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 패르트의 작품 중에 ‘페스티나 렌테’가 있다. 나는 이 곡을 며칠 내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차디찬 겨울을 온전히 광장에 바친 우리가, 이 한반도가, 바야흐로 ‘페스티나 렌테’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달해 있지 아니한가.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라는 말이 있다. 라틴어다. 널리 알려진 번역으로는 ‘급할수록 돌아가라’가 있다. 회피하거나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변화된 상황에 맞서 초심을 지키면서 이제껏 해온 방식을 찬찬히 살피라는 뜻이다.
이보다 더 종교적이며 철학적인 뜻으로 옮기면 ‘신중한 서두름’이 된다. 삶의 본질적인 물음과 근원적인 통찰을 하는 종교와 철학의 뜻이라고 했지만, 서구의 현실정치에서도 곧잘 쓰일 정도로 범용화된 말이다. 미국의 내전 시기,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저 19세기 중엽의 남북전쟁 당시 북군이 승리를 하게 되는데, 그 전쟁의 단초와 명분이 됐던 노예 해방의 문제를 언제 어떻게 결행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링컨이 고대의 철인이자 정치가인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려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페스티나 렌테’, 아마도 이 라틴어의 영어 뜻이 되는 ‘Deliberate haste’라고 했을 가능성이 더 높지만 말이다.
에스토니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아보 패르트(1935~)
종교개혁 지도자 장 칼뱅도 하늘의 소명을 받는 새로운 신앙적 삶을 ‘신속하고 진지하게(prompte et sincere)’라고 천명한 바 있으니, 이 ‘신중한 서두름’을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처럼 옮기는 것은 조금 부족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말은 고대 연금술사들의 좌우명이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 기원하는 연금술은 헬레니즘 시대의 세계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크게 발달했다. 당대의 주류 학문이었고 과학이었다. 세상의 문리를 깨닫는 집대성의 학문이었으며 종교적 열광의 집약체였다. 이 열망은 중세 때까지 이어졌다. 여러 신비주의와 결합해 정신세계의 확장을 도모했고, 무엇보다 금을 만들겠다고 하는 화학적인 실험 그 자체에 의해 자연과학 발달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아랍어에서 기원한 연금술(alchemy)이라는 단어는 오늘날에도 알칼리, 알코올, 나트륨 등으로 남아있으며, 무엇보다 화학(Chemistry)이라는 단어 자체가 고도의 지적 체계를 가진 이 학문이 연금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아랍어에서 ‘알’(al)은 영어의 정관사 ‘the’와 의미가 같다.
연금술사들의 좌우명 ‘신중한 서두름?
철학자이자 자연과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연금술이 인류사에 끼친 공헌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금술은 아마도 아들에게 자신의 포도원 어딘가에 금을 묻어두었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은 땅을 파서 금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포도 뿌리를 덮고 있던 흙무더기를 헤쳐 놓아 풍성한 포도 수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금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유용한 발명과 유익한 실험들을 가져다주었다.”
연금술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금속이 되는 금을 인간의 지식으로 직접 만들겠다고 하는 자연과학적 실험의 세계지만 그 궁극적 목표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리고 어쩌면 가능하다고 믿었던 그 성취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지극히 고양된 상태로, 현세를 초월한 상태로, 죽으면 썩어문드러질 뿐인 인간이라는 유한한 육체가 영원불멸의 초월적 상태로 도약할 수 있다고 믿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열망의 세계였다.
비록 실제로 금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의 실험과정은 종교인들이 수행하는 바와 다를 게 없었으며, 어떤 점에서는 나약한 존재가 절대적 세계를 만들어내고 마침내 그 세계와 일체가 된다고 믿고, 그에 따라 나날의 생활을 엄격하고 신중하게 했다는 점에서 제도 종교의 관습적 행위보다 훨씬 더 엄숙하고 고결한 측면이 있었다.
