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카와의 작품 ‘꽃이 피는 순간’. 2011년 내한한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필하머니는 10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곡을 연주하면서, 예술의전당 전체를 한순간에 연꽃이 피어오르는 산사의 연못으로 만들어버렸다.
황인숙의 시집 <리스본行 야간열차>는 시집들이 일제히 기립해 있는 내 서가에서 일찌감치 밖으로 나와 티테이블 위에 무심코 펼쳐 보기 좋은 위치에 한겨울 내내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이 시집 안에 “내가 멍하니 있으면 / 누군가 묻는다 /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고 // 내가 생각에 빠져 있으면 / 누군가 묻는다 / 왜 그리 멍하니 있느냐고”라는 ‘알 수 없어’라는 시가 있는데, 시인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종종 그런 순간들에 포박되어 있을 때 틈틈이 펼쳐 있는 티테이블 위의 시집들, 허연이나 손택수나 김혜순이나 문태준 등의 시집들과 더불어 황인숙의 시집도 놓여 있는데, 시집 속의 시 ‘흐린 날’이 며칠 전 눈에 들어왔다.
이 세상 몇십 년 살아도
내 세상 같지 않다는 얼굴로
나이 지긋한 양반이 간다
회사 십몇 년 다녀도
내 회사 같지 않다는 얼굴로
회사 지긋지긋한 양복쟁이가 간다
담담하지만 슬픈 시다. 이 시를 몇 번 더 읽으면서 나는 새봄을 기다린다. 지난겨울은 혹독한 추위는 덜했지만, 거리에서 광장에서 한국 현대사 수십 년의 겨울에서도 특히 기억할 만한 겨울이었기에, 탄핵심판 최종 기일이라는 그 종지부를 눈앞에 두고 문득 이 시가 눈에 띈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베를린필하머니가 사이먼 래틀(사진 가운데)의 지휘 아래 연주를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윤이상과 클라우스 후버 교수가 스승
내 작업실 가는 길에 공원이 있고, 그곳을 지날 때마다 벤치 하나가 눈에 두드러져서, 오갈 때마다 한 컷씩 찍은 게 벌써 이태가 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장소를 지나면서 잠시 멈춰서서 찍고 또 찍었는데, 매일 같아 보여도 나날이 다르다는 제법 선문답 같은 이 일은 사실 웨인 왕의 영화 <스모크>를 슬쩍 빌린 것이다.
뉴욕주 브루클린의 허름한 거리 3번가, 그 모퉁이에 위치한 담배가게가 있다. 14년 동안 이 장소에서 담배를 팔고, 더불어 브룩클린의 행색이 초라한 회사원이나 하릴없는 건달이나 뜨내기하고 잡담이나 하는 사내가 있다.
그는 매일 아침이면 자기 가게 밖의 모퉁이에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를 늘 찍어 왔다. 그 가게를 종종 찾는 손님 중에 소설가가 있는데, 이 사람도 이 가게의 손님들이 대개 그렇듯이 결핍과 상실과 외로움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주인과 소설가는 어떤 일로 가까워지게 돼 하루는 주인이 그동안 찍은 수천 장의 사진을 보게 되는데, 처음에 이 소설가는 건성으로 그 많은 사진들, 수년째 같은 시각 같은 장소를 찍은 것이라서 얼핏 보면 별다른 특색 없는 수천 장의 엇비슷한 흑백사진을 건성으로 넘겨 보게 되는데, 주인이 한마디를 한다. 천천히 보라고. 비슷해 보이지만 하루하루가 다 다르다고.
그래서 소설가는 비로소 천천히 한 장씩 보다가 그만 어느 사진에 눈을 멈추고는 울기 시작한다. 사별한 아내, 아이를 임신했으나 병고 끝에 죽어간 아내, 사랑했던 아내,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온기를 느낄 수도 없는 아내가 그 수천 장의 사진들 속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소설가는 흑백사진 속에 담긴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끝내 울고, 담배가게 주인은 소설가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담배 한모금을 깊게 마신다.
