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했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성평등한 세상”이라며 자신의 싱크탱크인 ‘국민성장’이 주최한 포럼에서 각종 성평등 정책을 발표했다.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 왜 이 성평등 정책 안에 동성애자에 대한 평등은 포함하지 못합니까?” 문 전 대표의 ‘페미니스트 선언’이 있었던 16일 포럼에서 한 청중의 기습적인 질문이 나왔다. 불과 이틀 전, 문 전 대표가 개신교단체를 만나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명문화한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 의견을 낸 것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문 전 대표는 “나중에 발언 기회를 드리겠다”고 답했고, 그의 지지자들은 이 여성을 향해 한 목소리로 “나중에, 나중에!”를 외쳤다.
지난 16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페미니스트 대통령 선언'을 한 '대한민국바로 세우기 7차 포럼'에서 성소수자단체 회원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보수 기독교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두루뭉술한 말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답변을 피하는 것은 하루이틀 된 얘기가 아니지만, 문 전 대표의 입장은 2012년 대선 때보다 퇴보했다. 당시 그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하며 동성 커플에 대해 제도적 대안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5년 후인 지금은 차별금지법도, 동성결혼에 대해서도 “한국 사회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돼 있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으니 유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다시 ‘나중에’다. ‘나중에’라는 말, 정치에서도 일상에서도 소수자의 발언권을 틀어막는 논리로 가장 많이 활용된 말이 이 ‘나중에’가 아니었을까. 당장 눈앞의 거악과 싸워야 하니까, 그런 부차적인 문제는 나중에. 정권교체의 고지가 눈앞에 있는데, 지금 그런 표 떨어지는 소리는 나중에…. 수십 년간 진보진영 내에서 소수자 문제가 취급되는 방식이 그러했고, 가깝게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인권헌장 ‘시기상조론’이 그러했다.
문 전 대표의 ‘페미니스트 선언’은 지난해 8월 버락 오바마의 ‘페미니스트는 이래야 한다’라는 언론 기고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문 전 대표가 오바마의 다른 것도 벤치마킹했다면 어땠을까. 오바마가 자신의 연설 중 “이민자 추방을 멈춰라, 그럴 수 있는 권력을 당신은 갖고 있다”고 소리친 한 청년의 말을 경청하며 그를 막아선 경호원을 오히려 제지한 것처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나중에”라는 말을 멈추게 하고 “(지금) 나에겐 그런 권력이 없지만,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모였다”며 변화를 위한 ‘어려운 길’을 함께 가자고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나중에’라는 말에는 어떤 힘도 없다.