금을 만든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은 감각 경험으로 인지 가능한 기존의 세계에 대해 완벽히 이해했음을 뜻하며, 어떤 점에서는 ‘창조’의 반열에 도달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세 이후 주류 종교에서 연금술을 배척한 것은 이런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세계, 인간의 의지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세계를 ‘창조’하려는 연금술사들의 좌우명이 바로 ‘페스티나 렌테’다. 그들은 이제까지 축적된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금을 만든다. 그러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직 금이 만들어진 예가 없으니 그가 그렇게 수고를 다하고 있는 것이며, 그렇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모든 지식에 오류가 있거나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까지의 모든 지식을 온몸에 육화하되 혹시 다른 방법이 없는가 하며 기존에 축적된 재료의 성질 분석과 그 배합 비율과 제련 과정을 모조리 뒤집어엎기도 한다. 그래도 금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또 시도한다. 이제는 자기가 방금 시도했던 방법, 그러니까 또 하나의 실패했던 방법까지도 모조리 복기하고 동시에 다 버리면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다. 그러는 과정의 절대적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일상생활을 수도사처럼 단순화하고 나날의 모든 육체적 움직임을 연금 과정에 몰입한다. 이것이 바로 ‘신중함’이다.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가 수록된 아보 패르트의 앨범 「sanctury」. /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런데 어느 순간, 물론 장구한 인류사의 과정으로 보면 실패했지만, 어쨌든 역사의 한 눈금 위에 서 있던 나약한 인간으로서는 ‘아, 지금 이 순간이구나!’ 하는 신성한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 순간은 자주 오지 않는다. 언제 올지 알 수도 없다. 바야흐로 지금 당장 금이 만들어지겠구나 하는 그 어떤 절체절명의 순간에 대한 직관적인 판단이 내려지면 그때부터 연금술사는 온힘을 다해 서두르는 것이다. 오로지 이 한순간을 위해 거의 평생 동안 신중하게 연구하고 실험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러니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이 순간을 위해 평생의 지식과 노력과 열망을 한꺼번에 작렬시켜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페스티나 렌테’, ‘신중한 서두름’이다.
끊어질 듯 가늘게 떨리는 현들의 소리
에스토니아를 대표하는 현대 음악가 아보 패르트가 있다. 1935년 에스토니아의 얘르바주 파이트에서 태어난 그는 7살에 음악을 시작해 10대 중반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현대 유럽의 촉망받는 작곡가답게 프로코피에프나 바르톡, 혹은 초기의 쇼스타코비치나 쇤베르크 같은 아방가르드 음악을 시도하였으나 ‘구소련’의 음악문화 정책은 이 같은 ‘엘리트 실험음악’을 짓눌렀기 때문에, 변방 속국인 에스토니아의 아보 패르트는 잠시 뜻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찾은 활로는 중세 음악이었다. 그레고리오 성가를 비롯한 중세의 음악들, 특히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범러시아권의 전통적인 종교음악에서 아보 패르트는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그는 구소련 체제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창작하기 위해 1980년대 이후에는 베를린으로 망명에 가까운 이주를 해 활동했다.
1990년 초 구소련이 해체된 후, 아보 패르트의 시대가 열렸다. 구소련에 속해 있던 수많은 나라들이 일종의 ‘신생독립국’이 되면서 음악을 통해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과 정통성을 확인받고자 했고, 격렬한 음악 풍경에 휩싸여 있던 서구에서도 구소련에서 벗어난 나라들의 오래된 음악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헝가리의 지외르지 쿠르탁, 조지아(그루지야)의 기야 칸첼리, 그리고 에스토니아의 아보 패르트가 특히 열렬한 주목을 받았다. 동방정교회의 예배 기도서에 바탕을 둔 ‘리타니’(Litany)와 ‘라멘타테’(Lamentate), 순도 깊은 내면 세계를 그린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 등의 수많은 걸작을 쓴 그는 “나는 단 하나의 음으로도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의 음, 또는 하나의 조용한 박자, 또는 하나의 소리 없는 순간들이 나를 만족시켰다”고 말한다. 그는 아주 기본적인 소재, 이를테면 단순하고 명징한 3화음으로 침묵 이후의 첫 소리와도 같은 순정하고 투명한 음악을 빚어냈는데, 이를 그는 “마치 종소리와 같았고, 그래서 나는 이를 ‘종’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도 했다.
나의 관점에서, 그는 음의 연금술사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았고, 음악은 특히 그러하다. 그의 작품 중에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가 있다. 1988년 작품이다. 끊어질 듯 가늘게 떨리는 현들의 소리가 어떤 결정적인 순간을 향해 ‘신중하게’ 전개되는 6분여의 소품이다. 나는 이 곡을 며칠 내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차디찬 겨울을 온전히 광장에 바친 우리가, 이 한반도가, 바햐흐로 ‘페스티나 렌테’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달해 있지 아니한가.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