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여성들은 누구보다 독립적이고 적극적이다. 라푼젤이 그랬고, 엘사가 그랬다. 그리고 또 하나의 캐릭터가 추가됐다. 폴리네시아에 있는 섬, 모투누이 추장의 딸 ‘모아나’다. 모험심이나 진취성으로 보자면 다른 인물을 압도하는 역대급 캐릭터다. <인어공주> <알라딘>으로 1990년대 디즈니 르네상스를 이끈 론 클레먼츠와 존 머스커 감독의 작품이다.
<모아나>는 폴리네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마우이 신화를 배경으로 한다. 여신 테피티는 만물과 생물을 창조하는 여신이다. 반신반인의 영웅 마우이는 테피티의 심장을 훔치려다 실패한다. 테피티의 심장은 바다에 빠져 사라진다. 마우이는 섬에 영원히 유배되고, 세상에는 생명을 해치는 것들이 퍼져나간다.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천국 같던 모투누이섬이 병들기 시작한다. 코코넛은 시들고 고기는 잡히지 않는다. 추장의 딸, 모아나는 전설을 좇아 금기였던 섬 앞 암초를 넘어 먼바다로 나간다. 테피티의 심장을 테피티에게 돌려주면 다시 세상은 생명력이 넘치게 된다고 전설은 말한다. 유배지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 마우이는 모아나의 여정에 합류한다.
만물을 창조한 뒤 여신 테피티가 잠든 섬은 생명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심장을 빼앗겨버린 뒤 이 섬은 더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변한다. 남극과 북극, 매우 높은 고산지대, 사막 등 일시적으로 생활할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거주할 수 없는 지역을 부르는 용어가 있다. 아뇌쿠메네(Anokumene)다. 너무 춥거나 너무 덥고, 물이 부족하고, 숨쉬기가 어려워 인간이 좀처럼 거주하기 힘든 ‘비거주지역’으로 보면 된다. 화산이 폭발하는 용암대지도 아뇌쿠메네다. 심장을 빼앗겨버린 테피티의 섬은 용암괴물이 지키고 있다. 사람이 접근하면 용암을 던지며 내몬다. 모아나의 고향, 모투누이도 아뇌쿠메네로 변해가고 있다. 코코넛이 자라지 못하고, 물고기도 잡히지 않는다면 인간이 살기 어려운 섬이 된다.
반면 인간들이 살기 좋은 ‘거주지역’도 있다. 외쿠메네(Okumene)라고 부른다. 육지에서는 사막, 고산지대, 동토, 극지 부근의 빙설지대를 제외한 약 87%가량이 외쿠메네에 해당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알고 있던 인간들의 거주세계를 ‘외쿠메네’라 불렀다. 외쿠메네의 의미는 시간이 흐르면서 확장됐다. 외쿠메네는 통상 기후에 의해 결정된다. 식량생산 때문이다. 식량생산량이 많은 곳은 인구가 오밀조밀하고 경제활동도 활발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외쿠메네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거주지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척박한 땅에 비료를 뿌리고 관개수로를 대면서 농사가 가능해졌다. 각종 먹을거리가 개발되고 주거시설이 발달하면서 인간이 생존가능한 영역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2020년 이후에 인간은 지구를 벗어나 화성 거주 목표까지 세웠다. 인류의 역사는 아뇌쿠메네를 외쿠메네로 바꾸려는 노력과 일치한다.
1867년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720만 달러(약 2조원)에 알래스카를 사들인다. 당시 미국인들은 “얼음덩어리를 왜 돈 주고 사느냐”며 반대했지만 지금은 역사상 최고의 딜로 평가를 받고 있다. 알래스카가 가진 막대한 천연자원과 군사적 이익과 함께 거주환경이 아뇌쿠메네에서 외쿠메네로 서서히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피티 여신의 심장을 되돌려 놓자 모투누이섬은 생명을 되찾는다. 오랫동안 항해를 포기했던 모투누이 사람들은 다시 대양으로 나가기로 한다. 아뇌쿠메네였던 암초 밖의 세상을 외쿠메네로 돌리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