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명의 악단이 동시에 연주를 할 때면 콘트라베이스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몇몇의 악기와 앙상블을 해도 콘트라베이스는 그저 음들의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듯하다.
지휘자 임헌정의 손끝이 떨리자마자 무대 오른쪽에서는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순간, 나는 안도했다.
교향곡의 실연을 볼 때는, 특히 말러 교향곡을 볼 때는 가급적 공연장의 2층을 선택하곤 했는데 이번 만큼은 가까이 밀착해 여러 악기들의 미세한 떨림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무대에 가까운 자리로 예매를 했다. 중앙은 빈 곳이 없어 우측으로 치우친 쪽을 선택했다. 그런데 막상 예술의전당 음악홀에 들어서고 보니 내 좌석은 지극히 우편향이라 연주자들을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없음은 물론 무대 앞쪽에 위치한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주자들 때문에 말러 교향곡의 꽃봉오리가 되는 관악기 주자들을 도무지 볼 수가 없었다. 아, 이거 참 낭패구나 하는 심정으로 어찌됐든 80분가량 앉아서 듣고는 가야겠다 했는데, 2번 교향곡의 1악장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내 몸을 뒤흔드는, 콘트라베이스 주자들의 육중한 음량감에 빨려들고 만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번 공연은, 말러 교향곡 2번이 아니라, 콘트라베이스 협주곡이 되는 셈인데, 어쩌랴, 이미 생사의 문을 열고 닫는 듯한 콘트라베이스는 이미 내 몸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임헌정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 예술의전당
건축물의 기초와 같은 콘트라베이스
오래전, 중학교 때던가, 학창 시절에 팀파니 주자에 대한 수필을 읽은 적이 있다. 아마도 교과서에 수록된 듯싶다. 현악기들이 쉼 없이 출렁거리고 이따금 관악기가 교성을 내뱉지만 팀파니 주자는 시종 앉아 있기만 하더라는 내용이다. 그렇기는 해도, 어느 순간, 이를테면 작품이 끝나갈 무렵에 현악기와 관악기가 클라이맥스를 향하여 줄달음을 치면 끝내 팀파니 주자가 단 한 번 우레와 같은 소리를 터트림으로써 작품은 완성되더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 당시의 교육 풍습대로, 앞에서 주목받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꼭 필요한 순간에 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라, 뭐 그런 감상까지, 아마도 곁들여진 수필이었을 게다.
콘트라베이스도 그런 ‘인성교양’의 대상이 될 만하다. 수십 명의 악단이 동시에 연주를 할 때면 콘트라베이스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몇몇의 악기와 앙상블을 해도 콘트라베이스는 그저 음들의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듯하다. 어쩌다 독주 파트를 할당받는데, 그마저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성질의 음들이 펼쳐지는 것을 예고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거장, 거장이라는 용어를 오직 단 한 명에게 바쳐야 한다면 틀림없이 1순위에 오를 재즈의 거장 찰스 밍거스 정도가 아니라면 장르를 불문하고 콘트라베이스를 위엄 있는 독립적 세계에 드높인 경우가 드물다.
<개미>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정작 자신의 모국어 영역보다는 한국에서 높은 평가와 대중적인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소설가 패트릭 쥐스킨트의 모노 드라마 중에 <콘트라베이스>가 있다. ‘명배우’ 명계남씨가 이 대본으로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그때 가서, 보았는데,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것만큼이나 홀로 1시간이 넘도록 연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를 그때 알았다. 콘트라베이스 주자의 독백이지만 연극이 계속되는 동안 저 배역, 그러니까 저 배우 자체가 콘트라이베이스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앞에서 언급한 수필보다는 훨씬 깊이가 있지만, 이 작품에서도 쥐스킨트는 콘트라베이스를 이렇게 묘사한다.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는 없어도 되지만 콘트라베이스는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음악을 아는 분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겁니다. 콘트라베이스는 훌륭한 건축물을 떠받드는 기초와도 같습니다.”
말인즉슨 옳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훌륭한 건축물을 올려다 볼 뿐 그 아래의 기초는 좀처럼 보지 않는다. 만약 그 기초가 그나마 눈에 보이는 바닥이라면 모를까, 저 지층 아래로 튼튼히 박혀 있는 기초라고 한다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된다. 콘트라베이스는 그런 위치에 속한다. 당연히, 그 기초가 없으면 건축물은 제대로 설 수가 없다. 아예 공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콘트라베이스도 그러한가. 음향적으로는 그러하다. 역설적인 표현을 하자면,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할 때는 그 소리가 의외로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연주를 하지 않을 때는 갑자기 콘트라베이스의 존재가 느껴진다. 마치 공기가 희박해야 공기의 실체를 느낄 수 있듯이 말이다.