같은 장소를 매일 찍어서 그 사소한 차이와 미세한 결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비단 이 영화 <스모크>의 일만은 아니고, 많은 사진작가들이 해온 일이지만, 영화에서 그 장면은 누구에게나 있을 마음속 깊은 곳의 깊은 상실감을 흔들어 버리는 미묘한 떨림이 있다, 그런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내 작업실을 오갈 때마다 그 벤치를 찍곤 했는데, 이제 작업실을 폐하고 새로 옮기게 된 학교의 연구실로 들어가게 돼 이 벤치의 새봄 풍경은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호른의 애타는 소리
봄은, 그래서, 오고는 있는가. 실은 지금 이 글을 유능한 방송작가였고 문화 전 분야에서 깊이 있는 활동을 하고 있는 페친 이제이씨의 포스팅을 읽고 나서 여러 생각이 맞물린 끝에 쓰는 중이다. 그는 2월의 차가운 날에 여의도 윤중로를 걷다가 아직 오지 않은 봄을, 차가운 강바람을 맞고 있는 벚나무를 보며 느꼈다. 이제이씨는 시인의 마음이 돼 “저 깊숙이 실뿌리부터 물을 길어올리며 저 나무들은 얼마나 바쁠 텐가. 바람이 사납게 굴어도 봄은 오겠지, 햇빛은 따땃하게 여물고 그 빛 받아 꽃봉오리 하나둘 열겠지 하는데, 나도 모르게 간절해진다”고 썼다.
그런 마음으로 일본의 음악가 호소카와 토시오의 작품을 듣는다. 1955년 일본 히로시마, 그 재앙의 땅에서 태어난 호소카와는 1976년 독일에 유학하여 전후 독일을 휩쓴 급진적 아방가르드 음악을 익히게 된다. 윤이상과 클라우스 후버 교수가 그의 스승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실험에 실험을 더하는 ‘현대’라는 말의 기계적 실험에만 몰두하는 경향과 달리, 그 ‘현대’가 전쟁을 치른 현대이며 승전자나 패전자 모두에게 쓰라린 죄의식과 상흔을 남긴 ‘현대’라는 점에 주목해 합리적 서구의 질서가 아닌, 그것을 벗어난 이방인의 시선에서 이질적인 양식으로 전후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현대’ 음악이었다.
매일 지나치는 일상 풍경이라도 계절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 고양시 능곡동에 있는 토당공원의 봄(왼쪽)과 겨울(오른쪽) 풍경. / 정윤수
패전국 히로시마 출신의 호소카와는 이 위대한 선사들로부터 승전과 패전, 서구와 비서구, 바흐 이후의 정교한 화성 질서와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현대에 도착한 비서구의 음악 언어들 사이를 고통스럽게 헤매면서 그 나름의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2001년 히로시마에서 초연된 오라토리오 ‘소리 없는 목소리(Voiceless Voice)’가 그 대표작이다. 그밖에도 2010년 발표작 ‘우븐 드림스(Woven Dreams)’, 2015년 작 ‘폭풍 이후(Nach dem Sturm)’ 등의 문제작이 최근의 성과다.
“우리는 각각의 음을 듣는 동시에 그 과정 속에 담긴 가치를 인식한다. 그 음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다시 말해 자기 안에서 성장하는 음들을 인식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호소카와의 걸작 중에 2011년 작 ‘꽃이 피는 순간(Moment of Blossoming)’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음반이나 인터넷 영상을 통해서도 보고 들을 수 있지만, 세상의 모든 음악이 그렇듯이 실제 공연을 통해 들어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이를테면 2011년 내한한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필하머니는 1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곡을 연주하면서, 예술의전당 전체를 한순간에 연꽃이 피어오르는 산사의 연못으로 만들어버렸다. 호른과 오케스트라의 협연곡인데, 작곡자의 의도에 따라 무대의 맞은편, 즉 2층의 난간에도 관악기 주자들이 기립해 흡사 소음처럼 여겨지는 오케스트라의 난폭한 소리들 사이로 끊어질 듯 간신히 이어져온 호른의 애타는 소리를 받아서 일제히 클라이맥스의 한순간을 폭죽처럼 터트린다. 그 순간은 작품의 제목 그대로 ‘꽃이 피는 순간’이며, 객석 전체가 연못이 되고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이 간신히 피어나는 연꽃이 된다. 꽃은, 봄꽃은, 쉽게 피는 것이 아니라, 무자비한 추위와 소음과 악행들 사이를 비집고 간절하게 피는 것이다.
우리가 기다리는 자연의 봄이나 정치의 봄 역시 그러하지 않은가. 앞서 소개한 황인숙의 시 ‘흐린 날’은 다음처럼 마무리된다. 시인이 소망하듯, 머지 않아, 그렇게 봄은 올 것이다.
꽃눈 잔뜩 단 꽃나무들이
웅크리고 진눈깨비를 맞는다
이런 생각을 할 꽃눈도 있으리라
“좋아, 이번이 아니라면 다음 생에는!”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