원진녹색병원이 경기 구리와 서울 면목동에 50병상과 400병상 규모로 각각 세워져 있고 피해기금으로 노동환경건강연구소도 설립돼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반면 가습기 살균제는 사건의 원인이 밝혀진 뒤 5년이 지나서야 가해기업과 피해배상 합의를 하고 피해구제특별법을 만들어 피해자들에 대한 치유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매우 험난하기만 하다. 언제 모든 것이 마무리될지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참사도 해결과정이 모두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사실상 독가스실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했다. 노동자들이 스러져가고 있는데도 3년 무재해 기록증을 원진레이온에 주었던 노동부 등은 일반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그것은 마치 국가기술표준원이 안전하지도 않은 가습기 살균제에 국가인증 안전마크를 달아주었던 것과 비견되는 일이었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들도 모두가 처음부터 순조롭게 그 피해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직업병 판정기준 바꾼 눈물 나는 투쟁
1991년 당시 기준대로라면 김봉환씨는 산재 인정을 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가족들과 이들을 지원했던 보건의료운동단체 의사들은 그의 죽음이 이황화탄소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137일간 장례를 치르지 않고 직업병 기준 개정을 외쳤다. 피눈물 나는 투쟁은 성과로 이어졌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정순 교수팀이 얼마 뒤 전·현직 원진노동자와 건강한 대조집단을 대상으로 대규모 역학조사와 건강검진을 벌였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판정기준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200~300명 규모였던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는 1000명 가까운 대규모로 커졌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도 이러한 길을 걸어야 한다. 지난해부터 올 4월까지로 예정된 폐 이외 질환 연구는 연구비 등 그 규모 면이나 질적 내용 면에서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문제를 슬기롭게 하루빨리 해결해야 하겠다고 정부가 마음먹는다면 원진레이온 직업병 참사의 해결과정을 줄곧 지켜본 사람으로서 가장 먼저 대규모 역학조사를 실시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가습기 살균제병은 한국에서만 생겼다. 그것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대규모로 말이다. 왜 이런 불명예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졌을까? 이 사건 내부에 어떤 일이 숨겨져 있는지 궁금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가습기 살균제는 한국에서만 제조·판매돼 사용된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애매모호하게 할 수밖에 없다. ‘아니오’라고 딱 잘라 말하기도 어렵지만 ‘그렇소’라고 말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이웃 일본에서는 우리의 가습기 살균제에 해당하는 제품이 ‘가습기 제균제’라는 이름으로 팔렸다. 하지만 그 성분은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판매량도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적었던 것 같다. 일본의 경우 유해성이 없거나 극히 낮을 것 같은 유칼립투스액 등의 천연 살균성분을 사용했고 일부 제품에는 계면활성제가 들어가 있었다. 독일에서도 화학물질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가 사용된 적이 있다고 했으나 이것이 세정제 형태로 쓰였는지, 우리처럼 물에 타서 공기 중으로 뿜어내는 형태로 쓰였는지, 또 얼마나 많이 쓰였는지 등에 대해서는 자세한 정보가 없다. 가습기 살균제 집단사망은 한국에서 엄청난 재앙으로까지 여기고 있는 사건이고, 한국은 국제사회에서도 주목하는 국가이므로 일본·독일 등의 국가에서 피해자가 전혀 없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사회적 문제가 될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습기 살균제병(humidifier disinfectant disease)이 집단 발병한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우리 사회가 급속도로 아파트 주거문화로 바뀐 점을 꼽을 수 있다. 추운 겨울철 집중난방을 세게 하면서 실내가 매우 건조해져 습도 조절을 위해 1990년대부터 가습기를 다량 사용했다. 고온다습한 열대나 아열대지역에서는 가습기 자체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 이들 국가에서는 가습기라는 말조차 낯설다. 전 세계에서 가습기를 사용할 필요성이 있는 나라는 특정 국가들로 한정돼 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대한민국인 셈이다.
가습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습기를 사용하는 국가인 미국, 유럽 선진국에서도 가습기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우리처럼 대부분의 가정이 사용하지는 않는다. 또 이들 국가에서는 세균에 대한 공포가 우리보다 심하지는 않다. 우리는 매스미디어에서 툭하면 세균과 바이러스 공포를 부추긴다. 이는 살충제나 살균제, 항균제 등을 만들어 파는 회사들과 관련이 있다. 회사들은 자신들의 제품을 많이 팔기 위해 언론에 관련 보도자료를 뿌리고 언론은 시민들에게 겁을 주어 제품이 많이 팔리게 만든다. 회사의 이익은 미디어 광고로 이어져 서로 물고 물리는 세균 공포 부추기기로 계속된다. 선진국에서도 그런 홍보나 보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는 과도한 측면이 분명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라는 대재앙을 겪고도 여전히 매스컴에서는 모든 세균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때려잡아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세균 잡으려다 사람 잡은 사건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임에도 말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세균을 올바로 현명하게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대중의 뇌리에 뿌리 박혀야 한다. 병원성 세균은 멀리해야겠지만 세균 그 자체는 생태계의 일원으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몸의 일부라는 시각 말이다.
가습기 살균제와 가습기는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작동했다. 이 두 제품 모두 삼성, 롯데, SK, CJ, 애경, 옥시레킷벤키저 등 굴지의 재벌기업과 대기업이 제조·판매한 것들이다. 대기업이 주는 신뢰감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안심하고 쓰도록 만들었다. 너도나도 앞다퉈 가습기 살균제를 유행병처럼 사용하도록 이끌었다.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를 일일이 암기할 수 없을 만큼 대한민국에서 많은 제품의 가습기 살균제가 인기리에 팔렸다.
여기에 기업의 무책임과 안전한 소비제품을 팔겠다는 기업윤리의 실종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한 안전이 곧 생명이라는 기본권 인식이 약한 공무원들은 관리·감독의 손을 놓고 안전 규제를 느슨하게 해 기업이 편하게 제조·판매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만 모든 신경을 써온 나쁜 관행과 제도 탓도 크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아파트 주거문화, 세균 공포 부추기기, 문명 이기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신뢰, 기업의 안전·윤리의식 실종, 정부의 느슨한 규제와 제도가 어우러져 빚은 합작품이자 졸작이다.
<안종주 보건학 박사·전 <한겨레> 보건복지전문기자>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빼앗긴 숨>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