그래서 쥐스킨트는 <콘트라베이스>의 주인공이 비극적 익살을 부리는 장면도 묘사해 놓았다. 주인공이 어느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데, 아무리 해도 자기 연주를 듣지 않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작곡자이자 지휘자였던 구스타프 말러(1860~1911) /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때 저는 그 여자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불쑥 무슨 행동이라도 해 보인다면 그것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베이스를 집어 던진다든가, 제 앞에 있던 첼로를 활로 문지른다거나, 어쨌든 확실한 실수를 저질러 이상한 소리가 나게 한다거나 하는 따위를 생각해 보았었지요.”
쉼 없이 울부짓고 있는 콘트라베이스
만약 실제로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쉽게도 악기의 특성상 “연주를 하거나 말거나 제 마음대로 해도 절대로 잘리지” 않는다고 주인공을 우울하게 말한다.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건축물의 기초,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 교향악단 저 우측 뒤편의 콘트라베이스 아닌가. 그러나 말러의 경우라면 다르다. 특히 지난주에 들었던 임헌정 지휘 코리언심포니 연주의 말러 2번 교향곡 ‘부활’이라면 쥐스킨트의 용례는 적용될 수 없다. 내가 유독 그날 오른쪽 구석에 앉아서 들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날의 공연은 콘트라베이스 협주곡이라고 해도 좋았다. 코리언 심포니의 콘트라베이스 주자들은 엄청난 음량의 타악기를 비롯해 오르간, 하프, 교회 종, 심지어 100여명이 넘는 합창단이 ‘부활하리라’를 외치는 중에도 그들만의 단단한 연주를 견실하게 지킴으로써 이 난해한 곡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것을 완벽하게 제어했다.
특히 1악장!
예술가 평전의 한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옌스 말테 피셔의 저작 <구스타프 말러>에 보면, 이 2번 교향곡의 1악장이 1895년에 연주됐을 때 “이 악장을 듣고는 산전수전 다 겪은 남성들도 부끄러움도 모르고 눈물을 흘렸으며, 젊은 사람들은 서로 얼싸안았다”고 한다. 19세기 폴란드 문학의 거장인 아담 미츠키에비치의 <위령제전>에서 착상을 한 말러의 이 대작의 주제는 한마디로 ‘삶과 죽음’이다. 이 숙명의 주제는 이 교향곡의 각 악장에 더욱 먹먹한 주제로 변주되는데, 1악장은 필멸에 저항하되 결국 필멸에 이르게 되는 삶의 엄숙함이며, 2악장과 3악장은 현세의 인간 삶에 작용하는 죽은 사람들의 힘이며, 4악장의 간절한 기도를 거쳐 5악장에 이르면 말러 자신이 직접 쓴 대로 “황야에서 다음과 같은 소리가 울려온다. 모든 인생의 종말은 왔다. 마지막 심판의 날이 가까워 온 것이다. 계시를 나타내는 트럼펫이 절규”한다. 이 비통한 기록은, 그러나 문자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말러가 그토록 탐독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의미로 해석돼야 한다. 한 줌의 인간성만 남아있다면 그것이 ‘밀알’이 되어 마침내 신성에까지 이를 수 있는 진정한 부활, 즉 어떤 특정 종교의 교리가 아니라, 무자비한 세상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한 줌의 씨앗만 있다면 신생의 빛이 드리워질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다시 말러가 직접 쓴 내용을 인용하건대, ‘스케르초의 템포로, 거칠게 뛰쳐나오면서’라고 지시된 5악장은 과연 “대지는 벌벌 떨고, 묘는 열리고, 죽은 사람이 일어서고, 위대한 소리와 함께 이 지상의 권력자도, 쓸모 없는 사람도, 왕도, 거지도 모두가 행진”한다. 이윽고 무서운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무대 위의 악기 중 가장 작고 나약해 보이는 피콜로가 “지상 최후를 저주하는 모습을 나타내듯이 나이팅게일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는 말러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 후에 무대 위의 모든 연주자와 합창단, 기본적으로 200여명이 “부활하리라!”고 울부짖는다. 그 순간, 나는 또 보았고 또 들었다. 콘트라베이스 또한 쉼 없이 울부짖고 있었다. “보라, 재판도 없고 권력고 없고 비굴함도 없고 오직 사랑만이 충만한 우리를 복되게 하리라”는 말러의 ‘신 없는 시대의 기도’를 위하여 콘트라베이스는 온몸으로 뒤틀리고 있었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