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은 매스스타트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쇼트트랙 링크를 하루 300바퀴씩 돌았다. 어지간한 선수라면 엄두도 못낼 훈련량이지만, 이승훈은 꾹 참고 견뎌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번 대회에서 달콤한 열매가 돼서 돌아왔다.
2010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 경기. 모두가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장거리 세계 최강자인 스벤 크라머(네덜란드)의 우승을 전망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시상대 맨 위에 올라선 이는 놀랍게도 크라머가 아니었다. 이승훈(29·대한항공)은 12분58초55로 결승선을 통과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최초로 남자 1만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물론 크라머가 코스 침범 반칙으로 실격패 처리당하는 운이 따른 것이 있지만, 당시가 1만m 경기에 고작 세 번째 출전하는 것이었음을 감안하면 굉장한 성과였다. 이승훈은 당시 5000m에서도 은메달을 추가하는 등 깜짝 스타로 등극했다.
그러나 이후 이승훈은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총출동하는 월드컵 대회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계속해서 순위권에서 밀려났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5000m와 1만m에서 노메달에 그쳤다. 이후 이승훈은 개인종목보다는 단체종목인 팀추월, 그리고 신설 종목인 매스스타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월 23일 일본 홋카이도 오비히로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남자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이승훈이 1위로 들어온 뒤 두 손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슬럼프 벗고 5000m와 1만m 모두 우승
이승훈이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다시 화려하게 비상했다. 이승훈은 이번 대회에서 남자 5000m와 1만m, 팀추월, 매스스타트 등 4종목에 출전해 모두 금메달을 휩쓰는 저력을 보이며 4관왕에 올랐다. 한국 동계아시안게임 역사상 4관왕은 이승훈이 처음이다. 또 이승훈은 동계아시안게임 통산 7개의 금메달을 따 안현수(쇼트트랙)를 제치고 가장 많은 금메달을 거머쥔 선수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계아시안게임까지 합쳐도 이승훈보다 많은 금메달을 따낸 선수는 없다.
화려하게 불꽃을 피웠다가 급격하게 사그라지는 듯했던 이승훈은 최근 다시 활활 타오르고 있다. 도대체 이승훈이 이렇게 살아난 비결은 무엇일까.
2월 23일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 경기가 열린 오비히로 스피드스케이팅 오벌. 금메달을 딴 후 주최 측에서 준비한 행사용 말을 타고 링크를 한 바퀴 도는 세리머니까지 마친 이승훈이 믹스트존으로 내려왔다. 이승훈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4관왕에 대한 소감을 묻자 미소를 지은 이승훈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운칠복삼인 것 같아요”였다. 하지만 단순히 운과 복을 타고 났다고 치부하는 것은 그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과도 같다.
이승훈은 이번 동계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동계아시안게임에 대비해 컨디션 점검 차원이었다. 하지만 이승훈은 팀추월 경기 도중 그만 악재를 맞았다. 레이스를 하는 과정에서 넘어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승훈은 자신의 스케이트날에 오른쪽 정강이가 크게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고, 결국 병원으로 이동해 8바늘을 꿰매야 했다.
갑자기 찾아온 부상에 동계아시안게임 출전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이승훈은 “그때는 속으로 올 시즌은 끝났다고 생각했다”며 “통증이 너무 심했다. 처음에 상처를 보니까 흰 것이 보이는데, 뼈인 줄 알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렇게 시즌을 끝내기에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 때문에 같이 팀추월을 뛴 후배들이 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이승훈은 “그때는 내가 선두로 나가다가 뒤로 빠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1위가 가능할 것 같아 너무 욕심을 내다 내 실수로 넘어졌다”며 “적어도 메달은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 욕심 때문에 놓쳐서 후배들한테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팀추월은 나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한국 동계아시안게임 역사를 새로 쓰다
원래 이번 대회에서 이승훈은 팀추월과 매스스타트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출국 전 인터뷰에서는 5000m와 1만m까지 총 4종목을 뛰겠다고 했지만, 개인적으로 5000m와 1만m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찾아온 슬럼프를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따낸 5000m와 1만m 금메달은 이승훈이 다시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이승훈은 “밴쿠버 동계올림픽를 앞두고 이곳 오비히로에서 경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기록이 그때 기록보다 더 좋다”며 “이번 성과로 자신감이 다시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승훈은 평소에도 성격이 얌전하고 순하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훈련하는 독종이다. 이승훈은 원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였으나 신목중학교 시절 쇼트트랙으로 전향했다. 그러나 국내 선발전의 두꺼운 벽을 넘지 못했다. 계속되는 탈락에 좌절감은 쌓여만 갔다. 하지만 이승훈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9년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자 다시 스피드스케이팅에 도전하기로 결심해 종목을 전향했다.
최고가 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이승훈은 결국 한국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스타가 됐다. 그렇다고 쇼트트랙을 등한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승훈이 2016~2017시즌 월드컵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매스스타트의 경우 쇼트트랙과 경기방식이 매우 유사해 쇼트트랙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유리하다. 그 범주에 들어가는 이승훈은 매스스타트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쇼트트랙 링크를 하루 300바퀴씩 돌았다. 어지간한 선수라면 엄두도 못낼 훈련량이지만, 이승훈은 꾹 참고 견뎌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번 대회에서 달콤한 열매가 돼서 돌아왔다.
한국 동계아시안게임의 역사를 새로 쓴 이승훈이지만, 그는 아직 배가 고프다. 그의 눈은 이미 2018년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을 향해 있다. 동계올림픽 금메달이 이미 있는 이승훈이지만,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동계올림픽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다. 이승훈은 “동계아시안게임 4관왕도 좋지만, 여기서 끝내지 않고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이어지도록 하겠다”며 “물론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다. 그러나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 나이로 어느덧 서른에 접어든 이승훈이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최정상급의 선수들과 맞붙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제 상관없다. 지금까지의 업적만으로도 그는 이미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전설이라는 칭호를 얻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